노동자의 삶은 힘겨워지기만 하는데 왜 노조에 대한 불신은 높아지나
분열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마음을 얻는 싸움’으로 나가야 할 때 조계완의 노동시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독일 월드컵 D-100일을 맞아 온 나라가 들썩들썩한 3월1일. 서울시청 앞 한쪽에서는 축구팬들이 열광하고, 다른 쪽에서는 노동자들이 모여 비정규직 법안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같은 날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철도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해방의 기관차’ 글씨가 선명한 노조 깃발 아래 조합원들은 담요를 둘둘 말아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른바 ‘산개투쟁’이다. 문성현 대표의 임금이 보여주는 것 그런데 자본 역시 일상적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설비투자를 줄이고, 돈 안 되는 사업부문을 일방적으로 매각해버리고, 고용을 늘리지 않고, 공장을 폐쇄해버리고…. 사실상 ‘자본 파업’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자본은 파업을 오래 지속해도 버틸 수 있지만 임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노동자는 먹고살기 위해 결국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자본 파업은 별 주목을 끌지 못하지만 ‘불만의 계절’에 터지는 노동 파업은 즉각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따금 이런 주장이 제기된다. “노동운동의 내부 역량도 취약하고 대공장 노조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고, 파업을 보는 사회적 시선도 싸늘하다. 파업 대신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다소 놀라운 건 진보개혁 성향의 지식인들도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극화 문제 해결에서 노동조합을 한 주체로 세우자”는 주장에 꽤 많은 진보 엘리트들이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은 ‘노동의 논리’를 잘 모르는, 보수적인 대중들로부터의 고립이라기보다는 진보진영 안에서조차 노동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해 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예전에 노동운동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들도 상당수가 민주화 이행 이후 ‘시민사회운동’ 쪽으로 돌아섰다. 노조가 임금 인상 쟁취만을 위한 전투적 경제주의에 빠진 채 지역운동이나 사회개혁운동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전망’을 시민사회운동과 비정부기구(NGO) 쪽으로 돌린 것이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제 갈 길을 찾아 갈라선 지는 이미 오래다. 연대의 기억은 잊혀졌고, 사회운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노동운동의 의제는 더욱 협소해졌다. 일부에서는 “공장이여 잘 있거라”를 외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주체는 더 이상 ‘노동계급’이 아니라 이제 ‘대중’이라고까지 말한다. 노동운동에 대한 기대가 시들해진 이유는 뭘까?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고 했는데, 민주주의는 한국 노동조합 앞에서도 멈추고 있는 건 아닐까. “자본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이고, 노동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라고 했던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번번이 정파와 이념에 갇힌 채 폭력과 대립으로 파행을 빚고, 노조 선거 때마다 집행부 장악을 위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배경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장악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노조 지도부는 재신임을 얻으려고 조합원만을 위한 ‘더 높은 임금 인상’에만 매달리지 않았는가. 최근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10년 넘게 근무는 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민주노동당은 문 대표가 해고된 뒤 복직 판결을 받았으나 “회사 쪽이 ‘노조 간부 문성현’이 부담이 되어 복직 판결을 이행하지 않아 생긴 일로, 문 대표는 ‘일할 권리’와 ‘임금을 받을 권리’ 두 가지 중 하나를 빼앗긴 피해자”라고 했다. 그러나 문 대표가 과연 “생산직으로 원직 복직시키라”고 회사 앞에서 적극적으로 출근투쟁을 벌였는지 물어야 한다. 혹시 복직하지 않은 채 임금을 받아온 것이 노조 간부의 관성은 아니었는가?
지난해 반세계화 시위를 벌이다 홍콩 당국에 강제 억류된 한국 노동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다른 목소리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의 삶과 생명, 식량, 그리고 민중의 권리는 상품이 아니라는 울림을 만들고 싶었다.” 외침은 절절한데, 왜 퍼지지 못하는 걸까? 조직노동(노동조합)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시민운동에 비해 어느 정도 힘을 더 가진 집단이다. 생산의 주체이고 노동3권을 갖고 세상을 바꾸는 싸움에 나설 만한 정치적 힘을 갖고 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집단적으로 ‘발언’할 기회도 있고, 물질적·조직적 권력자원도 갖고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성찰은 더욱 필요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이 누리는 상대적 혜택이 주변부 노동자들의 희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비정규직 싸움에 쉽게 동참하지 못한다면 ‘나의 이익이 다른 노동자의 이익과 충돌할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노동조합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이 흥분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한국의 노동자는 경제 성장의 향연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시달리면서 회사만 보고 죽도록 일하다가 이제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 해고당하고 비정규직으로 떨어지고 실질임금을 삭감당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라는 말이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고, 자본주의는 갈수록 변화하는데 노동운동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과 비정규직 법안 싸움은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파산은 단지 유예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을 기우로 돌리게 하는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화가 한판의 승부가 아니듯 노동운동도 장기적으로 ‘마음을 얻는 싸움’을 해야 한다. 19세기 영국 노동계급의 여가와 삶, 열망을 반영했다는 축구가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상품화된 월드컵이 되어 온 국민이 흥분하고 있는 지금, 비정규직 싸움과 철도 공공성 요구 싸움에 사람들이 흥분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분열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마음을 얻는 싸움’으로 나가야 할 때 조계완의 노동시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독일 월드컵 D-100일을 맞아 온 나라가 들썩들썩한 3월1일. 서울시청 앞 한쪽에서는 축구팬들이 열광하고, 다른 쪽에서는 노동자들이 모여 비정규직 법안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같은 날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철도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해방의 기관차’ 글씨가 선명한 노조 깃발 아래 조합원들은 담요를 둘둘 말아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른바 ‘산개투쟁’이다. 문성현 대표의 임금이 보여주는 것 그런데 자본 역시 일상적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설비투자를 줄이고, 돈 안 되는 사업부문을 일방적으로 매각해버리고, 고용을 늘리지 않고, 공장을 폐쇄해버리고…. 사실상 ‘자본 파업’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철도공사 노조원들이 3월2일 경기도 의정부시 지하철 도봉차량기지에 집결한 뒤 차량을 이용해 산개투쟁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연합 안정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