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와서 세대간 문화 차이에 대한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전 같으면(적어도 20세기까지는), ‘세대 차이’ 아니면 좀더 강조하여 ‘세대간 격차’ 등의 표현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 ‘차이’라는 말 앞에 ‘문화’라는 수식어를 어디서든지 쉽게 보게 된다. 우리가 벌써(?) 21세기에 있고,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것을 실감한다고나 할까.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도 세대간에, 그냥 차이가 아니고 문화적 차이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참 다행스런 일이다.
못 말리는 ‘참을성 부족’
혹자에게는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차이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획일성의 억압보다는 다양성의 복잡함이 더 낫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물을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동어반복적인 ‘궤변’으로 설명하면, 억압의 폭력보다는 복잡의 혼란이 낫기 때문이다. 각자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더구나 여기서 말하는 혼란은 ‘문화적 혼란’이다. 문화적으로 혼란스럽다는 것은 문화의 영역에 ‘정치성’이 개입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문화적 획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성이 개입해 있다는 뜻이다(역사가 가르쳐준 것이지만 그것은 직접적 개입이 아니더라도, 종교적 신념, 사회적 질서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개입해 있기도 하다). 더구나 그것이-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일 뿐- 억압과 폭력의 형태로 개입해 있다는 증거다. 즉 무엇인가를 ‘통제하는 힘’으로 개입해 있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이 다양성의 복잡함을 도저히 못 참는다는 데에 있다. 사람들은 세대간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다양성 내지 혼란보다 그것을 감내할 줄 모르는 것이 더 큰 문화적 문제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못 말리는 ‘참을성 부족’은 도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관찰할 수 있다(사실은 이보다 더 큰 문화적 문제도 없으리라). 그 실례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통상 쉽게 지나치는 ‘작은’ 예들을 들어보기로 한다.
우선 그것은 현재의 문화현상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언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지금 세대간 문화적 차이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라고 하는 것 등은, 문명 발전에 따라서 ‘있을 수 있는 차이’를 ‘엄청난 단절’로 인식해버리는 과잉반응이 되기 쉽다. 이것은 미묘한 관찰이지만 그만큼 우리가 차이에 익숙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자기도 모르게 차이를 문제시하는 경향이 표출된 것이기도 하다.
차이를 감내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은 여러 가지인데, 그것은 차이를 이해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데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어른들(더욱이 지성인일 경우)이 “젊은 세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침튀기며 주장하면서 꼭 그래야 한다는 괜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 젊은이들의 문화적 놀이 그 자체가 무슨 학문인가? 이해해서 나쁠 건 없지만 먼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우선 적당한 관심을 가지면 된다. 새로운 문화트렌드에 대해 배척도 아부도 아닌 적당한 관심, 이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느긋한’ 흥미를 느끼면 더 좋다. 그러면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따라온다.
그리고 젊은 문화, 또는 이른바 신세대 문화를 굳이 따라가려는 경향도 심리적으로 보면 차이를 참지 못하고 어디엔가 소속되어야 하는 통합의 안정감을 바라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각 세대가 차이나는 문화적 향유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나도 DDR했어!”, “랩도 하고 브레이크댄스도 하지!” 같은 태도를 보인다고 청소년들이 기성세대를 끼워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문화적 향유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이 든 세대가 ‘나름대로 놀 줄 아는 것’을 본다면 더 기뻐할 것이다. 물론 젊은 세대를 따라 하든 말든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달리는 데도 강박관념에서 따라할 필요는 없다. 괜히 다친다. 무엇보다 자기의 문화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적인 차원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름답다.
복잡성의 전제 “모두가 다르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진다. 21세기 시대의 화두가 바로 복잡성이다. 오늘날 ‘복잡계 이론’은 과학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화적 향유를 포함하는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복잡계이다. 이것을 평소에 의식하고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간단히 말해 앞으로 세상 살아가기 힘들다. 복잡성의 전제는 무엇인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다른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회자되었는데 그것을 깨닫고 실행하는 것은 요원한 모양이다. 나는 현재 우리 문화가 그렇게 복잡하거나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아직 멀었다. 모두 달라서 일치가 아니라 네트워크적 관계를 맺게 되는 ‘복잡한 문화, 복잡한 세상’은 이제 시작이다.
김용석/ 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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