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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외가, 사라진 천국의 기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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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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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비행기 47]

상여와 상여꾼들의 소리도 사라지고 아이들 울음소리도 사라진 농촌
이땅에 새겨진 정신문화를 찬찬히 뜯어보고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때

▣ 정기용/ 건축가

어린 시절, 이른 봄날 내가 시골 외갓집 툇마루에서 느낀 농촌의 풍경은 깊이 각인되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쫓아다닌다. 그때 그 시절의 외갓집 마을 풍경은 내 마음에 늘 현존하는 농촌의 원형으로 존재한다. 충청북도 남단, 영동군 양강면 말그리, 마셔도 좋을 만큼 맑은 금강이 마을 앞으로 흐르고 강을 에워싼 높고 낮은 산들이 세계의 끝만 같았던 곳.


봄날 멀리 상여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강을 따라 난 깎아지를 듯한 벼랑길로 상여가 지나간다. 벼랑길을 휘몰아 돌며 계곡을 따라 깊이 접어들어 가면 상여꾼들의 소리가 엷어지고 다시 강 쪽으로 돌아 나오면 라디오 볼륨을 키우듯 또렷이 소리가 들린다. 강 건너 툇마루에 서 있는 나의 귓전까지.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홍∼ 어홍….” 그리고 뒤이어 상여잡이의 종소리가 들린다. “딸랑, 딸랑….” 상여꾼들의 모습이 멀리 보일 듯 말 듯 희끄무레해져도 소리는 조용한 봄 아지랑이를 뚫고 귓가에 와서 맴돈다. 그때, 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천국인데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천국, 지옥이 되다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는 고사하고 세상도 모르던 어린 나에게 그 순간 내 외갓집 마을을 천국이라고 느끼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각인된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보존된 이유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존재는 늘 장소에 거주하고, 장소는 궁극적으로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천국처럼 느껴졌던 마을이 여지없이 나의 내면에서 해체됐던 경험 또한 잊을 수 없다. 1970년대에 유학길에 올랐다 잠시 귀국했을 무렵, 박정희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때, 새마을운동이 전국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다. ‘잘살아보세’란 구호 속에 마을길이 포장되고, 초가지붕이 날아가고, 양철 지붕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되고, 그 위로 빨간색·파란색 페인트가 덧칠될 때, 농민들은 마치 그들이 초가집에 살아서 가난했다는 듯이 자신들이 수대에 걸쳐 살던 집을 얄팍한 산업제품으로 갈아치웠다. 때로는 꽁지 빠진 새처럼 생긴 박공지붕의 ‘농촌 표준주택’을 자랑스럽게 수용했다.

세상을 모르는 어린아이는 외가를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기업도시'라는 이름 아래 소멸하는 농촌을 보면 그 때가 정말 천국이었는지 모른다. (사진/ 정기용)

새마을운동의 광풍으로 마을길은 넓어졌지만 수백 년간 지속된 집의 원형은 농민 스스로 ‘농촌주택개량사업’이란 이름으로 훼손했다. 인류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집은 분명 한 민족이 전통적인 사회 안에서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낸 문화의 표상이다. 문화란 삶을 지속시키며 시간과 공간상에 누적하여 공유해온 가치다. 그것이 아무리 지금은 초라해 보여도 말이다. 그리고 세계의 농민들은 본래 아름다움을 입으로 말하지 않고 그들의 손끝에서 본능적으로 길어냈다. 이러한 농민들의 능력이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기치 아래 거세됐고, 새로운 사회의 재편이 누구를 위하고 어떤 세상을 위한 것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농민들은 자기부정을 정당화하고 도시로 떠나버렸다. 지금도 모두 명절 때면 이미 물리적으로 해체된 농촌의 유적으로 대이동을 감행한다. 유목민같이 사는 도시적 삶을 보상받으려는 듯, 삶의 뿌리를 가진 고향에 대해 향수를 느끼고는 있으나 이는 심리적이고 대단히 감상적인 것에 기반한 것일뿐 전통적인 농촌문화가 어떻게 붕괴됐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렇게 해체된 농촌의 풍경 속에 철골로 만든 축사나 비닐하우스가 비집고 들어오는가 싶더니, 세계화가 어떻고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다가 이제 농촌은 그 누구도 존재 이유의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질문의 땅이 되어버렸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던 천국이 지옥이 된 셈이다. 이제 농촌도 없다. 이 나라에는 오직 도시와 농촌 ‘사이’만 있다.

상여도 사라지고 상여꾼들의 소리도 사라지고 아이들 울음소리도 사라진 농촌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온다. ‘기업도시’라는 이름으로 골프장 건설의 진군 나팔소리가 들린다. 소문인가 싶더니 여기저기서 대량으로 토지를 수용하면서 일어나는 주민들의 갈등이 외침으로 들려온다.

쌀 나무가 자라던 땅 위에 돈이 자란다

이제 농촌에서의 개발이란 정석처럼 ‘땅값이 뛰면 팔아치우고 도시로 이주하는 것’이 되었고 농업의 전통적 기반이었던 ‘땅’은 골프장이나 위락공간의 대상지로 전락했다. 쌀 나무가 자라던 땅 위에 돈이 자라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 균형발전이란 이름만 붙이면 어떠한 파괴도 정당화되는 시대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나는 내 안에 살아 있는 천국을 돌아보고 싶어진다. 막연하게 어린 시절 한순간의 기억을 사랑해서만이 아니라 그 기억 속에 나만의, 개인적인 것이 아닌 ‘집단적 기억’이 함께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향수와 추억이 아니라 이 나라, 이 땅의 풍토에서 자란 역사와 문화의 향기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우리의 유산들이다. 작지만 소중한 음식문화나 수공예품에서부터 밭 사이에 있던 돌무덤과 돌담들, 마을의 구조나 민속놀이에서부터 우리가 미신이라고 믿는 수많은 의식(儀式)들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생생한 ‘우리만의 신화’가 있다.

만일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이 인정된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자기인식, 자기존중, 내가 나인 것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시킬 실마리를 찾는 일이다. 도시와 지방이 불균형하므로 균형발전을 이루자고 할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짧은 역사에서 실종된 존재의식의 균형을 먼저 이루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좁은 땅덩어리지만 뿌리 깊고 다양한 삶의 켜와 역사와 유산이 배어 있는 주변을 섬세히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세계화와 경제논리로 축출시킨 것들, 무엇이 실종됐는지조차 잊어버린 이 땅에 새겨진 정신문화를 찬찬히 뜯어보고, 기록하고, 보존하고, 논의해 우리가 지속시켜온 가치의 실마리들을 찾아내야 할 것 아닌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문화는 없다. 수많은 자연부락들이 농경사회에 축적한 땅의 흔적, 인식의 흔적, 이야기들의 흔적, 즉 우리들 마을의 생태지도를 그리지 않고 개발의 로드맵을 따라 서두르는 것은 이제 마지막 남아 있는 존재의 기억들마저 지워버리는 일이다.

내가 아직도 나의 외가를 천국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때가 정말로 천국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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