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완의 노동시대]
소수 상위권 대학 졸업자의 생산성 입증할 수 없는데도 임금격차 뚜렷
노조는 최저임금 투쟁 등으로 격차 축소하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제약’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 사람이 받는 임금 수준은 개인적 능력과 생산성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해 이를 반영한 지표일까? 만약 그렇다면 임금 차이는 생산성에 따른 ‘합리적 격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금 결정에는 △개인의 인적 속성(성별·나이·교육 수준 등) △사업장 규모 △사회적 제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끼친다. 연봉제와 성과급의 경우 생산성 향상이 개인적 성과에 따른 것인지 집단적 효과에 의한 것인지 모호할 때도 많다. 연봉 재계약을 맺을 때나 성과급 지급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수·삼수는 ‘합리적인 투자 선택’인가 노동은 인적 ‘자본’이다. 따라서 투자 수익률을 따져볼 수 있다. 여기서 투자는 곧 교육·훈련을 뜻하는데, 더 좋은 대학에 가려는 재수·삼수가 ‘합리적인 투자 선택’일까? 한국노동패널 설문조사를 자료로 대학 간 임금불평등(3500여 명)을 조사한 연구를 보면, 2000년의 경우 지방대는 중졸 이하에 비해 국립·사립을 불문하고 월 60%, 서울 사립대는 70%, 상위권 대학(서울대·포항공대·연세대·고려대) 졸업자는 130% 정도 임금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에는 지방 국·사립 및 서울 소재 대학 모두 중졸 이하에 비해 80∼100% 정도, 상위권 대학들은 160% 정도 더 높은 임금을 받았다. 임금 프리미엄이 갈수록 상위권 대학에 집중되고 있는 것인데, 국내 200여 개 대학을 늘어세울 경우 상위 대학으로 갈수록 입학 성적 차이가 줄어드는 게 분명한데도 높은 경제적 프리미엄은 극소수 몇 개 대학만 누리고 있다. 2002년에 고졸자 대비 전문대 졸업자의 임금 격차는 3%에 불과했다. 몇몇 상위권 대학에 특혜가 집중되는 이런 승자 독점 양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과연 상위권 대학 교육의 질이 높아서일까? 물론 이런 임금 차이가 모든 대학에 걸쳐 체계적으로 나타난다면 교육 여건(교수당 학생 수·1인당 교육비 등)이 임금 격차에 일정한 효과를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극소수 대학에만 효과가 집중된다는 건 생산성 이외에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졸업장(sheepskin) 효과다. 흥미롭게도 전문대 중퇴자나 4년제 중퇴자는, 고졸자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인적 자본을 축적했음에도 고졸자의 임금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인적 자본이 아니라 졸업장 ‘간판’이 임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높은 교육 수준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말이 실제로 입증된 적은 거의 없다. “교육 수준이 증가할수록 임금소득도 증가한다”는 사실만이 수차례 제시됐을 뿐이다. 교육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신호’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하다. 사람을 뽑을 때 사용자가 관찰할 수 있는 건 나이·성별·경력·학력 등 개인적 지표뿐이다. 사용자는 응시자의 잠재 생산성을 측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단지 교육 간판을 놓고 선별하게 된다. 이때 대학의 명성이나 위치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 된다. 개인의 인적 자본 외에 집단적 맥락에서 프리미엄을 보장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학벌주의 관행과 연줄효과가 작용한다. 특히 기업이 생산성 격차 이상의 과도한 임금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큰 낭비가 된다.
주목할 만한 건 고소득층일수록 소득이 계속 상승하는 확장기가 길고, 반대로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이 떨어지는 하강기가 길다는 점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인데, 소득 하위 5%는 가장 많은 임금소득을 버는 나이가 36살인 반면 소득 상위 10%는 최대 근로소득 나이가 56살로 나타났다. 이런 근로소득은 부동산·금융자산 등의 형태로 점차 ‘자산화’되어 자산소득 격차로 이어지는데, 이에 따라 노동생애 동안의 소득 격차는 더 확대된다.
‘효율임금’은 사무직에만 집중
이렇듯 임금 수준이 생산성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함에 따라 생산성 향상을 유도하려고 고안된 것이 여러 종류의 임금설계다. 대표적인 것이 ‘효율임금’인데, 삼성그룹처럼 시장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 보상을 줘서 노력을 이끌어내는 동기 부여 방식이다. 효율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해고될 경우 잃게 될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그러나 효율임금은 생산성 관측이 어렵고 태만을 막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사무관리직한테 집중될 뿐 단순작업을 반복하는 생산직 노동자들한테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효율임금이 임금 격차를 영구화하고 있는 셈이다. 연봉제·성과급은 어떨까? 전통적인 연공서열 임금은 개인과 가족의 노동력 재생산을 보장하는 ‘사회적 임금’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연공임금은 입사 초기에 자신의 생산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다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중장년기에는 (생산성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젊은 시절에 받아야 할 정당한 임금을 뒷날에 받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강제 퇴직당하거나 도중에 연봉제로 바뀐다면 젊은 시절에 받아야 할 임금을 기업이 빼앗아가는 꼴이 된다.
일부에서는 임금 격차를 낳는 주범으로 노동조합을 꼽는다. 조합원들만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인데, 사실 ‘노동조합의 임금 프리미엄’ 역시 모호할 뿐 정설이 없다. 오히려 노조는 산업별 표준임금 제정과 최저임금 투쟁을 통해 내부 임금 격차를 축소시킨다. 또 노조사업체의 임금 상승은 비노조 중소업체의 임금까지 끌어올리고, 사용자들이 저임금 경쟁 대신 기술 혁신에 나서도록 유도한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유익한 제약’이라고 할 수 있다. 노조의 존재가 아니라 ‘부재’가 오히려 임금 불평등을 낳는 건 아닐까?
노조는 최저임금 투쟁 등으로 격차 축소하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제약’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 사람이 받는 임금 수준은 개인적 능력과 생산성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해 이를 반영한 지표일까? 만약 그렇다면 임금 차이는 생산성에 따른 ‘합리적 격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금 결정에는 △개인의 인적 속성(성별·나이·교육 수준 등) △사업장 규모 △사회적 제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끼친다. 연봉제와 성과급의 경우 생산성 향상이 개인적 성과에 따른 것인지 집단적 효과에 의한 것인지 모호할 때도 많다. 연봉 재계약을 맺을 때나 성과급 지급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수·삼수는 ‘합리적인 투자 선택’인가 노동은 인적 ‘자본’이다. 따라서 투자 수익률을 따져볼 수 있다. 여기서 투자는 곧 교육·훈련을 뜻하는데, 더 좋은 대학에 가려는 재수·삼수가 ‘합리적인 투자 선택’일까? 한국노동패널 설문조사를 자료로 대학 간 임금불평등(3500여 명)을 조사한 연구를 보면, 2000년의 경우 지방대는 중졸 이하에 비해 국립·사립을 불문하고 월 60%, 서울 사립대는 70%, 상위권 대학(서울대·포항공대·연세대·고려대) 졸업자는 130% 정도 임금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에는 지방 국·사립 및 서울 소재 대학 모두 중졸 이하에 비해 80∼100% 정도, 상위권 대학들은 160% 정도 더 높은 임금을 받았다. 임금 프리미엄이 갈수록 상위권 대학에 집중되고 있는 것인데, 국내 200여 개 대학을 늘어세울 경우 상위 대학으로 갈수록 입학 성적 차이가 줄어드는 게 분명한데도 높은 경제적 프리미엄은 극소수 몇 개 대학만 누리고 있다. 2002년에 고졸자 대비 전문대 졸업자의 임금 격차는 3%에 불과했다. 몇몇 상위권 대학에 특혜가 집중되는 이런 승자 독점 양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과연 상위권 대학 교육의 질이 높아서일까? 물론 이런 임금 차이가 모든 대학에 걸쳐 체계적으로 나타난다면 교육 여건(교수당 학생 수·1인당 교육비 등)이 임금 격차에 일정한 효과를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극소수 대학에만 효과가 집중된다는 건 생산성 이외에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졸업장(sheepskin) 효과다. 흥미롭게도 전문대 중퇴자나 4년제 중퇴자는, 고졸자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인적 자본을 축적했음에도 고졸자의 임금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인적 자본이 아니라 졸업장 ‘간판’이 임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높은 교육 수준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말이 실제로 입증된 적은 거의 없다. “교육 수준이 증가할수록 임금소득도 증가한다”는 사실만이 수차례 제시됐을 뿐이다. 교육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신호’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하다. 사람을 뽑을 때 사용자가 관찰할 수 있는 건 나이·성별·경력·학력 등 개인적 지표뿐이다. 사용자는 응시자의 잠재 생산성을 측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단지 교육 간판을 놓고 선별하게 된다. 이때 대학의 명성이나 위치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 된다. 개인의 인적 자본 외에 집단적 맥락에서 프리미엄을 보장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학벌주의 관행과 연줄효과가 작용한다. 특히 기업이 생산성 격차 이상의 과도한 임금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큰 낭비가 된다.

졸업장 간판이 임금을 좌우하는 건 사회적 낭비다. 대학 졸업 시즌에 취업공고판 앞에 선 졸업생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