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펜이 테러보다 폭력적일 수 있다

597
등록 : 2006-02-14 00:00 수정 :

크게 작게

[김창석의 도전인터뷰]

한국이슬람중앙회 이주화 선교국장에게 마호메트 풍자만화 사태를 묻다
“전 세계 1/3이 아파하는데 꼭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극해야 하나”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의 풍자만화를 유럽 언론이 대대적으로 실은 것에 전세계 이슬람권이 발끈하고 나서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이슬람교에서 특히 금기로 여기는 예언자의 모습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은 점이 사태를 폭력적으로 이끄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해당 언론사들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의 언론들 사이에서도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반론이 나올 정도로 사태는 심각해지고 있다. 만평을 게재한 덴마크와 노르웨이 대사관에 대한 물리적인 공격과 시위가 벌어지고 무역거래 금지, 대사 소환 등 외교 갈등도 잇따르고 있다. 20년 전 <악마의 시>라는 책을 써서 이슬람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은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 사건 이후 유럽과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이번 사태는 겉으로는 ‘신성모독’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종교적·문화적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미국의 중동 정책, 이슬람권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서구의 언론 보도 태도, 유럽의 반이슬람주의에 대한 이슬람권 전체의 피해 의식이 깔려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슬람중앙회 이주화 선교국장을 만나 이번 사태를 접하는 한국 이슬람계의 입장을 들어봤다.


무슬림은 사진이나 초상을 걸어두지 않아

만평 사태와 관련해 한국 내 반응은 어떤가.

= 조직적인 의견 표명이나 행동은 없지만, 무슬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공통의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느낌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이 선교국장은 "이번 사태가 확산되는 것은 이슬람 신앙의 본질과 핵심을 유럽 언론이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윤운식 기자)

= 이슬람교에서는 초상을 그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예언자 모하메트도 생전에 선교에 임할 때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코란이나 예언자의 언행록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슬람권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사진이나 초상을 걸어두지 않는다. 그런 게 있으면 천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사가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록해서 최후의 심판 때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우상시할 수 있는 모형, 초상, 사진, 동상 등이 그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권용 사진 같은 필수적인 사진 이외에 다른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한 초상도 금기로 하는데 이번 만평에는 폭탄까지 등장한다. 이번 사태는 신의 유일성을 가장 중요한 신앙의 시작으로 보는 이슬람교의 본질과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슬람을 자극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목적이 있다는 시각인데 그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유럽 언론들이 연쇄적·지속적으로 만평을 실어서 이슬람권을 자극한 점은 분명하다. 유럽에도 반유대적 행위에 대해서 처벌하지 않나. 지난해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이슬람을 비방하지 못하도록 요청했고 그것이 합의사항에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슬람 창시자가 순교자들에게 “너희에게 줄 처녀들이 모자란다”고 한 만평의 내용은 이슬람 교리와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인가.

= 천국에 가면 처녀를 준다는 말인가. (웃음) 천국의 삶을 묘사한 부분은 있다. 원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쪽으로 미화돼 얘기될 수는 있다. 그러나 노골적인 표현보다는 천국에서의 편안함과 완벽함을 강조하는 얘기로 봐야 한다.

코란이 곧 헌법, 정부가 나서는 건 당연

유럽 언론들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종교 역시 자유롭게 분석되고 비판되며 심지어 풍자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전세계 이슬람 인구가 17억 명 정도다.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아파하고 분개하는 것을 굳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빌려서 계속 자극하고 국제적인 분쟁까지 일으켜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글의 힘은 테러의 힘보다 강할 수 있다. 언어적인 폭력이다.

유럽에서 이슬람이 받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이번 사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에는 동의하는가.

= 그렇다. 이슬람인들이 유럽에 유입된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된 경우가 많다. 유럽인들의 상대적 우월감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지난번 영국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때도 이미 불거졌다. 영국 사회가 그 일을 자성의 계기로 삼은 것도 보지 않았나. 이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이 예언자에 대한 비하로 이어졌다고 본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신정일치 국가가 많다. 종교적 잣대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 사회적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코란이 헌법인 나라들에서나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슬람권의 문화적 불관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 종교적인 문제로 대사관을 폐쇄하거나 통상 압력을 가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말한 대로 코란이 곧 헌법이기 때문에 거꾸로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이런 사태에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리비아 등에서 가장 먼저 국민 정서에 부합해서 외교적 조처를 취한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불관용을 지적했지만, 코란에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종교가 있고,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있다”고 돼 있다. “종교에는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표현도 있다. 우리 종교가 중요한 만큼 다른 종교도 존중하라는 것이다.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폭력을 사용해서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이슬람권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대응이 이슬람을 극단주의·근본주의·원리주의 같은 이미지로 덧칠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

= 그 점에 대해서는 이슬람 안에서도 말이 많다. 종교를 떠나서도, 어떤 상황이라도 폭력이나 테러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이슬람적인 관점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향할수록 폭력적인 양상을 띠는 테러는 어떻게 봐야 하나. 자살폭탄 테러도 이슬람 교리를 철저히 따르겠다는 이들이 하는 것 아닌가.

=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자살은 금기사항이다. 자살은 안 된다. 시각을 좀 달리해보면 폭탄테러는 우리 역사에도 있지 않나.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는 우리에게는 영웅이지만, 당시 일본인에게는 테러리스트였을 것이다. 테러를 하는 이들의 종교가 이슬람교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같은 곳을 보면 이슬람 이전에 자기 나라의 주권을 찾는 일을 더 우선하는 것이다.

교리로만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보편적인 수준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여성 인권이나 사회적 소수자를 다루는 이슬람권의 의식과 제도에는 문제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안주만이라는 여성 시인이 시집을 냈다가 남편에게 구타당한 뒤 숨졌다. 이란에서는 동성애자 청소년들을 처형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비판받을 소지가 충분한 것 같은데.

= 이른바 ‘명예살인’ 논란도 그런 것에 포함되나. 명예살인은 우리한테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녀문 같은 게 있었다. 여성들이 가문의 수치라는 이유로 목을 맨 것 아닌가. 이슬람이 인권 유린을 교리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별로 역사적 배경과 문화가 있다고 본다. 이슬람 교리로만 본다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우위다. 서양의 눈으로 봤을 때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이 인권 유린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그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에서도 유럽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 그래서는 안 된다. 우려하는 부분이기는 하다.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10만 명으로, 이 가운데 한국인은 3만5천 명 정도 된다. 이슬람적인 저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 유럽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 손엔 칼, 한 손엔 코란’ 정도로만 알려져 있어 안타깝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