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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자냐, 당직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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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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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처음에 우리당 당직자인 줄 알았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열린우리당 보좌관이 한 기자의 이름을 거론했다. 보좌관은 그 기자의 평소 언행이 열린우리당을 너무 잘 대변해준다면서 흐뭇해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통상 정당을 나누어 출입한다. 열린우리당을 출입하는 기자는 매일 열린우리당 의원과 당직자와 얼굴을 비빈다. 당의 논리도 귀에 익도록 듣는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기자는 한나라당의 울타리 안에 갇힌다. 한 정당을 오래 출입하다가 정당을 옮기면서 일부 기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 것도 이런 환경의 탓도 크다.

열린우리당 기자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2004년 4·15 총선이 끝났을 때다. 개원을 앞두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국회 상임위 구성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했다. 힘있는 상임위에 더 많은 몫의 의원을 앉히고 위원장직을 차지하려고 했다. 회의실 협상이 제대로 안 되면 국회 브리핑룸에서 상대당에 책임을 전가하는 기자회견전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펼쳐졌다. 어느 날 이종걸 열린우리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내려오던 참이었다. 느닷없이 한 기자가 쏘아붙였다. “왜 그렇게 많은 상임위를 고집하냐! 열린우리당이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 다짜고짜 따지는 투였다. 그는 한나라당 출입기자였다. 다음날치 그의 기사는 원 구성 지연의 탓이 온전히 열린우리당에 있다는 톤이었다. 이 기자는 며칠 뒤 이번엔 박영선 의원과 설전을 주고받았다. 브리핑룸에 있던 다른 기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가 “한나라당 대변인”이라는 쑥덕공론까지 흘러나왔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보도!”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보도의 지침과 원리로 삼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에 다닐 때 한 교수는 언젠가 인간은 당파성, 계급성 등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말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기자들은 출입 정당의 당파성에 함몰되기 쉽다. 1인, 1정당 출입 관행이 가장 큰 이유다. 이같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대립점에 서 있는 정당에 견줘 출입 정당의 정치적인 입장과 정책, 인물에 호의를 보이는 것이다. 한편으로 자칫 밉보였다가 취재의 어려움을 겪지나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계산도 작용한다. 물론 유럽과 미국의 초기 종군 기자들이 취재하러 전쟁터에 나가 총을 들고 직접 전투에 참여하면서 보였던 극단적인 편향은 드물다.

충실한 당파성은 보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의도에선 많은 기자들이 출입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해왔다. 일부 의원과 당직자들은 친분이 두텁고 우호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 “공천권을 줄 테니 이번에 출마해라”는 농담을 한다. 기자들은 여전히 이같은 말을 수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자들이 당파성을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그것에서 완전 중립적인 기사를 쓴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당 기관지와 경계점을 찾는 것이 기자의 몫이 아닐까. 아우크슈타인 전 <슈피겔> 편집장은 “언론이 정치를 하려고 하면 스스로 패자가 된다. 언론 최대의 적은 정치인과 호형호제하며 허물 없이 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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