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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논술시험에 교사들을 참여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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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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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석의 도전인터뷰]

대학이 수험생에게 가하는 지적 횡포를 강하게 비판해온 이병민 서울대 교수
교수로만 구성하면 그들만의 논리에 매몰… 고교 졸업생 수준에 맞게 쉽게 내야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이병민 교수(서울대 영어교육과)는 기회 있을 때마다 현행 논술시험에 대단히 비판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종합 글쓰기’(Synthesis Writing)를 전공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그는 1월20일 오후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현재 대학에서 시행하는 논술시험에 대해 “고등학교 졸업생의 지적 성장 단계를 완전히 무시한 부적절한 시험”이며, 이 제도를 이대로 운용하는 것은 “대학들이 수험생에게 가하는 지적 횡포”라고 꼬집었다.


간단한 에세이도 못 쓰는 아이에게…

현행 논술시험이 왜 대학의 지적 횡포인가.

= 현재 대학에서 치르는 논술시험은 학문적으로 보면 종합 글쓰기에 가장 가깝다. 이런 글쓰기는 고도의 지적 사고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형식으로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요구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훈련돼야 한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 대학의 실정으로 보면 대학원 과정에서나 훈련이 가능하다. 간단한 에세이를 쓰는 훈련도 받지 못한 고등학교 졸업생들한테 고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주제를 준 뒤에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자기 주장을 기반으로 한 논술을 쓰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나. 결국 시험의 타당성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논술을 주도하는 이들에게 논리학적 배경, 철학적 배경, 사회과학적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에 대한 배경은 없다. 글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학생들은 그 과정을 어떻게 습득하는지에 대해 학문적 배경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런 시험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지적 성장이 현행 논술시험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인가.

(사진/ 박승화 기자)

= 우리 문화는 수동적이고, 타율적이고, 권위에 의존적인 게 사실이다. 독립적인 사고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더해서 학교에서도 암기 위주로 교육받은 수험생들이 종합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능력을 요구하는 시험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려는 고등학교 졸업생들한테 대학에 가려는 이유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남들이 다 가니까요” “안 가면 손해볼 것 같아서요” “성적이 되니까요”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요” 등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너 왜 서울대 가려고 하니” 하고 물어보면 “최고의 대학이니까요” “최고의 교수님들이 계시니까요” 딱 두 가지다.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친구들한테 이유를 물어보면 “공부를 좀더 해보려고요” 한다. 무슨 공부냐고 또 물어보면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지만 붙여만 주시면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다. 진짜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윌리엄 페리라는 미국 교수가 하버드 학부생을 10년 동안 관찰해 지적 성장 과정을 4단계로 정리했는데, ‘이분법 단계(Dualism) → 다수의 진리가 존재하는 단계(Multiplicity) → 상대주의 단계(Relativism) → 헌신의 단계(Commitment)’가 그것이다. 미국 고등학교 졸업생들도 대부분 첫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첫 단계에 있는 학생을 대학 교육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지닌 지식인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제시문에 대한 독해도 안 되는 수험생들에게 논리적이고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담은 의미 있는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은 지적 성장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서론·본론·결론이 따로 노는 특징

그렇지만 논술 답안을 가채점한 대학들의 반응은 “기대했던 수준의 변별력이 나왔다”는 것이다. 변별력이 확보됐다면 시험이 기대하는 바가 충족된 것 아닌가.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의 논리는 수능시험이나 학생부로는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논술을 어렵게 낸다는 것이다.

= 대학에서 말하는 변별력이라는 게 아마도 사고력의 차이가 드러난다는 게 아니라 글 구성력의 차이를 말할 것이다. 글을 읽어보면 별로 창의적인 게 없다. 사고력은 짧은 시간 안에 훈련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테크닉은 글쓰기 자체에서 요구되는 짜임새와 구성력 같은 것이다. 정교한 점수를 매길 수는 없고 10명 가운데 두세 명은 괜찮고 몇 명은 영 아니고 나머지는 그저 그렇다는 식의 구분밖에 할 수 없다. 학원 같은 데서 단기간에 가르치는 글쓰기 기술은 거의 비슷하니까.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글꼴을 갖춘 글이 있기는 하다. 서론·본론·결론의 구조를 갖춘다든지, 한 문단 안에서 주제문을 두괄식으로 쓴다든지, 요약을 해가면서 논리를 전개시킨 글들이다. 문제는 글의 알맹이인 내용인데, 내용 면에서 다른 글들과 본질적으로 비교 우위에 서 있는 글을 찾기 힘들다. 600~700명의 글을 읽다 보면 간혹 어떤 친구들은 정말 자기만의 고요한 생각을 글에 담아놓기도 한다. 학원에서 배우지 않은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연세대의 경우에는 올해 처음 논제를 주지 않고 제시문만을 주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렀더니 응시생의 절반 정도가 제시문에서 ‘불안’이라는 공통 주제어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 아마 그럴 것이다. 초·중·고의 교육 체계 안에 비판적인 글읽기나 글쓰기를 위한 시스템은 갖추지 않은 채 막상 시험에서 그런 것을 요구하니까 당연히 생길 수 있는 현상이다. 단편적·비논쟁적·권위적·이분법적 사고로 둘러싸인 채 자라난 사회문화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내 박사학위 논문 실험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시간 관리’를 주제로 한 5개의 글을 미국 대학원생, 한국 대학원생, 미국에 유학 간 한국 대학원생 등 세 그룹의 각 30명에게 나눠준 뒤 글을 쓰도록 했다. 미국 대학원생은 대부분 5개의 서로 다른 입장의 글들을 비교하는, 신중한 글을 썼다. 반면에 미국 유학생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결론을 한쪽으로 내리고 제시문들은 부분적으로 발췌하거나 인용하는 글을 썼다. 의견도 한쪽으로 많이 쏠려 있었다. 우리 학생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서론·본론·결론이 따로 노는 특징이 있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전국 규모의 영어경시대회 평가를 해본 경험이다. 거기에도 에세이 시험이 있었다. 토익 성적이 950점 안팎의 학생 60명이 최종적으로 뽑힌다. 영어를 잘하니까 다른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일 것이다. 주제가 “우리나라에서 남자와 여자로 살아가는 데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비교하고 당신의 입장을 서술하라”는 것이었는데 답안이 천편일률이었다. 남학생은 사례로 드는 게 군대 얘기밖에 없었다. 여학생은 애를 낳아야 한다거나 직장에서의 성차별 등이었다.

교수나 대학원생도 글쓰기 형편없어

논술의 목적이 대학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사고 능력,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더라도 없애기보다는 보완해서 제도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의 경우에는 전체 프랑스 사회의 실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지 않나.

= 한국과 프랑스는 고등학교 교육 내용이 많이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철학이나 역사와 같은 인문학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룬다. 대학 신입생이 강의 시간에 담당 교수와 토론을 벌일 정도로 지적 수준을 갖추는 게 목적이니까 그렇다. 한국에서는 그런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 같은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토론 주제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관계, 삼권 분립의 정신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독서와 찬반 토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교육부와 학부모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과 교수가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게다가 바칼레로아는 고등학교 교사들이 문제를 낸다.

이 교수는 "논술시험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지적 토양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 박승화 기자)

특정 분야의 대학 교수들이 문제를 내기 때문에 논술시험의 유효성이 더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 그렇다고 본다. 문제를 출제하는 학자들의 구성 문제인데, 우리 대학들은 특정 분야의 교수들이 자신이 오랫동안 전공한 분야에서 문제를 찾기 때문에 본인들은 쉽고 일반적인 주제라고 느낀다. 학부, 대학원, 유학, 교수생활 동안 계속 생각해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문제를 받아서 푸는 수험생들은 그렇지 않다. 더 힘들어하는 측면이 있다. 철학이 보편적인 학문의 성격을 띠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별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 다른 분야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이론이 많다. 거기에 반대하는 이론도 있다.

최근 대학에서도 글쓰기센터나 글쓰기 강좌가 강조되고 있고, 대학 국어에서도 글쓰기를 강화하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글쓰기가 강조되는 문화는 전체 사회의 성숙을 위해서 필요한 것 아닌가.

= 물론 글쓰기가 강조되고 전체 사회가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글쓰기에 대한 연구나 문화가 척박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교수나 대학원생들도 글쓰기가 형편없다. 나 역시 글쓰기라고 하면 작문 시간에 배운 원고지 쓰는 법, 맞춤법, 각주 다는 법 등이었다. 그런데 서구는 우리와 다르다. 서구는 구텐베르크의 프린트 혁명 이후 500년 동안 책과 글이 사회를 지배하는 힘이었다. 미국에서는 읽기·쓰기와 관련된 논문이 1년에 3천 편 정도 쏟아져나온다. 미국 대학들에서 학부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분야가 읽기와 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문자생활이 사회의 주류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며 정보저장 방식이고 신뢰받는 표현방식이다. 빌 클린턴이 대학 시절 ROTC 교관에게 병역 문제에 대한 편지를 보냈던 기록조차 대통령 선거전에서 들춰지는 것이 미국 사회다. 대통령이 은퇴하면 대부분 책을 낸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상당히 구어체 사회다. 인터넷 동영상 사용률이나 온라인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 사용 시간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글보다는 말을 선호하고, 공적 담화보다는 사적 담화를 즐긴다. 이런 배경 속에서 글쓰기는 단순히 기술상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회 전체가 얼마나 글쓰기의 전제가 되는 비판적인 사고와 토론의 문화를 키울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황우석 교수 사건에서도 우리는 한쪽 면만을 강조하면서 현상을 단순화한 것 아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면 황 교수 연구 결과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며, 또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했다.

수능은 SAT, 논술은 바칼로레아 빼박아

현행 논술시험을 개혁하거나 변화시킬 대안은 무엇인가.

= 한국의 대학입시제도는 프랑스와 미국의 제도를 합친 종합선물 세트 같은 것이다. 수능은 미국 SAT(Scholastic Aptitude Test)를 모방한 것이고, 논술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모방했다. 그러나 그런 제도의 핵심이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에세이 시험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다음 두 주장(‘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와 ‘어떤 경우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필요하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되 과학·역사·문학·시사 또는 개인의 경험이나 관찰을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라는 식이다. 25분 동안 치르는 시험이다. 현행 논술시험처럼 문제를 어렵게 내는 건 오히려 쉽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생의 수준에 맞도록 쉽게 내는 것은 어렵다. 대학 교수들만으로 구성됐을 때는 그들만의 논리에 빠지기 쉽다. 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고등학교 교사들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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