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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가계부를 버리고 야간노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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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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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의 노동시대]

신자유주의 시대 ‘가족임금’이 사라지며 비정규직 노동에 편입되는 여성들
노동 시간표가 가족의 시간표를 위협하며 저녁 식사도 같이 할 수 없는 상황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1970년대 한국에서 공장 사목으로 일했던 선교사 조지 오글은 “1980년대 중반 남성 노동자들이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10년 이상 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여성들의 어깨 위에 자신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민주노조운동이 있었기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폭발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70년대 공장 여성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 시간과 야간 잔업을 견디기 위해 자기 월급으로 타이밍(각성제)을 사먹어야 했다. 21세기 들어 뚜렷하게 나타난 새로운 노동 유형으로 ‘여성노동’과 ‘야간노동’의 급속한 확대를 꼽을 수 있다.


가사노동 배려해주는 탄력 근무제?

산업혁명 초기에 기계는 근육 힘이 약하거나 더 유연한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을 대량으로 노동계급에 포함시켰다. 공장이 ‘공포의 집’이었던 당시, 기계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 편입시켰다. 자녀를 둔 어머니들까지 자본에 의해 ‘징발’됐고 노동자 가족은 모두 착취당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남성 노동자가 표준임금으로 가족 생계를 부양하고 노동력 재생산을 보장하는 ‘가족임금’이 지배했다. 기업은 노조와 파업권을 인정하고 노조는 산업의 평화를 약속했는데,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에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가족임금 협약이 맺어진 것이다.

기업마다 비정규직 벨트는 여성 중심으로 형성된다. 24시간 할인점의 판매직 여성 노동자들. (사진/ 박승화 기자)

이런 가족임금을 집안에서 뒷받침한 것이 주부노동이었다. 일하는 것이 팔자 사나운 여성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간주되던 그 시절, 주부들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질병’인 사회적 고립에 시달렸다. 그런데 80년대 이후 가족임금의 위기가 도래했다.

자본·시장·생산의 ‘자유’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활개치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제약’으로 불리던 노동조합의 족쇄를 벗어던진 시장의 질주가 횡행하면서 실질임금은 급속히 떨어졌다. 예전에 여성은 남편이 벌어다준 수입으로 가계부를 잘 쓰는 것이 최대의 미덕이었으나, 가족을 부양할 만큼의 충분한 소득을 더 이상 집으로 가져오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이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참여해야 했다. 가족임금이 해체되자 여성이 ‘가사 노동’을 떠나 돈벌이를 위한 ‘시장 노동’에 나선 것이다. 통계청의 2001년 조사(취업 사유)를 보면, 30대 취업 여성의 45.8%가 ‘가계 보탬’을 위해서, 40대 취업 여성의 42.8%가 ‘가계 보탬’, 23.8%가 ‘생계 유지’를 위해서라고 답했다. ‘적성·시간 활용’이란 대답은 30대 17.4%, 40대 8.8%에 그쳤다. 고소득 남성과 결혼한 여성만이 적성을 활용하고 또 고소득을 올린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자녀를 둔 기혼여성의 노동 참가 증가를 “가사노동을 배려해주는 시간 절약적 파트타임과 탄력 근무제(여성친화적 노동 패턴)에 따른 자발적 선택”이라고 말한다. 과연 기혼여성의 선택은 자발적이고 만족스러운 것일까?

기혼여성 노동은 고용 총량도 중요하지만 ‘고용의 질’을 따져봐야 한다. ‘저임금 주변부 일자리’ 문제에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가 여성이다. 여성 노동자는 절대 다수가 중소·영세 사업장에 몰려 있고, 임시직·파트타임 등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노동인구의 분단은 정규직과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있는데, 기업마다 언제든지 처분 가능한 인력인 비정규직 벨트는 여성 중심으로 형성된다. 물론 자본은 이윤을 더 많이 남겨줄 수 있다면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자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경영자들은 자기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단기간의 주주 이익에 봉사하고, 그래서 저임금 여성 비정규직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수익성 회복을 위한 자본의 공세가 조직화되지 못한 여성에게 집중되는 셈이다. 게다가 가계를 위해 여성들이 저임금의 일자리로 대거 몰리면서 거대한 여성 비정규직 풀이 형성돼 여성 임금을 더 낮추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하위층일수록 가족의 노동 시간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남성은 ‘사회적 임금’ 성격의 가족임금과 연공서열이 파괴됨에 따라 ‘더 많은 노동’을 하고, 때로는 일자리 안정을 대가로 임금 삭감을 수용해야 한다. 가계의 실질임금이 떨어지는데다 가사·육아 서비스를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하는 지출까지 늘면서 맞벌이 부부 모두 평균적인 생활 수준 확보를 위해 노동 시간을 늘리고 있다. 이런 가족의 노동 패턴 변화는 노동 시간이 가족의 시간을 흡수하면서 가족과 노동 사이의 긴장을 낳는다. 노동 시간표가 가족의 시간표를 위협하고 노동자 가족은 ‘시간 주권’을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밤은 ‘이윤 추구의 시간’

맞벌이 부부는 낮에는 소비할 시간이 없고 밤에 쇼핑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제조업 공장뿐 아니라 여성 지배 직종인 판매·유통 서비스 부문에서 여성의 야간 노동이 늘고 있다. 하루 노동 시간은 전통적인 ‘9-5제’에서 저녁·밤·주말 노동으로 분산됐다. 특히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야간 교대제는 야간 할증임금이란 유혹 때문에 노동자 자신도 선호하는데, 야간 노동은 친구들과 만나는 사회적 관계도 줄어들게 만들고 햇빛이 없는 야간 작업장에서 신체 조직과 건강도 훼손된다. 생체리듬을 파괴하는 밤이 새로운 프런티어로서 ‘이윤 추구의 시간’으로 변한 것이다. 여성의 저녁·야간 교대근무 확산에 따라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노동 시간표로 헝클어졌다. 아침뿐 아니라 저녁 식사도 가족이 같이 먹을 수 없다. 가족 생활은 시간의 압박 속에서 ‘스피드 업’되어 상업화된 시간절약 산업(햄버거 가게, 야간 쇼핑 영업 등)이 번성하고 있다. 번지점프와 래프팅 같은 격렬한 스포츠가 인기를 끄는 건 짧은 여가 시간에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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