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아내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

594
등록 : 2006-01-19 00:00 수정 :

크게 작게

[종이비행기 47]

자동차 박물관의 핸드브레이크와 몽골의 활쏘기 경기장, 관측소의 포대경
이 세 가지를 봐도 성차별 근거가 사라졌는데 왜 남성들은 아직도 한심한가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1992년, 내 나이 마흔여섯 살 때 했던 경험이 내 안 깊은 곳에 머물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 자동차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헨리 포드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내, 아들딸과 함께 갔다. 그 박물관에는 1910년대의 자동차는 물론이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될 때 타고 있었다는 길쭉한 리무진까지 전시돼 있었다.


포병 장교 조카사위와의 대화

내 시선이, 서부 개척 시대의 쌍두마차에 오래 머물렀다. 쌍두마차의 마부석 옆에는, 요즘은 ‘핸드브레이크’라고 불리는 제동간(制動桿)이 솟아 있었다. 일삼아 그 핸드브레이크를 당겨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지막지하게 힘 좋은 백인이 쓰던 핸드브레이크였으리라. 여성은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던 제동간이었으리라. 여성의 힘으로는 함부로 다룰 수 없는 핸드브레이크…. 그 핸드브레이크가 장착된 쌍두마차의 시대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낮았을 수밖에 없으리라. 왜? 지아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밀가루 한 봉지, 설탕 한 근 사러 가기도 어려웠을 것이 아닌가. 당시 아들과 딸은 각각 중학교 8학년, 7학년이었다. 나는 그 마차 앞에서 까불거리며 뛰어노는 아들과 딸을 보면서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했다. 이제는 저런 핸드브레이크의 세상이 아니다. 따라서 아들과 딸이 살아갈 새 세상을 디자인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각자 편안한 자리를 차지하면 그만이다. 여자가 남자를 따르라니, '여필종부'니 '삼종지례'니 하는 말은 심히 불쾌하다. 공원을 나란히 걷고 있는 노부부. (사진/ 류우종 기자)

2003년 몽골의 국민 축제 ‘나담’에서 본 광경도 오래 내 시선을 붙잡았다. 나담 축제에서, 남성과 여성의 활쏘기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 거국적인 활쏘기 축제의 우승자에게는 ‘메르겐’이라는 칭호가 주어지는데, 이 말은 ‘활 잘 쏘는 자’(善射者)라는 뜻이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이름 ‘주몽’과 같은 뜻이다.

활쏘기 경기장에 가보았다. 두 가지 사대(射臺)가 있었다. 한 사대는 표적에서 70m 떨어져 있었고, 또 한 사대는 표적에서 60m 떨어져 있었다. 70m 떨어져 있는 사대는 남성의 것, 60m 떨어져 있는 사대는 여성의 것이었다. 말하자면 여성의 사거리는 남성의 사거리에 견줘 10m 짧다. 활 쏘고 칼 쓰던 시대, 여성은 그 거리만큼의 차별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몽골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토끼 크기의 설치류 동물 타르박을 잡아 구워먹기를 즐긴다. 하지만 이제 활 같은 것은 쓰지 않는다. 대신 성능 좋은 러시아제 소총을 쓴다. 소총의 사거리는 사수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여성을 10ㅡ 사거리만큼 차별하는 것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34년 전, 나는 관측병으로 근무했다. 내가 근무하던, 경기도 파주의 관측소 자리에는 지금 통일전망대가 들어서 있다.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포대경 앞에 앉아 있었다. 포대경은 내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도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도록 설계된 망원경이다. 잠망경 비슷한 쇠뭉치다. 무게는 20~30kg쯤 되었던 것 같다. 전시에는 이 무거운 포대경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적의 동태를 관측, 포대(砲臺)로 정보를 보내주어야 한다.

조카딸이 내게 인사를 시킨다면서 약혼자를 데리고 왔다. 육군 대위, 포병 장교라고 했다. 포대경을 몇 달 다뤄본 적이 있는 내가 그에게 물었다.

나: 포병 장교라면 포대경 둘러메고 다녀야겠네? 포병이라면 FDC(Fire Direction Controller·포격방향통제소)를 운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카사위: 에이, 숙부님, 이제 그런 거 안 해요.

나: 안 하다니?

조카사위: 위성항법장치(GPS)가 움직이는 물체를 식별해서 정보를 보내주거든요. 저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됩니다.

나: 그렇다면 포병도 더 이상 포대경을 메고 다니는 게 아니군.

조카사위: 아니고 말고요.

나: 내 조카딸에게 포대경 메고 다니면서 포격 방향을 통제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다면 조카딸도 포병 할 수 있겠네?

조카사위: 물론이죠.

나: 좋다. 그렇다면 자네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조카딸을 차별할 근거는 사라진 셈이다, 맞는가?

조카사위: 숙부님, 전 그런 걸로 여성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박물관의 핸드브레이크, 몽골의 활쏘기 경기장, 관측소의 포대경…. 이 세 가지는 내가 후배들의 결혼식 덕담을 할 때마다 반드시 들려주는 이야기다. 성차별의 근거는 이제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도 남성의 의식은 한심하게도 쉬 바뀌지 않고 있다.

사랑은 특권, 싸우는 건 원칙

‘삼종지례’(三從之禮)는 내가 불쾌하게 여기는 말 가운데 하나다.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혼인한 뒤에는 지아비를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단다. 요컨대 남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여필종부’(女必從夫)도 내가 심히 불쾌하게 여기는 말이다. 아내는 마땅히 지아비를 따라야 한다니. 따르기는 뭘 따라? 각자 편안한 자리를 차지하면 그만이지.

미국에서 사귄 한 일본인 교환교수에게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버릇이 있었다. 자동차 조수석에 아내 대신 중학생 아들을 앉히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내가 언젠가 그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그것은 아내의 자리가 아닌가? 어째서 중학생인 아들에게 아내의 자리를 내어준다는 말인가?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일본인은 아들을 으뜸으로 친다고. 흐르는 물을 힘차게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닮으라고 머리도 꼬리도 아닌, 가운데 토막을 먹인다고.

내가 운전할 경우, 나의 옆자리는 당연히 내 아내의 자리다. 내 아들은 스물여덟 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 자리만은 탐내지 않는다. 어머니의 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은 딸들의 특권이고, 싸우는 것은 딸들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특권을 원칙에 앞세우면 둘 다 잃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