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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시, 새로운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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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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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외교, 강한 미국, 국가미사일방위(NMD) 체제 추진, 전쟁 수행 방법 재정립을 통한 평화 증진, 조건부 상호주의 원칙, 미사일-대북지원 연계….

미국에 부시 행정부가 새로 들어서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말들입니다. 하나같이 위세당당하고 서슬이 시퍼렇습니다. 미국이 그동안은 힘이 없었다는 것인지, 그래서 더욱 ‘강한 힘과 권위’를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올해 군사예산이 쿠바·이란·이라크·리비아·북한·수단·시리아 등 이른바 7개 ‘일탈국가’ 전체의 22배에 이르는 나라, 또 이들 7개 국가에다 러시아와 중국까지 합쳐도 3배 가까운 엄청난 군사예산을 쓰는 나라가 또다시 ‘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국가미사일방어 체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왔기 때문에 다시 상세히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증강, 미·일동맹의 강화,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핵무장 사태 등등…. 위험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중국의 신형 핵무기 추가개발에 자극받은 인도의 핵무장 강화로 인한 중국과 인도간 핵군비경쟁, 인도-파키스탄 사이의 핵무장 격화 등 그 연쇄파장은 예측을 불허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세기가 새로운 공포에 시달리지 않도록 맞서겠다”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공포’가 다가오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미국의 정책분석가인 로버트 나이만 같은 이는 그래서 “미 군부에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돈을 쓰는 것이 미국의 위신을 세우는 데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비꼽니다. NMD 계획을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은 무려 600억달러에 이르는데, 1년에 60억달러가 조금 넘는 돈이면 현재 2500만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 전부에게 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류자원 배분왜곡의 메커니즘에 대한 통렬한 반박입니다.

어쨌든 관심의 초점은 미국 새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에 모아집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우리 태도는 어떠할까요?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돌아온 여야 의원들은 각기 서로 다른 전언과 분석을 내놓습니다. 여당 의원들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애써 느긋한 반면, 야당 의원들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으로 선회해 우리 정부와 충돌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조선 선조 시절에 통신사들이 일본을 다녀온 뒤, 상사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반면 부사 김성일은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고 전혀 상반된 보고를 했던 과거를 연상시킵니다. 모두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제논에 물대기식 해석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대북 화해정책에 불만을 표시하던 세력들은 강력한 원군을 만난 셈입니다. 말로는 점잖게 남북관계를 둘러싼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한·미 두 나라가 하루빨리 대북정책을 조율해야 한다고 원칙론을 강조하지만, 그 속에는 ‘그것 봐라’라는 고소함도 배어나옵니다. 아예 미국의 주장에 일리가 있으니 대북정책을 완전히 재점검해보라는 주문까지도 거침없이 나옵니다.

미국과의 정책조율도 중요하고 사태의 냉철한 분석도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좀더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존의식입니다. 미국의 행정부 관리들 입에서 나오는 몇 마디 말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미국에 마냥 끌려다닐 것인지, 아니면 미국을 우리의 의도대로 끌고갈 것인지는 하기 나름입니다. 우리의 간과 쓸개가 제자리에 잘 붙어 있는지 다시 한번 만져볼 때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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