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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쥐박사’의 동굴탐사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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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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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동굴이 수직동굴로 바뀔 때 발을 잘못 디뎌 허방으로 빠지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동굴을 탐사하다가 간첩으로 몰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많았지요, 허허.”

경남대 생명과학부 손성원(62) 교수. 손 교수는 지난 25년 동안 박쥐만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박쥐 연구 과정에서 겪은 갖가지 사연은 풀어도 풀어도 바닥나지 않는다. 그만큼 박쥐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전자우편 주소 첫머리를 배트맨(batman)으로 삼고 있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그가 박쥐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지난 1970년대 경남대 강사로 재직하면서부터. 포유류 전반에 대한 연구실적이 부진할 뿐 아니라, 특히 박쥐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학계 풍토에서 외롭지만 의욕적으로 박쥐 연구에 매달렸다. 이후 일본 규슈대학 농학부에서 ‘한국산 박쥐 발생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땄다.

“국내에 있는 박쥐 연구 자료라고 해봐야 일제시대 때 일본인 연구자들이 자기네들 것과 비교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돼 박쥐에 대해 알아볼 데가 전혀 없더라구요.”

이처럼 척박한 풍토에서 시작한 연구여서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욱이 박쥐 연구의 특성상 대여섯명이 짝을 이뤄야 가능해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은데다 목숨을 위협하는 걸림돌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수직굴 허방으로 빠지고 간첩으로 오인받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폐광탐사 때는 썩은 갱목에서 나오는 메탄가스에 질식돼 목숨을 잃을 위험도 겪었다.

위험천만할뿐더러 돈 버는 것과도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런 일에 평생을 바친 열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 “내가 충청도(충북 음성) 출신 아닙니까. 미련해서 그렇지, 뭐.”

손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오롯이 담은 <박쥐>(지성사)를 최근 펴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교양서 성격의 이 책은 ‘유리한 쪽으로만 붙는 간사한 동물’, ‘공포영화 속의 흡혈귀’ 등 박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역시 박쥐 박사인 최병진씨가 찍은 갖가지 박쥐들의 생태를 담은 컬러 사진도 담겨 있다. “낮에 곤충을 잡아먹는 게 새라면, 밤의 세계에서 곤충의 천적은 박쥐입니다. 더욱이 밤 곤충은 모기를 비롯해 대부분 해충이니 박쥐를 보호할 가치가 충분한 셈이죠.”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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