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도로공사로 옛길을 학살하는 무주의 살벌한 풍경에 경악하다
몸뚱아리로 만든 ‘풍경의 저금통’은 외려 복각의 대상이 아니던가 ▣ 정기용/ 건축가 누구나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쉽사리 도로공사를 목격하게 된다. 전 국토가 공사장 같아 보이는 것도 여기저기 파헤쳐진 도로의 모습이 늘 우리를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도로의 유지·관리·보수는 늘 필요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때로는 정말로 우리의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도로 공사판을 지날 때가 있다. 이미 멀쩡하게 도로가 있는데 바로 옆에 평행하게 또 다른 도로를 건설한다. 기존의 도로가 차량으로 붐비기는커녕 오히려 한적한데도 4차선 도로를 별도로 만드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4차선 도로와 고속도로가 다투는 계곡
이를테면 영동∼무주 간 4차선 도로공사가 좋은 예다. 굽은 길을 펴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미래의 관광도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인가. 그도 아니면 물류비를 절감하기 위한 것인가.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배정된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서인가. 알 수가 없다. 논밭을 갈아엎고 배수공사와 도로기반공사, 터널공사, 교각공사에 온갖 토목공사가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다가 드디어 무주읍에 도달해 공사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더니, 무주를 지나 계곡과 아름다운 공간을 헤치며 장수 쪽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무주의 작은 상권이 대전으로 흡수 이동되다시피 한 몇 년 동안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무주읍 내 남쪽으로 4차선 도로가 달려가며 아늑하게 완만한 남쪽의 경사면과 상징적인 산자락을 무참히 절단하니, 그 흉물스런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장수 쪽으로 진행하는 지방도를 따라 신설 4차선 도로와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가 좁은 산골짜기를 앞다투어 빠져나간다. 평화스런 산골의 경관을 난도질하는 풍경 앞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누가 이 오래된 미래의 땅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신설 도로의 효용은 오래된 풍경을 절단할 만큼 합당해 보이지는 않는데, 문제는 이런 살벌한 풍경이 여기 무주 땅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닌 데 있다. 이제 무분별한 도로공사는 자제할 때가 되었다. 무주와 같이 청정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땅을 도로 확장의 이름으로 훼손해선 안 된다. 대도시 지역이 아닌 무주는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만으로도 충분히 전국 일일생활권과 접속돼 있고, 아무리 관광객이 쇄도한다고 해도 도로율이나 폭이 좁아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기존의 지방도나 농촌의 길들을 보존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길은 도로가 아니다. 도로는 설계하고 공사해서 금방 만들어낼 수 있지만, 길은 오랜 시간의 삶의 흔적과 자취가 배어 있는 역사이므로 즉흥적으로 만들 수 없다. 특히 농경시대, 차량이 이동 수단이 아니었을 때, 오직 걷거나 기껏해야 수레와 우마차가 교통수단이던 시절의 길들은 신체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다.
일제시대 ‘신작로’가 이 땅 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 전의 모든 길들은 한 발자국씩, 천천히 장애물을 피하고, 경사진 산자락이 나오면 가장 편안한 각을 찾아 휘돌아가면서 땔감을 마련하던 뒷산을 이어주고 재 너머 이웃 마을을 연결해주었다. 불도저나 대형 중장비가 도로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뚱아리가 조금씩 조금씩 필요에 의해, 미세한 반복적 동작이 길을 만든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속도보다는 걷기에 편안함을 기준 삼아 만들어진 길들은 대체로 물길을 따라 만들어졌거나 적어도 ‘물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졌다. 물은 본래 평평해지려는 속성이 있으므로 물길을 따라가면 가장 편안한 길을 만드는 것이 보장됐다.
문화의 서곡은 언제나 들려올 것인가
그래서 옛길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더욱이 우리나라같이 산과 언덕이 많은 지형에서 굽이쳐 휘돌아가는 길들이 많은 것은 무리하게 산을 절개해서 평평한 길을 만들기보다 지형을 존중하고 자연을 가급적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체가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곡선이 부드러워서 일부러, 미학적으로 곡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경사면의 각을 완화해서 편하게 산을 오르려다 보니 곡선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 새겨진 옛길들을 걷다 보면 최초로 길을 만든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그리워진다.
언덕길을 오르기 전 마지막 논두렁에서 바라본 작은 논의 정경이나, 재를 넘다 쉬면서 바라보던 앞산의 풍경을 옛 사람들과 같이 내가 지금 바라본다는 것은 나 또한 그 길의 역사에 편입됨을 의미한다. 할아버지가 보았던 풍경을 아버님이 똑같이 바라보고, 같은 길목에서 나 또한 동일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길도 축음기의 레코드판같이 풍경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레코드판은 음을 저장했던 것이 아니라 음의 지문을 내장하고 있다가 축음기를 돌리면 홈이 파인 흔적을 바늘이 읽어내고 그 소리가 증폭돼 언제나 같은 노래를 부르게 되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길은 풍경의 저금통이다. 옛 사람들이 남겨놓은 ‘그림일기’다. 한반도를 살다 간 조상들이 물려준 농경시대의 유적이며 유산이다. 이 땅에 아직도 남아 있는, 삶의 흔적이 깊이 각인된 길과 마을들 그리고 집터들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미(美)를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으로 실천했던 옛 조상들의 유산을 이제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옛길의 파괴는 단순 파괴가 아니라 학살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길도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1천만 대가 넘는 자동차 시대를 위해, 도로 건설로 학살되는 길이 더 이상 없도록 하기 위해 이제 보존해야 할 ‘길’들을 강제로 지정하는 ‘경관법’ 같은 것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는 단지 아름다운 경관을 보존하자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 아름다운 땅 한반도를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야 할 윤리적 문제이기도 하다.
언제나 이 땅에 도로공사가 끝나고 잘못된 도로를 원상태로 회복하는 공사 이야기가 들려올 것인가? 굉음이 지속되는 토건국가에서 문화의 나라로 가기 위한 서곡은 언제나 들려올 것인가?
몸뚱아리로 만든 ‘풍경의 저금통’은 외려 복각의 대상이 아니던가 ▣ 정기용/ 건축가 누구나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쉽사리 도로공사를 목격하게 된다. 전 국토가 공사장 같아 보이는 것도 여기저기 파헤쳐진 도로의 모습이 늘 우리를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도로의 유지·관리·보수는 늘 필요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때로는 정말로 우리의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도로 공사판을 지날 때가 있다. 이미 멀쩡하게 도로가 있는데 바로 옆에 평행하게 또 다른 도로를 건설한다. 기존의 도로가 차량으로 붐비기는커녕 오히려 한적한데도 4차선 도로를 별도로 만드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4차선 도로와 고속도로가 다투는 계곡
이를테면 영동∼무주 간 4차선 도로공사가 좋은 예다. 굽은 길을 펴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미래의 관광도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인가. 그도 아니면 물류비를 절감하기 위한 것인가.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배정된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서인가. 알 수가 없다. 논밭을 갈아엎고 배수공사와 도로기반공사, 터널공사, 교각공사에 온갖 토목공사가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다가 드디어 무주읍에 도달해 공사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더니, 무주를 지나 계곡과 아름다운 공간을 헤치며 장수 쪽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무주의 작은 상권이 대전으로 흡수 이동되다시피 한 몇 년 동안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무주읍 내 남쪽으로 4차선 도로가 달려가며 아늑하게 완만한 남쪽의 경사면과 상징적인 산자락을 무참히 절단하니, 그 흉물스런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장수 쪽으로 진행하는 지방도를 따라 신설 4차선 도로와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가 좁은 산골짜기를 앞다투어 빠져나간다. 평화스런 산골의 경관을 난도질하는 풍경 앞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누가 이 오래된 미래의 땅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신설 도로의 효용은 오래된 풍경을 절단할 만큼 합당해 보이지는 않는데, 문제는 이런 살벌한 풍경이 여기 무주 땅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닌 데 있다. 이제 무분별한 도로공사는 자제할 때가 되었다. 무주와 같이 청정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땅을 도로 확장의 이름으로 훼손해선 안 된다. 대도시 지역이 아닌 무주는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만으로도 충분히 전국 일일생활권과 접속돼 있고, 아무리 관광객이 쇄도한다고 해도 도로율이나 폭이 좁아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기존의 지방도나 농촌의 길들을 보존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길'은 도로가 아니다. 신체의 연장이다(왼쪽). 도로는 '길'에 밴 삶의 흔적과 자취를 말살한다(오른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