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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70년대를 사는 주변부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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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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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의 노동시대]

중심-주변의 분할 지배체제에서 전태일 시대의 비참함을 감내하는 비정규직
연대와 저항을 무력화하는 하청은 국경을 넘어 전 지구적 수준에서 이뤄져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용자들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개인적인 이삿짐과 벌초까지 우리한테 시켜도 해고 위협이 두려워 끽소리 한 번 못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생긴 뒤부터는 머슴 부리듯 하던 것을 싹 끊었어요. 난생처음 노조를 만들고 당당하게 교섭도 해보면서 살아 있는 존재로 느껴요.” 2002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만난 경기도노조 의정부지부 한 조합원의 말이다. 그는 청소용역 노동자였다. “(노동조합운동을 하면서) 내 자신이 노동자이면서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생기고, 하나의 인간 경희(본인 이름)를 느끼고 있어요.”(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나섰던 한 여성 노동자의 수기)


일 대 일의 사적인 노동관계

노조가 가장 절실했던 두 노동자의 말은 3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서로 겹친다. 노동 유연화 속에서 주변부 노동자가 대거 등장하고, 이들의 노동 풍경이 1970년대 무권리 상태의 노동과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2005년 8월 현재 파견·용역·하도급·호출근로 등 간접·특수고용 노동자는 190만 명에 이른다. 노조 조직률은 정규직은 22.7%인 반면 비정규직은 3.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조합원 176만 명 가운데 정규직이 149만 명, 비정규직이 26만8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주변부 노동자들은 배가 고프고 노조도 고프다. 2002년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 조합원들이 쓰러져 자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경쟁이 격화될수록 노동자는 중심-주변으로 나뉘고, 이런 ‘분할 지배체제’에서 중심은 주변부 노동자들의 희생과 배제에 기대어 상대적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누린다. 이런 현실에서 중심부 정규직이, 비록 사회적 시선이 싸늘하다 해도 주변부 노동자와 연대하는 ‘마음을 얻는 싸움’에 나서기는 어렵다. 자본은 대기업의 내부 노동자들한테만 일부 몫을 양보할 경우 아직 이윤을 남길 수 있지만, 주변부 노동자들에게까지 나눠준다면 더 이상 축적할 여지가 없어진다.

외환위기 이후에 도입된 정리해고는 외자 유치뿐만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을 쉽게 하기 위한 핵심 조처였다. 상당수의 작업을 하청으로 돌려 노조를 회피하는 사용자의 전략은 일상화됐다. 급증한 파견·용역 등 ‘간접 고용’은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사용자와 관계를 맺게 되고, 자연히 노조도 만들기 어렵다. 누가 진짜 사용자인지 경계가 모호해지고, 단체교섭을 해야 할 상대자는 뒤로 숨어버린다. 이처럼 착취 관계가 은폐되고 사용자는 직접 고용에 따른 책임에서 해방되며, 노동은 고립화된다.

다양한 하청노동 또한 노동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원자화되고 취약한 대규모 노동 인구를 만들어낸다. 하청 확산은 사용자가 져야 할 의무를 은폐하는 복잡한 체계를 낳는다. 극심한 차별과 저임금에도 아무런 저항과 요구도 못한 채 팍팍한 노동을 묵묵히 수행해야 한다. 표면상의 형식적인 고용주가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 조건을 바꿀 진짜 사용자를 찾아내 이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데, 진짜 사용자들은 뒤로 빠져 나몰라라 할 뿐이다.

하청은 국가의 영토를 넘어 전 지구적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초국적 자본들은 전화상담센터 등 정보 기반 직무들의 거점을 잇따라 인도에 세우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영국 항공사가 위성을 통해 수천만 건의 항공권·숙박권 판매 티켓을 일거리로 보내면 인도 노동자들은 티켓과 대금청구서를 일일이 대조해 분류한 뒤 파일로 입력해 본국에 전송 처리한다. 호출근로는 아예 전화 한 통화로 간단히 근로계약이 이뤄진다. 이처럼 일 대 일의 사적인 관계로 노동이 이뤄지는 한 노동조합을 매개로 한 연대와 저항은 꿈도 꿀 수 없다.

1970년대 노동자들은 공장 안팎에서 끊임없이 ‘공돌이’ ‘공순이’라는 언어적 모욕을 받아야 했고, “공단 안에는 처녀가 없다”는 악랄한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작업모 바깥으로 머리카락이 삐죽 나오면 그 자리에서 해고당할 정도의 혹독한 노동 규율이 공장을 지배했다. 공장문을 들어서기 전에 노동자들은 자존심을 바깥에 버려두고 들어가야 했다. 노동자는 시민도 계급도 되지 못했다. 거대한 차별 속에서 비참한 공장 세계를 겪고 있기는 요즘의 하청·파견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그들 스스로 조직화에 나선다

그런데 주변부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나면 구매력이 떨어지고, 자본이 만들어낸 제품이 시장에서 팔리지 못해 이윤을 획득하기 어려워진다. 21세기 들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주택 경기 붐과 주식시장 활황은 임금소득 대신 ‘자산소득’을 올려줘 상품의 수요 기반을 창출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된 측면이 강하다. 개별 자본들도 수익성이 점차 악화되는 ‘생산’에서 탈피해 ‘금융적 축적’으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다. 당연히 ‘괜찮은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고, 저임금 주변부 노동이 급증하게 된다. 몇몇 노동 연구자들이 한국 노동운동을 ‘때늦은 성장과 때이른 침체’라고 표현하지만, 새로운 노조 결성 흐름이 주변부에서 전염병처럼 일어날 수도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국제서비스노조연맹(SEIU)이 1991년부터 ‘빌딩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Justice for Janitors) 캠페인을 벌여 주변부 노동자 조직화에 극적으로 성공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꿈’이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데도 여전히 이 꿈에 갇혀 있는 정규직 ‘조직노동’이 침묵하는 사이 주변부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화에 나선 것이다. 1970년 11월 전태일이 분신하면서 “어머니… 배가… 고파요”라고 말했듯, 주변부 노동자들은 배도 고프고 노조도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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