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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간호사 헬렌이 의사가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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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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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호스피스까지 된 전.진.상 의원 배현정 원장의 삶

사진/미혼의 배현정 원장은 1년에 한번꼴로 가족들을 만나러 벨기에를 다녀온다고 한다.(박승화 기자)
스물여섯에 가난한 사람들의 영원한 벗이 되길 결심하고 한국땅을 밟은 파란 눈의 간호사. 서른다섯의 뒤늦은 나이에 이국 땅에서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된 사람. 그리고 삶의 막장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말기암 환자들을 위해 언제나 24시간 대기중인 호스피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이들은 스스로 여러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돈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봉사정신은 물론 늘 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며,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뭔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됐지요. 그런데 의사가 된 이유? 이곳에 의사가 필요했거든요.”

72년, 봉사의 마음으로 밟은 한국땅


“간호사가 왜 남의 나라에서 뒤늦게 의대생이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공부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들’이 의사를 필요로 했고, 그들을 위해 뭔가를 단단히 갖춰야 했기에 그냥 의사공부를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본명(마리 헬렌)보다 배현정(55)이란 한국 이름이 더 친숙하다”고 말하는 서울 금천구 시흥5동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는 의원, ‘전.진.상 의원’ 원장이다.

전.진.상. 사람이름으로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온전한 자아봉현’의 전(全), ‘참다운 사랑’이란 뜻의 진(眞), 그리고 ‘끊임없는 기쁨’을 뜻하는 상(常)을 합한 말이다. 가톨릭의 박애와 봉사정신을 담은 이 말을 모토로 한 전.진.상 의원의 역사는 바로 배 원장의 봉사의 역사와 같다.

벨기에의 아리따운 백의의 천사였던 배 원장이 한국땅을 밟은 것은 1972년 10월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세상의 모든 인류는 한 형제라는 정신과 국제적인 나눔의 정신으로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의료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많은 나라 중에 한국을 선택한 것은 그가 가입한 1939년 벨기에서 만들어진 국제적인 가톨릭 신자들의 봉사모임인 국제가톨릭형제회(A.F.I)의 한 한국인 동료회원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에 온 그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과정을 수료하는 등 한동안 한국말과 문화를 익혔다. 그러다 75년 10월 마침내 평생의 동지인 약사 최소희씨, 사회사업가 유송자씨, 그리고 김중호 신부(의사)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인 시흥동에- 37평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전.진.상 가정복지센터 및 무료진료소와 약국을 개원하면서 본격적인 봉사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비록 당시 ‘전.진.상 설립’은 시흥동 일대에 사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턱없이 ‘작은 겨자씨’에 불과했지만 복음 같은 일이기도 했다. 70년대 한국의 많은 달동네가 그랬듯이 서울 관악산 자락에 있는 시흥동에도 찢어지는 가난이 덕지덕지 기운 판잣집 지붕처럼 마을 집집마다 붙어 있었고, 그 찌그러진 가난 속에는 언제나 병자가 한둘 있었다. “지금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핵으로 죽고 홍역으로 죽기도 하고, 폐렴과 영양부족으로 죽어나가기도 하는 등 눈뜨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시절의 일이었죠.”

배 원장은 무료진료소에서 하루종일 간호봉사의 일을 했다. 수많은 가난한 환자들의 생명이 배 원장 등 전.진.상 사람들의 손길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시흥동 가난한 병자들에게 병원의 문턱은 언제나 높았기에 전.진.상에서 벌이는 주말 무료진료만으로는 그들의 갈증을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전.진.상에 상주하는 의사가 절실했다.

동네의원, 15개 과목을 진료하다

사진/배 원장이 시흥동에 사는 한 할아버지를 진료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토요일에 일부 뜻있는 의사들이 와 진료를 해주었지만 주중에는 의사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이 많았어요. 그렇다고 월급 많은 의사를 채용할 형편도 안 되는 데다 올 의사도 없구요. 오더라도 지속적으로 있을 사람은 더더욱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1981년 3월 배 원장은 결국 중앙대 의대 본과 1년에 편입했고, ‘피나는 노력 끝에’ 85년 2월 의사면허증을 취득했다. 나아가 배 원장은 “영세빈민지역에서 좀더 효율적인 진료를 위해서는 가정의학 전문의 과정을 수료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곧 가톨릭 중앙의료원에서 가정의 전문의과정을 수료, 88년 2월에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까지 따게 됐다.

이때부터 배 원장은 지금까지 전.진.상 의원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봉사하면서 산부인과, 치과 등 동네의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15개 과목 의료 진료를 하는 ‘종합병원 수준의 의원’으로 전.진.상 의원을 일궈냈다.

“지난해 의약분업 초기에 의사들이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알게 모르게 훌륭한 의사들도 많아요. 토요일마다 서울대병원의 레지던트들이 오고요. 주중 3일 오후 늦게는 각 대학병원에 계신 교수님들이 와 진료를 합니다. 60여명이 되는 고급인력이 팀을 이뤄 전.진.상 사람들과 함께 돈없고 대책없는 환자들을 위해 꾸준히 일해오고 있습니다.”

배 원장 자신도 이들과 함께 환자를 맡는데, 주 3일간엔 저녁 9시까지 환자들을 돌본다. 늦게 귀가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을 위한 배려다. 배 원장은 특히 매주 목요일에는 일명 루게릭병이라고 불리는 ALS 환자들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방문 진료를 한다. 지난 85년부터 배 원장은 호스피스 활동도 벌여오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고통받는 말기암 환자들이 여생을 좀더 편안하고 보내고 행복한 죽음을 맞도록 하기 위해서다. 호스피스에 대해서는 배 원장은 할말이 많다.

“한국에서는 호스피스 활동하는 의사가 별로 없어요. 호스피스에 대해 매우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호스피스는 시설에서 요양을 하거나 누군가 단지 위로해 주는 일이 아닙니다. 주로 신앙인이나 간호사가 많은데 사실은 호스피스는 의사가 필수죠. 국내서도 어서 빨리 ‘의사와 간호사의 할 일, 처방’ 등에 관한 규정이 제도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진.상 의원은 사실 여느 일반 의원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다른 점은 일반 환자들을 받지 않고, 영세민 환자라고 할지라도 자동차로 15분 거리 안쪽에 있는 지역주민들이 주진료대상이다. 가난한 환자들을 충분히 진료하기 위한 나름의 방침인 것이다.

전.진.상 의원의 환자가 되려면 전·월세 계약서 등을 갖고 일단 전.진.상 복지관 소속 상담사(최혜영 사회사업가)를 먼저 만나야 한다. 최 상담사는 이 상담을 통해 환자들의 가정형편과 가족병력 등을 살펴 형편 등에 따라 5등급으로 나눈다. 이중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영세민인 D·E등급의 경우에는 소정의 치료비를 부담토록 하고 나머지는 완전 무료다. 또 이 상담과정을 통해 청소년 문제, 아동 문제, 노인 문제가 있는 환자 가정의 경우에는 복지관에서 그에 알맞은 도움을 준다.

전.진.상은 한마디로 의료봉사와 노인·장애인·가정·아동·청소년·지역복지 등 사회복지가 결합된 한국에서는 독특하고도 귀한 ‘의료사회복지’ 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전.진.상 복지관을 중심으로 그 아래 가족중심의 진료를 벌이는 전.진.상 의원, 의료보호 대상자 등 생활이 어려운 환자의 약 비용을 지원하는 전.진.상 약국, 그리고 복지관 소속의 유치원 공부방 등…. 배 원장 등 전.진.상 사람들은 바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 근처 가난한 지역주민들에게 이른바 ‘토털 케어’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의원이나 약국에서 나오는 모든 수입은 복지관으로 투입된다.

주차 문제가 가장 큰 걱정

사진/지난해 말 한 성당에서 배원장을 비롯해 ‘전.진.상’ 식구들이 김수환 추기경 등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운영상에 가장 큰 어려움이 뭐냐”고 묻자 배 원장은 뜻밖에 주차 문제를 든다. “주변에 말기암 환자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래서 새벽에 갑작스레 연락 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병원 차고 앞에 누군가 그냥 무단주차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중증 장애환자들에게 가려면 의료장비를 가득 싣고 급히 가야 하는데, 이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거예요. 비상등을 켜고 노란 줄도 치고 경찰에 연락하기도 하고 별 수단 다 쓰는데 끊이지 않아요.” 전.진.상 후원회 후원자들의 쌈짓돈과 일부 환자들이 내는 소정의 진료비 등으로 운영되는 데다 200여명 이상의 많은 환자들 돌봐야 하는 만큼 재정과 인력부족 등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일 텐데, 배 원장은 기껏 주차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한다. 그의 환자사랑의 진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6여년을 오직 한곳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해 온 벽안의 처녀 여의사, 배 원장. 그는 이같은 봉사의 삶으로 지난 90년 벨기에 왕으로부터 기사훈장을, 99년에는 제9회 여의대상 등 많은 수상을 했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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