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여행의 빛나는 선물, 세계의 인연들이 찾아올 때 느끼는 행복
“풍경만 보고 왔는가, 사람도 사귀고 왔는가”를 늘 자신에게 묻는다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대부 같은 사람, 환경운동연합의 최열 전 대표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이었다. “외국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나이만큼 되는 수의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나라의 정취를 다시 느끼며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외국 여행이 삶의 외연, 인연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들었다. 그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세계로 나갔더니 세계가 당신에게로 오기도 하던가? 풍경만 보고 왔는가, 사람도 사귀고 왔는가?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곳은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다. 당시 나는 거기에서 살고 있었고, 그는 여행 중이었다. 나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닌다. 관광도 유람도 아닌, 고달픈 취재와 답사 여행이기는 하다. 나는 내 자신에게 늘 물어본다. 풍경만 보고 왔는가, 사람도 사귀고 왔는가? 장차 나라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연하의 친구들을 위해서 자랑 삼아 이 글을 쓴다. 여행의 빛나는 부산물인 친구에 대해서 쓴다. 해마다 성탄절이나 연말이 되면 내 집 서재에 20, 30명의 친구들이 모인다. 동업자들? 그러니까 문인들? 아니다. 그러면 동창생들? 아니다. 나와 해외여행을 함께한 여행 친구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출신 학교도, 직업도 다르다. 심지어는 연령대도 다르다. 그런데도 모이면 죽이 척척 맞는다. 여행의 놀라운 힘이다. 나는 1990년대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 가장 긴 기간인 근 8년은 미국에서 보냈다. 따라서 미국에는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다. 미국인들도 있고 한국인들도 있다. 한 해 네댓 차례, 미국에서 사귄 반가운 친구들이 내 집에 온다.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미국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한 미국인 친구는 호텔이 아닌 내 집에서 아예 며칠 묵기도 했다. 23년 전에 사귄, 나와는 동갑내기인 일본인 친구는 내 집에다 여장을 풀고는 자기 집인 것처럼 지내다 일본으로 돌아간다. 외국인 손님 접대는 퍽 조심스럽고 힘에 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그런 손님 접대가 안기는 피곤은 퍽 감미롭다. 전화가 걸려오고 저쪽에서 이름을 대면 우리 부부는 약간씩 헷갈리고는 한다. 만남을 통한 우정의 경험이 진하지 못했을 때, 그 기간이 길지 않을 때 특히 그렇다. 가만있자, 어디에서 만난 분이더라? 중국에서 나의 중국 여행을 도와주었고, 내 책의 중국어판을 번역해준 한국인 부부도 내 집을 두어 차례 다녀갔다. 이분들이 다녀가면 며칠 동안 내 집에서는 향긋한 중국 술 냄새가 풍긴다. 내가 이 소중한 인연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는 한 내 집에서는 계속해서 중국 술 냄새가 풍길 것이다. 두 차례 나의 몽골 여행을 도와준 몽골인 젊은이도 한국에 들어오면 내 집에 들르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빈손으로 와도 좋은데, 그는 몽골 술 ‘칭기스칸 보드카’를 들고 온다. 한번은 한국을 여행 중이던 자기 숙부까지 내 집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몽골 여행에 동행했던 한 후배는 몇 달 전, 혼자 몽골을 다녀왔다면서 칭기스칸 보드카를 들고 내 집을 찾아왔다. 술 좋아한다는 소문은 내어놓을 만하다. 소문난 집이어야 먹을 것도 많다. 머나먼 이집트에서 나의 여행을 도와준 교민도 서울에 들어오면 우리 집에 연락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한 차례 내 집을 다녀간 적도 있다. 그를 맞아 대접하는 일은 이집트 여행을 되풀이하는 일이다. 그와 술잔을 나누는 일은 머나먼 나라 이집트의 정취를 고스란히 다시 경험하는 일이다.
그리스에서 나의 여행을 도와준 교민들도 있다. 아직 내 집을 다녀가지는 않았지만 이메일은 지금도 오간다. 조만간 그들도 그리스의 전통 독주 ‘우조’를 들고 찾아올 것 같다. 그럴 인연이 아니라면 그들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내가 답장을 보내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탈리아 여행을 도와준 유학생은 전공이 성악이었다. 나는 요즘도 독창회 안내 광고가 나오면 유심히 본다. 그 유학생이 귀국해서 독창회를 연다면 나는 넥타이를 매고 달려갈 것이다.
지난 10월 독일에서는, 한국인을 아내로 맞은 한 독일인의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내 책의 독일어 번역자이기도 한 그는 자동차까지 몰고 나와 며칠 동안이나 우리를 도와주었다. 수백km를 오갔으니 기름값도 만만찮게 들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내민 작은 봉투를 끝내 거절했다. 그 부부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우리는 초행길이었던 독일 여행의 긴장과 흥분을 고스란히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여행은 나에게 늘 황홀의 체험이었다. 6년 전 처음으로 파리에 발을 들여놓고 전화를 걸었을 때, 나의 선배이자 내가 연재하던 소설의 삽화를 그려주기도 했던 화가가 터뜨렸던 일성. “야, 드디어 떴구나!”
혼례식 최고의 선물?
프랑스에만 가면 처제 집에 머물면서 그 부부의 도움을 받는다. 처제가 한국에 들어오면 내 집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식사를 함께 한다면 인원은 우리 부부, 처제, 이렇게 세 사람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든 프랑스에서든 우리 세 사람만 식탁에 앉는 일은 드물다. 다른 식구가 끼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파리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우리 셋, 화가 한 사람, 이렇게 저녁을 먹기로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은 모두 일곱이었다. 인연의 외연이 뜻밖에 확대된 까닭이다.
지난해 <한겨레21>과 함께 베트남을 여행했다. 우리를 도와준 유학생이 일시 귀국해, 지난달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가 결혼한다는 것도 <한겨레21>을 통해 알았다. 결혼식장으로 달려갔다. 신랑이 반색을 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며칠 뒤 그에게서 ‘최고의 선물’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메일이 한 장 날아들었다. 뜻밖의 하객에 약간 흥분한 신랑이 쪼르르 신부에게 다가가 그 소식 전하니까 신부가 감격의 눈물을 비치면서 그러더란다. “당신이 나에게 준 혼례식 최고의 선물이네요?”
그것은 여행의 인연이 나에게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다.
“풍경만 보고 왔는가, 사람도 사귀고 왔는가”를 늘 자신에게 묻는다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대부 같은 사람, 환경운동연합의 최열 전 대표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이었다. “외국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나이만큼 되는 수의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나라의 정취를 다시 느끼며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외국 여행이 삶의 외연, 인연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들었다. 그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세계로 나갔더니 세계가 당신에게로 오기도 하던가? 풍경만 보고 왔는가, 사람도 사귀고 왔는가?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곳은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다. 당시 나는 거기에서 살고 있었고, 그는 여행 중이었다. 나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닌다. 관광도 유람도 아닌, 고달픈 취재와 답사 여행이기는 하다. 나는 내 자신에게 늘 물어본다. 풍경만 보고 왔는가, 사람도 사귀고 왔는가? 장차 나라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연하의 친구들을 위해서 자랑 삼아 이 글을 쓴다. 여행의 빛나는 부산물인 친구에 대해서 쓴다. 해마다 성탄절이나 연말이 되면 내 집 서재에 20, 30명의 친구들이 모인다. 동업자들? 그러니까 문인들? 아니다. 그러면 동창생들? 아니다. 나와 해외여행을 함께한 여행 친구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출신 학교도, 직업도 다르다. 심지어는 연령대도 다르다. 그런데도 모이면 죽이 척척 맞는다. 여행의 놀라운 힘이다. 나는 1990년대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 가장 긴 기간인 근 8년은 미국에서 보냈다. 따라서 미국에는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다. 미국인들도 있고 한국인들도 있다. 한 해 네댓 차례, 미국에서 사귄 반가운 친구들이 내 집에 온다.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미국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한 미국인 친구는 호텔이 아닌 내 집에서 아예 며칠 묵기도 했다. 23년 전에 사귄, 나와는 동갑내기인 일본인 친구는 내 집에다 여장을 풀고는 자기 집인 것처럼 지내다 일본으로 돌아간다. 외국인 손님 접대는 퍽 조심스럽고 힘에 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그런 손님 접대가 안기는 피곤은 퍽 감미롭다. 전화가 걸려오고 저쪽에서 이름을 대면 우리 부부는 약간씩 헷갈리고는 한다. 만남을 통한 우정의 경험이 진하지 못했을 때, 그 기간이 길지 않을 때 특히 그렇다. 가만있자, 어디에서 만난 분이더라? 중국에서 나의 중국 여행을 도와주었고, 내 책의 중국어판을 번역해준 한국인 부부도 내 집을 두어 차례 다녀갔다. 이분들이 다녀가면 며칠 동안 내 집에서는 향긋한 중국 술 냄새가 풍긴다. 내가 이 소중한 인연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는 한 내 집에서는 계속해서 중국 술 냄새가 풍길 것이다. 두 차례 나의 몽골 여행을 도와준 몽골인 젊은이도 한국에 들어오면 내 집에 들르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빈손으로 와도 좋은데, 그는 몽골 술 ‘칭기스칸 보드카’를 들고 온다. 한번은 한국을 여행 중이던 자기 숙부까지 내 집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몽골 여행에 동행했던 한 후배는 몇 달 전, 혼자 몽골을 다녀왔다면서 칭기스칸 보드카를 들고 내 집을 찾아왔다. 술 좋아한다는 소문은 내어놓을 만하다. 소문난 집이어야 먹을 것도 많다. 머나먼 이집트에서 나의 여행을 도와준 교민도 서울에 들어오면 우리 집에 연락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한 차례 내 집을 다녀간 적도 있다. 그를 맞아 대접하는 일은 이집트 여행을 되풀이하는 일이다. 그와 술잔을 나누는 일은 머나먼 나라 이집트의 정취를 고스란히 다시 경험하는 일이다.

친구는 여행의 빛나는 부산물이다. 당신은 세계로 나가 풍경만 보고 왔는가, 사람도 사귀고 왔는가. (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