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완의 노동시대]
여차하면 더 낮은 임금과 더 무기력한 노조를 찾아 철수하는 자본
노동은 20세기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를 뺏기고 세계화에 발목 잡혔다 세계화는 20세기 말 이후 ‘노동자들이 만난 유령’이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 회사 쪽과 맺은 2005년 단체협약 제32조(해외 현지공장)는 유령에 맞서 고용과 임금을 지키려는 싸움의 한 기록을 보여준다. ‘회사는 △해외공장 건설과 운영을 이유로 일방적인 정리해고·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 △국내공장의 생산물량을 2003년 수준으로 유지하고 △세계경제의 불황 등으로 공장 폐쇄가 불가피할 경우 해외공장의 우선 폐쇄를 원칙으로 한다.’ 현대자동차노조뿐 아니라 국내 자동차산업 노조들은 2003년부터 ‘해외 현지공장 설립 및 합작 등에 따른 자본이동에 관한 특별협약안’을 마련해 주요 교섭안건으로 제출하고 있다. 기존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 무너뜨려
생산 및 금융의 세계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본의 간편한 이동이다. 자본은 바닥을 크게 차지하는 기계류나 다수의 공장 노동자들을 떼어놓고 객실에 소지할 간단한 휴대품(서류가방·노트북·휴대전화)만 들고서 가볍게 전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이처럼 자본의 지리적·공간적 이동과 재배치는 훨씬 쉬워졌다. 언제든지 보따리를 싸서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 할 경우 여러 가지 제약에 부닥친다. 가족과 헤어져야 하고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언어 소통 문제도 있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해도 대부분 이주노동자의 설움, 즉 인종과 민족에 따른 차별을 겪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전세계 모든 국가들은 ‘더 낮은 임금’과 ‘더 약한 노동조합’을 내걸고 이른바 ‘바닥을 향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느 자본 할 것 없이 노동권 보호가 가장 낮은 지역을 찾아 떠돌기 때문이다. 자본은 노조의 벽이 있는 지역에서 투자를 철수시켜 무노조 신생 공장지대(그린 필드)로 이동하겠다고 위협하고, 이런 위협 앞에 국가는 자본을 붙들려고 또 그런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임금을 낮추고 노동 보호를 줄이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렇듯 각국 정부가 외자유치를 위해 노동에 대한 규제를 대폭 줄이고 노동의 힘을 약화시키는 ‘국제 미인대회’를 벌일 때 다국적 기업은 한발 떨어져 편하게 보고 즐긴다. 더욱 쉬운 해고, 더욱 약한 노동조합이라는 매력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국가를 선택(체제쇼핑·regime shopping)만 하면 된다.
20세기 말 세계화는 자본 축적의 위기에서 등장했다. 자본은 이윤을 안겨줄 시장과 지역을 찾아 돌아다니지만, 이윤을 방어·회복하는 방법은 오직 임금을 낮추는 것뿐이라고 여긴다. 노동 비용을 줄이고 임금에 의한 이윤압박을 피하려고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 고용을 늘린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에 상당수 노동자들은 더 오래, 더 많이 일해도 생활수준은 한 세대 전 그들의 부모보다 더 낮거나 아주 서서히 개선된다. 이 과정에서 전세계 노동대중은 저임금 경쟁에 빠져들게 된다. 노동해방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외치는 시대가 아닌가?
세계화는 또 기존의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을 무너뜨리고 약화시킨다. 수익성 악화의 원인으로 과도하게 비싼 임금을 지목하고, 노조와 노동의 힘에 의해 형성된 ‘경직성’을 탓한다.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 시절이 끝나고 자본 분파들 간의 과잉설비·과잉생산에 따른 경쟁 격화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자본은 위기의 책임을 노동에 돌리기 시작했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들고 노동의 힘을 제거하는 것만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외쳐왔다. 이에 따라 노동세력이 그동안 자본 및 국가와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수많은 친노동적 제도와 관행들이 축소·해체되고 있다. 기존의 사회협약이 깨지고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단체협약과 고용보호 법률도 약화되고, 성과주의 도입에 따라 ‘임금 유연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자본 가는 곳에 갈등 따라간다
2차 대전 이후 노동의 권리 확보는 기나긴 투쟁의 산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전쟁의 반대급부로 제공된 측면도 있다. 전시 동원돼 병사로 끌려갔다가 죽거나 군수물자 조달 공장에서 일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은 노동에 정치적 권리와 노동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자동화 및 ‘자본집약적’이 되어 자국 노동자와 군인, 시민의 희생을 0에 가깝게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노동자 동원도 사라지고, 이제 노동에 양보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해줄 이유가 없어졌다. 국가와 자본이 노동에 대한 책임과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일까?
지난 20세기에 노동은 자신들이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힘을 토대로 대중 동원을 통해 작업장과 생활조건을 더 낫게 바꾸었고, 뭉쳐서 싸우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신념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는 이런 오랜 신념에 구멍을 냈다. 싸우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노동시장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비버리 실버가 최근 펴낸 <노동의 힘>은 20세기 내내 자본이 규율 잡힌 저임금 노동이라는 신기루를 찾아 전세계를 떠돌았지만, 항상 새로운 장소에서도 전투적 노동소요의 물결을 재창출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본이 가는 곳에 갈등이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떠나겠다고 위협하는 곳에서 ‘노동의 힘’은 ‘세계화된 시장’의 힘 앞에 무기력할 뿐이다.
노동은 20세기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를 뺏기고 세계화에 발목 잡혔다 세계화는 20세기 말 이후 ‘노동자들이 만난 유령’이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 회사 쪽과 맺은 2005년 단체협약 제32조(해외 현지공장)는 유령에 맞서 고용과 임금을 지키려는 싸움의 한 기록을 보여준다. ‘회사는 △해외공장 건설과 운영을 이유로 일방적인 정리해고·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 △국내공장의 생산물량을 2003년 수준으로 유지하고 △세계경제의 불황 등으로 공장 폐쇄가 불가피할 경우 해외공장의 우선 폐쇄를 원칙으로 한다.’ 현대자동차노조뿐 아니라 국내 자동차산업 노조들은 2003년부터 ‘해외 현지공장 설립 및 합작 등에 따른 자본이동에 관한 특별협약안’을 마련해 주요 교섭안건으로 제출하고 있다. 기존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 무너뜨려

세계화 시대에 모든 국가는 더 낮은 임금을 걸고 경쟁을 벌인다. 2002년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화 반대 시위. (사진/ AF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