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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창석] 별아, 아빠는 최선을 다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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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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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없는 탄생’을 위한 눈물나는 노력, 김창석 기자 부부의 인권분만 체험기


<한겨레21>은 이번주부터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합니다. 새롭게 연재될 ‘체험! 세상 속으로’는 <한겨레21> 기자들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직접 체험하며 부대끼는 얘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사건의 현장에서 기자는 항상 관찰자이자 감시자입니다. 그러나 이 지면에서 우리는 그런 태도를 잠시 접고 참여자이며 직접 체험자로서 바라본 세상을 그려나갈 것입니다.

편집자



르바이에분만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의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 김창석 기자가 신생아의 탯줄을 직접 자르고 있다.
“삼행시 중에 박·미·선도 있어. 박 박영규 부인, 미 미달이 엄마, 선 선우용녀 딸. 재밌지?”

“…”

“해·파·리는 알아? 해 해파리야, 파 파리가 너 좋아한대, 리 리얼리? 안 웃겨?”

“…”

“검게 탄 붕어빵, 서부 총잡이의 죽음, 처녀의 임신,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좀더 일찍 빼지 못한 거래.”

“그만해.”

스톱워치를 목에 걸고…

1월5일 오전 10시 경기 일산시 동원산부인과 분만대기실. 아내는 웃음 대신 핀잔으로 응수했다. 짜증난 빛이 역력했다. 나는 머쓱해졌다. ‘아, 이상하다. 아프다고 할 때 이렇게 웃겨 주면 상당히 나아진다고 했는데…. 준비한 대로 되지 않는구나.’ 계산은 그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진통, 아니 규칙적인 ‘자궁수축’이 온 지 16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여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자궁문은 3㎝ 정도 열렸지만 수축이 강하게 오지 않았다. 초산의 경우 평균 수축 시작 12∼15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나온다. 그런데 아내는 그 시간을 넘겨버렸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인터넷 유머란을 뒤져가며 찾아온 건데…. 조금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권출산운동가들은 ‘진통’ 대신 ‘자궁수축’이라는 말을 쓰면 고통이 덜하다고 말한다. 나도 그 뜻에 공감해 수축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침착한 아내의 입에서 “정말 장난이 아니야”와 같은 비이성적인 문장들이 반복적으로 튀어나올 때면 진통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아내는 유일한 파트너인 내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 아내는 여유로웠다. 1월4일 새벽 ‘이슬’(출산 직전 나오는 피 등 분비물)이 비치고 14시간 뒤인 저녁 5시30분부터 수축이 오자 아내는 뛸 듯이 기뻐했다. 1월2일 병원에서 “예정일(1월5일)보다 출산이 상당히 늦어질 것 같다”는 소견을 들은 직후부터 24층 아파트 계단을 쉴새없이 오르내리던 터였다. ‘분만촉진운동’을 하면 아이가 빨리 내려올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저녁 때마다 우리는 빨리 내려오라고 태담을 했고, 신기하게도 수축은 정확히 출산예정일 전날 저녁부터 시작됐다. 아이가 우리의 말을 알아차린 것만 같았다. 나는 출산에 대비해 사놓은 스톱워치를 목에 걸고 수축간격과 수축지속시간을 재고 수첩에 적었다. 수축은 10분꼴로 왔고 한번에 30초 정도 계속됐다. “아직 멀었지?”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고, 아내도 가끔씩 웃었다. 밤새도록 수축이 계속됐고 수축간격이 드디어 5분 안팎에서 왔다갔다했다. 이제 자궁문이 조금은 열렸을 것이다. 자, 이제 병원으로 출발해야지. 출발 직전 아내는 비장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나를 믿고 별이(우리 아기의 애칭)를 믿고 당신을 믿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

1월5일 새벽 4시. 우리 세 식구는 장모님과 함께 자유로의 새벽공기를 가르며 일산으로 향했다. 임신 3개월째 아내와 출퇴근을 함께하기 위해 마련한 중고 프라이드에서는 우리가 별이에게 가장 자주 들려주던 음반인 소프라노 김영미의 <자장 자장2-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밤 달님별님∼ 살랑살랑 속삭여주네∼ 들녘엔 바람 소근소근∼ 내 귀에 대고 간지러주네∼.” ‘우리 아가 무얼 하나’라는 제목의 프랑스민요는 흥겹기까지 했다.

임신·출산 과잉관심증 환자?

'분만 직전.' 분만촉진운동은 자연분만의 지름길이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계속 분만촉진운동을 하고 있다.
‘별아,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너를 보는구나. 너에게 자유를 안겨주는구나. 아, 참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길도 마침 자유로란다.’ 내가 이런 유치한 생각과 낭만적인 감상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은 자신감 때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고, 출산과정을 암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의 가로등 불빛이 휙휙 지나가면서 아내와 내가 함께 보낸 임신기간 동안의 기억이 새롭게 되살아났다.

우리 부부의 태교는 태아의 애칭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애칭을 부르면 아기를 인격체로 느끼게 된다고 해서였다. 애칭을 ‘별이’로 정한 건 류시화 덕분이었다. 그의 책에서 읽은 “지구에 사는 한사람 한사람은 모두 어느 별에선가 잠깐씩 놀러온 것”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임신 5개월 이후부터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여행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여러 곳을 다녔다. 가장 좋았던 곳은 경기도 축령산에 있는 ‘아침고요 수목원’과 근처 휴양림이었다. 아침고요는 최진실·박신양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편지>의 촬영장소로,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수목원의 모습은 좀처럼 잊기 어려운 비경이었다.

태교를 교과서에 나온 대로 따라 하는 것은 오히려 산모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모차르트보다는 자장가나 듣기에 편한 뉴에이지풍의 경음악들을 자주 들었다. 조성모도 단골메뉴였다. 우리는 그보다는 오히려 부모가 출산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을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공부가 필요했다. 아내는 열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나도 그중 절반 이상을 읽었다. 태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엄마나 아빠가 책을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2개월 동안은 일주일에 한번씩 임신·출산에 대비한 부부강좌를 함께 들었다. 물론 취재가 있거나 기사를 써야 할 때는 부득이 빠졌지만 될 수 있으면 참석하려 했다. 그런 나를 두고 회사동료 가운데 한명은 ‘임신·출산 과잉관심증 환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매도했다. 그렇지만 나는 어쩌면 인생에 단 한번뿐인 이 기회를 그냥 그렇게 보내기는 싫었다.

아내의 유별난 출산준비는 나보다 한수 위였다. 출산 1주일 전까지 직장에 다니면서도 꾸준히 출산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임신 5개월째 임신부 요가를 배웠다. 몸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지는데 임신부 친구들과 얘기를 하지 못하는 게 흠이었다. 강의를 통한 정보공유가 없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그래서 그뒤로 기체조교실에 다녔다. 한달 정도 다녔지만 정보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가 없었다. 결국 종착지로 삼은 곳이 서울 대학로 근처에 있는 임산부 교육문화관 ‘토끼와 여우’였다. 맹자의 어머니가 ‘삼천지교’라면, 별이 엄마는 ‘삼천지출’이었다. 그곳의 강의는 알찼고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줬다. 아내는 집에서도 체조를 멈추지 않았다. 출산 1주일 전부터는 나와 함께 분만동작을 반복해 암기했다.

고민! 분만촉진제를 주사할 것인가

아빠가 르바이에 목욕을 실시하고 있다.
1월5일 낮 12시. 그러나 그 모든 준비가 까마득히 잊혀질 것만 같은 공포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수축(진통)을 시작한 지 20시간이 가까워지자 아내는 탈진하기 시작했다. “코로 깊이 들이쉬고 입으로 뱉고, 다시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뱉고….” 내가 말해주는 대로 아내는 호흡을 이어갔지만 분만대기실의 조산사는 야속한 소리만 했다. “아직 더 아파야 돼.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자궁문은 4㎝ 정도 열렸지만 수축이 강하게 오지 않았다. 출산진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설상가상 양수는 터질 생각조차 안 했다. 새벽에 병원을 찾았을 때부터 아내의 상태를 체크하던 김상현 원장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양막을 터뜨려야겠어요.” 양수가 계속 터지지 않으면 아이가 골반으로 진입하는 동작이 너무 더디게 오고 결국 산모나 태아 모두가 힘들어진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분만대기실에서 잠깐 나와 전화를 걸었다. ‘토끼와 여우’ 장은주 관장에게 이런 경우가 많았는지를 물었다. 그는 흔한 경우이며 의료진의 판단이 정확할 것이라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의료진을 믿기로 했다. 결국 양수를 터뜨렸다. 그러나 2시간 정도 지났지만, 생각처럼 진행이 빨리 되지 않았다.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분만촉진제를 주사하자는 것이었다. 양수를 터뜨리는 것보다 더 힘든 판단이었다. 약을 쓰는 것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뿌리깊이 박혀 있었던 나로서는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촉진제를 써도 효과가 없으면 수술을 해야 하나. 밖에 사진기자까지 대기하고 있는데…. 편집회의 때 큰소리 쳐놨는데 수술을 하면 기사가 될까. 아, 이런 순간에도 기사 걱정을 하다니…. 기자란 직업은 정말 더러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갑자기 뱃속에 있는 별이 생각이 났다. 엄마의 골반에 제대로 진입을 못해 허우적대는 아이의 처절한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나 아빠보다 몇배나 더 힘들 터였다. 야생적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비타협적인 밀어내기가 20시간을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골반의 좁은 통로에 들어가기 위해 쉼없는 나선형 운동을 수행하고 있을 가엾은 우리 별이. 그를 구해내야 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더 줄 경우 출산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다. 아이를 위해 촉진제를 쓰기로 했다.

내가 이곳에서 아이를 낳기로 한 것은 이 병원이 르바이에 분만 철학을 이해하는 곳이기 때문이었고, 그 분만법에 대해 내가 확신을 가진 것은 <폭력없는 탄생>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프랑스 산부인과 의사였던 르바이에 박사가 1970년대에 쓴 이 책은 출산의 개념을 ‘의료진과 산모 중심’에서 ‘아기 중심’으로 바꿔놓은 일종의 출산혁명서였다.

20세기 들어 현대적인 병원시스템이 요구하는 출산법은 태아가 태어나면 불빛을 비추고 왁자지껄하면서 탯줄을 바로 자르며 아이를 거꾸로 든 채 엉덩이를 마구 때려대는 것이었다. 르바이에 박사는 이를 ‘죄없는 이에 대한 고문’이라고 규정했다. 외국에서는 폭력적인 출산법이 한 사람의 전체 인생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도 내놓고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최후의 수축’

모유 수유는 출생 직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형병원의 출산법이 가장 비인간적인 것은 남편의 입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새로운 가족구성원의 탄생을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큼 반인권적인 발상이 어디 있을까. 이런 모든 관행이 결국은 출산을 질병으로 생각하고 산모를 환자로 보는 현대의학의 잘못된 관점과 함께 이윤과 의료진의 편의만을 고려하는 대형병원의 ‘아기분만공장’ 같은 출산시스템에서 비롯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출산 직전이었다.

어쨌든 촉진제의 효과는 뜻밖에 빨리 왔다. 몇 방울이 떨어지자 아내의 수축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진행됐다. 이전까지의 수축이 찰랑찰랑하는 근해의 파도였다면, 지금부터는 높이가 5∼6m쯤 되는 먼 바다의 격랑이 밀려왔다. 휴대폰이 흔들렸다. 장 관장이었다. “20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안 먹었다구요. 그럼 안 돼요. 가까운 슈퍼에 가서 땅콩 같은 거 안 들어간 초콜릿 하나 사서 빨리 먹이세요. 아가야 잘 나와라, 파이팅!” 조산사 아줌마와 간호사 눈을 피해 초콜릿을 억지로 먹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이지만, 그 초콜릿 두 조각이 마지막 힘주기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아내는 “(수축이) 또 온다”는 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호흡을 지시하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가물가물해질 때도 있었다. “무리하게 애 머리를 빼지 못하게 하고, 낳은 뒤에 곧바로 젖 물릴 수 있도록 해야 해.” 아내는 그 와중에도 아이 걱정이었다.

서서히 최후의 수축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화 <딥임팩트>의 마지막 해일 장면이 떠올랐다. 아내가 그런 일그러진 얼굴을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출산을 할 때 마라톤을 뛰는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은 과장된 게 아니었다. 남편이 분만대기실에서 머리를 뜯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아내가 내 손을 잡지 않고 머리카락을 잡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정도였다. 옆 침대에서는 산모가 남편을 퍽퍽퍽 때렸다. 그 옆에서는 산모가 도저히 못 참겠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수술 결정이 내려졌다. 아비규환이었다. 엉뚱하게도 회사 앞 식당 주인아저씨 말씀이 생각났다. 며칠 전 출산 걱정을 하는 내게 아저씨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나는 별로 힘 안 들었어. 마누라 애낳는 병원 바로 옆 극장에서 기다리면서 영화 두편 보니까 애가 나왔더라구. 걱정하지 말아.” 그동안 아주머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순간이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됐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출산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통해 머리카락이 보이면 자연분만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영씨, 아이 머리카락 보인다. 이제 다 됐어.” 출산 때는 생중계를 하는 아나운서가 되라는 가르침대로 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아내에게 해줬다. 아내 역시 새로운 힘을 얻는 것 같았다.

드디어 분만실로 옮겼다. 나도 감염방지를 위한 복장을 갖추고 비누로 손을 씻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진통이 밀려오면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고개를 받쳐주면서 하나, 둘, 셋, 숫자를 세주었다. 우리는 한몸이 되어 힘주기를 해냈다. 김 원장이 아내를 칭찬했다. “아주 잘합니다. 100점짜리 출산입니다.”

아내와 함께 울면서 부른 노래

회복실에서 웃고 있는 김 기자의 가족.
분만실은 어두웠고 의료진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만 미리 부탁해놓은 자장가만이 흘러나왔다. 아내의 마지막 힘주기가 끝난 뒤 아이가 단번에 엄마 몸을 빠져나왔다. 탄생의 순간, 분만실에 울려퍼진 노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조슬랭의 자장가>였다.

“봄날 피어난 어여쁜 꽃이여∼ 그 향기 은은히 세상에 번지고∼ 소슬바람 불어 꽃잎이 떨어지네∼ 어디로 가버렸는지 바람∼ 아가야 울지 말아라∼ 흰눈이 내리덮인 뒤에∼ 나무들 싹이 돋아나서∼ 봄날에 꽃은 다시 피어나리∼ 아∼∼ 세상의 맑은 빛 그 빛속에 축복 가득해∼.”

손가락과 발가락은 모두 다섯개였다. 사내아이였다. 아이는 르바이에 출산법대로 태어나자마자 탯줄을 자르는 대신 엄마의 가슴에 얹혀졌다. 22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눈물이 흘렀다. 아빠는 울었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정말로 신기했다.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면 다시 편안함을 느낀다는 책 속의 얘기가 현실이 되고 있었다. 다 죽어가던 아내는 아이를 보자마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별아, 엄마야. 안녕!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착하지?” 아내는 마치 몇년 동안 길러온 것처럼 아이를 대했다. “창석씨 뭐해 노래부르지 않고!” 노래는 원래 내가 부르기로 돼 있는 거였다. 우느라고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부르든 말든 먼저 치고나갔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빛나네∼ 서쪽 하늘에서도∼ 동쪽 하늘에서도∼.” 나도 따라 불렀지만 내 귀에도 잘 들리지 않았다.

알몸을 의료진에게 드러낸 채 생살을 찢어내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저렇게 노래를 부르는구나. 아, 엄마라는 건 저런 거구나. 여섯명의 자식을 낳으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또 눈물이 났다.

태어난 지 5분 정도가 지난 뒤 직접 탯줄을 잘랐다. 시간을 두고 탯줄을 잘라주는 이유는, 탯줄로 호흡을 하던 신생아가 폐호흡으로 전환하는 데 여유를 주기 위해서다. 목욕도 내가 직접 해줬다. 아이의 몸을 만지는 순간 비로소 아빠가 된 느낌이 왔다. 찬찬히 보니 다리가 무척 길었다. 짧은 다리와 긴 허리로 고생하는 아빠를 닮지 않아 기뻤다. 목욕 뒤에는 엄마에게 젖을 물렸다. 최초의 젖물림은 모유수유의 성공 여부와 관련이 깊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이는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몇번 울었을 뿐 자지러지게 울지는 않았다. 역시 르바이에 출산법이 가르치는 바 그대로였다.

분만실에서 나와 회복실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는 갑자기 내게 평생 잊지 못할 칭찬을 해줬다. 그말 한마디에 1박2일 동안 쌓인 피로는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창석씨 정말 고마워.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별이 낳은 거 절반은 창석씨가 했어.”

2박3일의 입원 기간이 끝난 1월7일 퇴원을 하기 위해 병원을 나섰다. 이불로 칭칭 감겨 있던 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다시 한번 자장가 테이프를 틀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이는 거짓말같이 울음을 그쳤다. 20년 만의 폭설이 내리고 있는 자유로를 달려내려가며 나와 아내는 너무 행복했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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