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초 한 부부가 남편의 입회분만을 허용하는 산부인과를 찾아 돌아다녔다. 서울 시내에서만 40군데 이상 돌아다녔지만 의사들은 모두들 한마디로 거절했다. 포기하려는 순간 이렇게 말하는 의사 한명을 기적적으로 만났다. “내 일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가족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겠는가.” 산모는 결국 그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산모는 지금 인권출산운동가로 변신한 임산부 교육문화관 ‘토끼와 여우’(www.ohmybaby.co.kr)의 장은주(32) 관장이며, 당시 의사는 현재 일산에서 대안의 분만법들을 실천하고 있는 ‘동원산부인과’(www.dongwon.doctor.co.kr)의 김상현(50) 원장이다.
장 관장은 ‘토끼와 여우’를 통해 지금까지 5천여명 안팎의 임산부를 교육시켰다. 1월11일 서울 대학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오늘만 해도 8명의 태아가 역아(임신 말기 거꾸로 위치한 태아)상태에서 제자리를 찾았다”며 좋아했다. 그가 상담해주는 임산부 수는 하루 100명 안팎. 그는 “뭐니뭐니해도 엄마 아빠가 열심히 출산공부를 해야 기존의 폭력적인 출산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인권출산센터’ 같은 것을 세워 임신·출산·육아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원장 역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인권출산법에 따른 분만을 시행하고 있다. 르바이에분만, 수중분만, 그네분만 등 모든 출산법을 받아들인다. 수술실도 개방한다. 그는 “인권출산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는 제왕절개 수술률이 50% 안팎이었는데 최근에는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수술률이 10% 정도밖에 안 된다”며 “생각만 바꾼 것이 이렇게 큰 차이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가 가족입회분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말 다른 병원의 산부인과 과장 시절 몇달 동안 한 미국인 조산사를 도와준 경험 때문이었다. 남편과 가족이 참석해 축하를 해주는 장면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다양한 분만법에 대한 관심이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출산은 패션이 아닌데 출산방법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 출산법이 지니고 있는 원래의 철학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그 출산법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수중분만이 알려진 것만큼 쉽지 않아 포기하고 침대에서 출산하는 산모가 많다거나, 그네분만 역시 애초부터 요통이 심하거나 허리에 장애가 있는 산모들을 위해 고안됐다는 사실을 아는 산모들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장 관장과 김 원장은 함께 ‘태아 뇌발달연구소’ 등을 세워 르바이에분만법 등 폭력없는 출산법이 실제로 신생아들에게 도움을 줬는지를 연구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토끼와 여우' 장은주 관장

동원산부인과 김상현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