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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잘’ 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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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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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정치인이든 경제계나 사회단체 인사든 간에 높은 자리에 있거나 유명한 그들은 기자들과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잘 보여야 되겠는걸” 하고 농을 건넨다.

그게 농일 수도 있지만 진심일 수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기자들이란 대체로 잘 보여놓으면 언젠가는 상부상조할 일이 있는 잠재적 우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려고 고위직 인사를 만날 때 사진기자가 동행하는 일이 잦다.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갈 때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진기자들과도 악수를 나누고 인사한다. 사진을 찍기에 앞서 “잘 보여야 되겠는걸” 혹은 “잘 부탁합니다”라는 표현을 쓴다. 당장은 지면에 그들의 얼굴이 나가므로 잘 부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과 기자 사이에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을 리 없지만 만에 하나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사이라 해도 지면엔 늘 밝거나 진지한 표정의 사진을 쓰게 된다. 따로 잘 부탁하지 않아도 그렇게 한다. 통상 우호적인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며 그들을 찍는 것은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이지만 지면을 통해 사진을 만나는 것은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장의 지면이 아니라 먼 훗날을 염두에 두고 사진기자들에게 “잘 부탁”하는 경우는 없을 것 같았다. 사진기자가 그들을 잘 봐줄 일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잘 부탁”한다고 말하면 빈말이거니 하고 넘긴다.

때로는 '잘' 보기 위한 취재진과 '잘' 보이지 않기 위한 취재원의 싸움도 있다. (사진/ 김정호 기자)


기자의 초년 시절에 최일선 현장에서 일하며 카메라에 찍혀 지면을 통해 소개되다 이제 의원이든 장관이든 혹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초심을 유지하면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은 예전의 부탁 때문이 아니더라도 잘 찍고 (지면을 통해 독자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엔 경찰서, 검찰청사, 공항등에 임시로 마련되는 포토라인에 서는 것으로 공직이나 권좌의 최후를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들 중 일부는 고개를 숙이거나 주변의 보호를 받아 시야를 가리면서 들어온다. 가끔은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분들도 있고 휠체어나 침대에 누운채 나타난다. 카메라를 피하려는 방법들중 한가지다. 이들은 모두 카메라앞에 서기를 좋아했고 카메라앞에선 늘 웃음을 잃지않던 사람들이다. 한때 인터뷰나 행사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났을 때 악수를 나누면서 먼 앞날까지 내다보고 “잘 봐주세요”나 “잘 좀 찍어주세요”라고 했던 그 사람이다. 그들중엔 전직 대통령, 재벌총수도 있고 시·도지사나 국회의원은 부지기수다. (사진기자들은) 예전의 기억이 새삼 떠올라 최선을 다해 “잘 찍어”주고 행여 독자들이 못 알아볼까봐 대낮에도 플래시를 펑펑 터뜨리며 잘 봐드린다. 몸싸움을 하며 파고들면서까지 꼭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애쓴다.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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