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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세 얼굴의 사나이, 파주의 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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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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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사진가, 비리에 맞선 지역 파수꾼, 주한미군 문제 해결 앞장서는 반미운동가 이용남씨

사진/스토리사격장 앞에선 파주의 시민게릴라 이용남씨.
“야, 언제 개나 한 마리 구해와라.”

파주바닥을 안방바닥 쓸 듯 돌아다니는 이용남(46)씨가 만나는 이들에게 던진 첫마디는 내내 이랬다. 정작 자신은 개고기를 잘 먹진 않지만. 친구 사이에 욕설이 친근감의 척도가 돼듯 그의 경우엔 ‘개타령’의 강도에 따라 상대에 대한 애정이 구분된다.

18만 파주인구 중 어른의 절반은 “장르별로 알고 지낸다”는 이씨는 ‘세 얼굴의 사나이’이다. 이름 뒤에 꼬리표가 붙는 직업은 다큐사진가이지만 지역비리에 맞서 싸우는 파수꾼이자 파주일대 주한미군 문제해결에 앞장서는 반미선봉장이기도 하다.

1월11일, 자유로는 연일 내린 폭설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파주시 진입로는 특히 더했다. 그는 강의중이었다. 파주시여성회관에서 진행하는 다큐사진강좌이다.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시민 10명가량이 둘러앉아 있었다.

“굳이 설악산이다 동해안이다 멀리 갈 생각 말고 내가 서 있는 지금, 여기서 찍으면 돼요. 그런 평범한 사진이 기록적 가치도, 희소성도 생깁니다.” 그의 지론은 비일상적인 문제에 대면했을 때 저항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비일상적인 걸 감지하려면 일상의 속살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왓촌으로 유명한 와등리 등 파주인근의 사라지는 마을을 소재로 한 설명은 수강생들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듯 묻고 답하는 모양이 활발했다.


아버지가 남겨준 ‘낡은 지갑’

파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파주의 기록자이다. 단신으로 월남한 부친을 비롯해 이웃에는 북쪽이 고향인 이들이 많았다. 통일 이후를 대비해 이들의 삶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 게 사진작가가 된 계기라면 계기이다. 80년대에는 서울과 파주를 왔다갔다하며 각종 시위현장에서 “몸을 굴리다” 10여년 전부터는 현장사진연구소라는 작업실을 차리고 완전히 파주에 정착했다. 9살 연하의 부인과 함께였다. 시를 쓰던 부인은 촉망받는 재원이었으나 지금은 ‘세 얼굴의 사나이’ 이용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그는 파주시청 기자실과 민원실을 주로 출입한다. 인터넷한겨레 하니리포터와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로 활동하면서 몇건의 특종을 터뜨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과 미군 대표의 폭탄주 협상’. 미군부대 기름유출로 인한 농지오염 문제를 해결하러 간 시장이 협상은 뒷전으로 한 채 폭탄주부터 돌리고 흥청망청댄 것이다. 이씨가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고발한 바람에 시장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공무원과 일부 기자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가 시청에 발을 들이면 실무자들은 반색하지만 고위직들은 슬슬 피하는 게 당연하다.

토호들 중에는 그에게 이를 갈고 있는 이들도 많다. 97년 민선1기 시절 한 지역의 재력가가 시와 손잡고 민통선 안의 갈대를 베어 복합사료공장을 만들려고 한 일이 있다. 그때 이씨는 아예 의회를 움직여 새로운 조례를 만들어버렸다. 정부보조를 받아 벌이는 사업이 축협이나 조합을 무시한 채 특정 사업가에게만 이득이 가도록 진행돼선 안 되고 민통선 갈대는 소중한 환경자산이라는 그의 주장이 여론을 움직인 덕분이다.

한때 시민주주들로 <파주바른신문>을 만들었다가 지역토호와 언론의 등쌀에 문을 닫은 아픈 경험도 있지만 지역언론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개혁대상, 감시대상이다. 계도지 문제부터 기자실관행에 이르기까지 그가 건드리지 않은 문제가 없다.

한 지역에서 실력가들을 겨냥해 이 정도로 ‘설쳤다면’ 진작에 깨지고 망가지기 십상인데 그는 멀쩡하다. 비결이 뭘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낡은 지갑을 주셨어요. ‘내 죽거든 여기에 돈 채울 생각말고 명함을 채워라’는 말씀과 함께. 결국 사람이 밑천이고 힘입니다.”

미군, 잊혀지지 않는 기억

사진/그의 밑천은 친구들과 주민들이다. 죽마고우인 이학수. 우경복(왼쪽에서 두 번째, 세번째)씨와 함께 민통선 취재에 나선 이용남씨.
그가 형, 아우하는 이들은 평범한 이웃들이다. 큰힘은 없지만 숫자로는 무시 못한다. 덕분에 곳곳에서 ‘꼰지르는’ 정보원들도 많다. 불법 건물이 들어섰는데 배후가 누구더라, 어느 공무원 어느 기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수돗물 취수장이 현무암지대를 심각하게 파괴한다, 어느 농지를 미군이 탱크로 짓뭉개고 지나갔다 등등. 소식을 들으면 그는 현장에 가서 확인취재한 뒤, 법과 제도에 고발할 것은 고발하고 기사로 말할 것은 인터넷에 올린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바랜 머리칼이 그의 하루하루 동선을 말해준다.

1월12일 아침 파주시 장파리의 한집. 25사단 경비초소가 코앞인 이 집은 이씨의 친구 집이다. 이른 시각부터 꽁꽁 언 눈길을 헤치고 모인 이들은 장파리 이장, 농민, 분뇨처리업자 등 평범한 지역주민들. 담배연기가 피어나는 횟수만큼 이야기가 심각해졌다.

우리나라 전체 공여지는 7400만평, 그중 파주에 속해 있는 공여지는 2800만평이다. 특히 스토리사격장 주변 농민들은 매향리 주민들 못지않게 오랫동안 피해를 입어왔다. 설상가상으로 국방부는 스토리사격장 주변의 공여지를 모두 사용할 계획으로 부지매입에 들어간 상태다. 이장의 설명을 들어보니 실농보상비를 둘러싸고 지주와 경작자들 사이에 금이 가고 있는 모양이다.

평화롭던 공동체가 알량한 보상비 몇푼에 깨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참석자 중 한명이 “대체 왜 우리끼리 이래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왕 대책위를 꾸렸으니 사격장 앞에 가서 드러눕자”,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다”, “여기저기서 사격장 폐쇄하는 판국에 파주만 훈련장이 커지면 먼나라 미군까지 몽땅 와서 연습할 게 아니냐”는 등 저마다 답답한 심경을 토해낸다. 그러면서 틈틈이 정보를 교환한다.

분단선에 걸쳐 있는 파주는 미군과의 갈등으로 바람잘 날 없는 땅이다. 이씨에게는 특히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예닐곱살쯤 됐을까, 친구들과 꿀꿀이 죽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한 미군이 또래의 아이를 개머리판으로 쳐서 즉사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깡통을 줄맞춰 놓지 않는다고 구박받던 아이가 “갓뎀 선어브비치”라고 내뱉고 도망친 게 원인이었다. “그 시절 아이들이라면 별뜻도 모르고 그냥 따라하던 말이었죠. 나도 그랬고. 미군들이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생생히 느꼈어요.”

아픈 기억이었지만 그런 기억 때문에 반미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는 도리어 합리주의자쪽에 가깝다. 실증적 자료와 현장경험으로 판단한다. 얼마 전에도 인맥을 활용해 중요한 자료를 하나 구했다. 육교면적까지 세부적으로 계산돼 있는 이 자료에는 98년까지 미군에 공여가 이뤄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나와 있다. 지금까지 공여지 문제가 불거지면 소파협정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일관된 답변이었다. 66년에 맺어진 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서 그 이전까지 미군이 사용해온 땅을 공여지로 인정한 것은 독소조항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그뒤에 공여된 땅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이씨는 이 문제를 어떻게 공론화시킬지 궁리중이라고 한다.

분단선을 공동선으로 만들기 위하여

사람들이 언제 이 모든 일들을 다 하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하나? 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지.” 사람을 조직하고 움직이는 재주가 있지만 그는 단체를 만들지는 않는다. 이곳저곳 쑤시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간판 걸고 사무실 차려놓으면 도리어 번잡스럽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신 남이 만든다면 발벗고 도와준다.

대책모임을 끝내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갔다. 민간인에게는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지만 민통선 안에서 농사짓는 이씨의 친구들이 달려와 동행해준 덕분에 통과할 수 있었다. 인삼밭의 해가림지붕이 폭설에 무너져내려 있었다. 또다시 훈련이 있는 모양이다. 사격장 입구마다 경비가 삼엄했다. “자꾸 사진을 찍어 알려야 분단선이 공동선이 된다”며 굳이 통제구역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이씨의 모습은 눈덮인 산자락의 게릴라를 닮았다.

그의 ‘세 얼굴’은 사실 ‘한 얼굴’이 아닐까. 내 고장, 내 이웃을 아끼고 옳다고 여긴 일에 앞장서는 전천후 시민게릴라의 얼굴 말이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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