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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양심으로 풀어낸 '숫자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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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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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 ‘효산콘도 비리’를 폭로해 뉴스의 인물이 됐던 전 감사원 직원(6급) 현준희(47)씨가 이번엔 사이버공간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6262’(요리요리)같이 금방 떠올리기 쉬운 숫자로 된 도메인을 확보해 파는 사이트(suzza.com)를 지난 7월22일 개설한 것. 현씨가 감사원 퇴직 뒤 전화요금설계사로 활동하면서 개발해놓은 연상번호는 8677(발육척척), 4758(사촌오빠) 등 3천여개. 이 중 1차로 1592개를 등록했다.

“영어 도메인은 외우기 어렵지만 연상숫자로 된 도메인은 한방에 뇌리에 기억될 수 있습니다. 짧으면 외우기 쉽고 재미있으면 굳혀지죠.”

닷컴(.com)의 네 자리 숫자 1만개는 지난 5월로 이미 하나도 남김없이 동났다. 물론 닷넷(.net)도 급속히 선점돼가고 있다. 그래서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 현씨는 서둘러 닷넷 1500여개를 등록했다.

그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도래할 무선인터넷과 인터넷TV 시대에선 문자보다 숫자가 단연 편리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숫자도메인의 가치도 급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씨의 연상숫자 도메인은 이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1974(일꾼찍자).co.kr’은 민주노동당이 쓰기로 했다. 민주노동당의 이니셜을 딴 ‘kdlp’도메인은 인지도가 낮아 노동자를 연상시키는 1974와 병행 사용키로 한 것이다. ‘5692(어쭈구리).net’은 소주방 체인인 ‘어쭈구리’에서 구입을 검토중이라고 현씨는 전했다. ‘0184(통일박사).com’은 세계가요제로 유명한 이탈리아 산레모 지역의 DDD번호와 일치하는 것으로 ‘0184.net’을 운영중인 산레모의 언론사이트 로즈넷에서 구입제의를 받고 가격협상을 벌이고 있다.

현씨는 15대 총선을 앞둔 96년 4월 “효산종합개발의 경기도 남양주 콘도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감사가 외압으로 중단됐다”고 폭로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 일로 결국 감사원에서 파면돼 건강식품이나 학습지 판매원으로 전전하다 지금은 한국통신 전화요금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망하지 않는 직장에서 20년간 편한 밥 먹다가 양심선언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지요. 가족한테 미안해 친구 사무실에서 전화번호부와 사전을 베개삼아 잘 때가 많았는데 수면 중 좋은 숫자가 입력된 것 같습니다. 하하.”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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