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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화는 참 위험한 물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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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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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골집에 ‘디오뉘소스의 집’이란 현판을 건 아내와 반쪽이 최정현
독일로 가기 전 바그너와 히틀러를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 무릅쓰고 떼어내다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농사 짓는 시골 사람들은 술을 자주 마신다. 약간의 술기운이 농사라고 하는 단순한 노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나도 술을 자주 마신다. 혼자 마시기도 하고, 시골 어른들 지나가면 그냥 지나가시게 두지 않고 모셔서 함께 마시기도 한다. 주말이 되면 선후배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맑은 공기, 트인 풍경이 술맛을 썩 좋게 한다.


‘옴팔로스’같은 용광로까지…

아내는 그걸 야유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시골집 외벽에 작은 현판이 하나 내걸렸다. 그리스어로 ‘디오뉘소스의 집’이라고 쓴, 아주 작은 현판이었다. 디오니소스가 누구던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포도주의 신, 술의 신 이름이다. 아내는 내가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자주 하고 다니니까, 술을 자주 또 많이 마시니까 그렇게 빗댄 모양이다. 명토 박아 두거니와 내가 써서 건 현판이 절대로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주신(酒神)에 견줄 정도로 오만한 것도 무지한 것도 아니다. 떼어낼까 하다가 아내가 무안해할까봐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

<반쪽이>로 유명한 만화가 최정현씨가 우리 시골집에 놀러왔다. 그는 부지런하기로, 손재주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그가 또 하나의 제대로 된 현판을 만들었다. 그 역시 나를 야유해주고 싶었던 모양인가? 거의 하루 종일 그 일에만 매달렸던 것 같다. 가로 60cm, 세로 50cm, 이번에는 꽤 컸다. 그리스어 알파베타 모양으로 나뭇가지를 잘라붙여 만든, 썩 보기 좋은 현판이었다. 그는 내 아내가 만들었던 작은 현판을 떼어내고는 그 자리에 자기가 만든 큰 현판을 걸었다. 자기가 사는 집을 ‘디오뉘소스의 집’이라고 하다니, 가당한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떼어내야 마땅하다. 그런데, 떼어내야지, 떼어내야지 하면서도 하루 종일 그걸 만든 만화가가 민망해할까봐 그냥 두었다.

그 최정현씨가, 고철 시장에 나온 용광로를 하나 입수했다고 해서 그의 웹사이트로 들어가 보았다. 무게가 자그마치 400kg이나 나간다는 용광로를 보는 순간, 그리스의 고대도시 델포이에서 본 ‘옴팔로스’가 떠올랐다. 델포이라면, 태양신 아폴론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옴팔로스’라는 말은 ‘배꼽’이라는 뜻이란다.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원추형 바위 덩어리다. 용광로도 원추형이었다. 내가 탐을 냈더니 어느 날 최정현씨가 그걸 트럭에 싣고 와서 시골집 잔디밭에다 뒤집어놓았다. 툭 튀어나온 배꼽 같은, 빨갛게 녹슨 용광로의 조형미가 썩 볼 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디오뉘소스의 집’이라고 씌인 현판과 옴팔로스와 모양이 비슷한 용광로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델포이 신전은 원래 태양신 아폴론의 신전이지만, 겨울철에는 디오니소스도 기거하던 신전이다. 인간의 속성을 ‘아폴론적 측면’과 ‘디오니소스적 측면’으로 나누어 보던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히틀러는 열두 살 때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고 감격을 눈물을 흘렸다. 신화가 한민족의 우월성을 증거하는 데 이용될 경우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사진/ AP연합)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참관하러 독일로 떠나기 두 주일 전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안인희 저)를 다시 읽었다. 독일인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 일정에 들어 있어서 게르만 신화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는 게르만 신화가 지닌, 게르만인의 감성에 호소하는 특별한 보편성 및, 이 신화를 음악 및 연극으로 변주해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이끌어냈던 바그너와, 바그너의 음악 연극 무대를 고스란히 재현한 히틀러와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게르만 신화가 바그너의 손에서는 예술이 되고 히틀러의 손에서는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이 퍽 흥미로웠다.

바그너가 누구던가? 음악가이기 이전에 작가였던 그는 게르만 신화와 설화를 종횡무진으로 변용, 화려하고 선정적인 대형 무대에 올렸던 사람, 바이에른 왕의 후원을 받게 된 1860년 중반 이후로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거의 왕과 같은 대접을 받던’ 사람이다.

바그너의 예술 작품이 누리던 이 수상한 인기를 불길하게 여기던 사람이 있었다. 철학자 니체였다. 니체는 ‘음악의 역사에 속하지 않는 일’이라면서 신화와 설화를 이용한 선정적인 바그너 현상의 배후에 잠재된 위험을 경고했다. 니체는, 어느 정도냐 하면, 바그너를 보면서 히틀러의 도래를 섬뜩하게 예언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신화는 읽는 것일 뿐이오

이 책에 따르면, 히틀러는 열두 살 때 린츠에서 처음으로 바그너 오페라를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는 바그너를 자신의 우상으로 삼고, 바그너의 오페라 무대의 인기 비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정치에 이용하면서 자신을 바그너와 동일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던가? 유대인에게는 물론 자국 게르만인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개인 혹은 한 민족의 우월성을 증거하는 데 이용될 경우, 특정 개인 혹은 다른 민족의 열등성을 증거하는 데 이용될 경우, 신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일 수 있는지, 나는 바그너와 히틀러의 관계에서 읽는다. 나는 독일에서, 신화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하지만 게르만 신화를 얘기하면서 그들의 해묵은 상처를 건드리지는 않으려고 한다.

나의 시골집을 ‘디오뉘소스의 집’이라고 부르고, 현판을 만들어 건 것에 대해 나에게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나의 시골집 뜰에다, 명백하게 아폴론 신전의 ‘옴팔로스’를 떠올리게 하는 고철 용광로를 뒤집어놓은 것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독일로 날아가기 한 주일 전, 부랴부랴 시골집으로 자동차를 몰고 갔다. 먼저 현판을 떼어냈다. 정성을 기울여 현판을 만들어준 만화가 최정현씨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사과했다.

반쪽이 최정현씨, 미안하오. 내가 만들어 건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한동안이나마 당신이 장난 삼아 만들어 건 현판을 바라보면서 히히덕거린 나를 용서할 수 없소.

신화는 읽는 것일 뿐이오. 몸 가까이 붙여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건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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