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은행원 30년, 다시 달리마!

320
등록 : 2000-08-01 00:00 수정 :

크게 작게

다시 명동으로 돌아왔다. 서울은행 본점, 퇴계로지점, 중부지점…. 직장생활 서른한해 중 스무해를 넘게 명동 근처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잘 나가는 은행원으로 어깨를 펴고 활보하던 그 시절의 명동은 아니었다. 어쩌다 예전 직장의 동료들과 마주쳐도 눈길을 피하기 일쑤였다. 왠지 불편했다. 서울은행 지점장을 지내다 98년 10월 명예퇴직한 유병철(53)씨. 올해 3월 (주)세일신용정보 영업부장으로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에게 명동은 쓸쓸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읽은 글귀가 가슴을 치더군요. ‘너도나도 선비 하려고 하면 농사는 누가 짓나’. 맞는 얘기죠. 고상한 일만 고집하는 게 아니었는데…. 단지 일이 필요했어요. 그게 뭐든…. 근데 그것마저 힘들더군요.”

실직 이후의 나날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돈문제가 아니었다. 젊을 때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결혼하고는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해온 그에게 ‘새벽출근’은 30년 동안 길들여진 습관이었고, ‘야근’은 끊기 힘든 마약이었는지 모른다. 15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도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출근한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 직장을 그만둔 충격을 추스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밀려드는 열패감을 곱씹으며 자신도 모르게 펜을 들었다. 청춘을 바쳤던 은행이야기, 그리고 퇴출의 분노…. 쓰고 또 써도 샘처럼 솟아나는 감정은 마를 줄 몰랐다. 그렇게 한 메모는 어느새 자신을 모델로 한 원고지 2천매의 장편소설이 됐다. 처음부터 책으로 내고자 쓴 소설은 아니었으므로 출판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소설을 쓰는 자체만으로도 유씨에겐 의미가 크다.

소설작업을 통해 삶을 정리하며 다짐한 덕분이었을까? 소설을 다 쓸 무렵 유씨는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관용과 여유의 마음이 되살아나고 있다.

“금융대란이니 하는 파업소식을 다시 들으면 ‘또 나 같은 사람들이 다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피해보지 않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한푼이라도 생기면 자신을 내쫓았던 바로 그 은행에 예금으로 넣고 있는 유씨의 작은 바람이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