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 노근리 진상조사반 결과 발표… 양민 학살 인정, 그러나 책임회피 의도 역력
“절박한 한국전쟁 초기의 수세적인 전투상황하에서 강요에 의해 철수중이던 미군은 1950년 7월 마지막주 노근리 주변에서 수 미상의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을 입혔다.”(1월12일 한·미 노근리사건 공동발표문)
‘전쟁중에 미군에 의해 일어난 불행한 사건’.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일어난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한·미 양국 진상조사반의 15개월에 걸친 조사는 이런 결론과 함께 마무리됐다. 물론 애초 사건발생 자체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미국쪽이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을 공식인정하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는 점은 큰 성과로 꼽힌다. <한겨레21>이 제338호 표지이야기 ‘노근리 진실 의도적 은폐’ 기사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논리에 휘말려 정치적 타협책을 모색하거나 주권국가의 자존심을 버리고 양민학살에 면죄부를 안겨줄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의미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볼수 있다.
사격명령은 없었다?
하지만 핵심쟁점인 지휘·명령계통에 의한 조직적인 학살여부, 사상자 숫자 등은 끝내 ‘상호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채 양국 개별보고서에 서로의 주장만을 담은 채 일단 매듭됐다. ‘실체적 진실’은 아직도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셈이다. 미국쪽이 공동발표문을 ‘뮤추얼 언더스탠딩’(상호이해)이라고 표현했듯 진실에 다가서는 과정에서 양국은 막판까지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공동발표문이 아닌, 관련 문건을 포함해 각각 500여쪽에 달하는 한·미 양국 개별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노근리를 보는 양쪽의 입장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미국 보고서는 발포명령 책임 등에 대해 죄다 물음표를 달고 있다. 군데군데에서는 ‘하드 에비던스’(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사격명령은 없었다고 ‘단정’을 내리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해 고의적인 학살이 아니라는 증언들만을 골라서 기술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차피 핵심쟁점에 대한 ‘상호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바에야 나중에 있을 법정 소송에 대비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는 게 미국의 판단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쪽 노근리 자문단에서조차 비판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 조사단 자문위원인 버나드 트레이너 예비역 해병중장은 “사격명령이 없었더라도 미군 지휘부가 최소한 부대와 사병을 제지하거나 통솔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발포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쪽 개별보고서는 어떤가. 우리 정부 보고서는 “사격명령이 있었을 개연성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투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쪽 노근리 대책반은 이에 대해, <한겨레21>이 338호에서도 밝혔듯, 노근리라는 지역을 특정하고 있는 문건이 없고 증언이 엇갈린데다 사격명령을 입증할 명백한 문건의 부재 등을 꼽았다. 하지만 노근리 양민학살대책위는 “미국이 자국 참전군인들을 보호하고 피해배상을 비켜가기 위해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단정하는 데 비해 우리 정부는 ‘추측 정도’만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섭섭해했다. 피해주민들의 명백한 증언은 소홀히 한 채 일정한 수준에서 미국쪽의 주장을 ‘이해해주거나’ 적절한 선에서 봉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사격명령을 입증해줄 문건 부재에 대해서도 노근리 피해대책위는 미국쪽이 문건을 빼돌린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미국쪽이 갖고 있는 미 1기갑사단 예하 각 연대 및 대대의 커뮤니케이션 로그(전통보고문)는 몇월 며칠 몇시에 날씨가 어땠는지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문제의 노근리 지역 7연대 2대대 기록만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루이스 칼데라 미 육군부 장관은 “면책특권은 부여할 수 없다. 전쟁범죄자로 밝혀지면 처벌한다”고 엄포를 놓는 등 참전군인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 노근리 피해대책위 정구도 대변인은 “우리 정부가 강하게 나서서 미국쪽에 문건을 요청하고 조사했는지 의문”이라며 “우리 정부가 애쓴 것은 인정하지만 평가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여전히 미국 눈치 살피는 정부 미국쪽이 대책으로 내놓은 추모비 건립은 ‘노근리’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노근리대책단 정기창 과장은 “양국 조사가 끝난 만큼 대책단은 곧 해체될 것”이라며 “사후 대책도 미국이 위령탑을 건립하고 추모장학사업을 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된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추모비가 노근리만을 위한 게 아니라 또다른 미군의 양민학살사건들을 한꺼번에 덮기위한 것이라는 데 있다. 찰스 크래긴 미 국방부 예비군 담당 부차관보는 “위령탑을 세우는 것은 노근리뿐만 아니라 모든 민간인 피해를 위한 것”이며 “추가조사는 않는다는 데 양국간 이견은 없다”고 말했다. 노근리를 계기로 수많은 ‘또다른 노근리’(지금까지 한국전쟁 당시 일어난 미군 양민학살사건은 61건이 제기됐다)를 일괄적으로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진상조사 초기부터, 진실을 인정할 경우 뒤따를 법적 책임을 가장 신경써온 미국쪽은 당연하게 피해자 숫자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법적 분쟁으로 갈 경우를 미리 대비하고 대량학살로 비쳐질 경우 직면할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을 감안한 것이다. 그래선지 찰스 크래긴 차관보는 “피해주민 248명도 영동군청에 신고된 것일 뿐 한국 정부가 제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이 보상·배상을 거부함에 따라 ‘노근리 학살’은 앞으로 지리한 법정싸움으로 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노근리 피해대책위는 노근리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한편 미 연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등 다각적인 법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미 한국계 마이클 최 변호사와 유대인학살 나치전범 재판 등을 맡은 바 있는 미국인 변호사 3명을 선임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법적 대응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개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없고 국가간에 다툼이 있을 때 양국이 사법재판소행을 함께 동의해야만 가능하다. 노근리 피해대책위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기 위해 법무부 장관 승인서를 요청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가 소극적”이라며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법적 대응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노근리 대책단은 “이 대목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며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사진/한·미 양국의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으나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묻혀있다. 사진은 노근리 피해대책위의 긴급 기자회견 장면.(장철규 기자)
하지만 핵심쟁점인 지휘·명령계통에 의한 조직적인 학살여부, 사상자 숫자 등은 끝내 ‘상호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채 양국 개별보고서에 서로의 주장만을 담은 채 일단 매듭됐다. ‘실체적 진실’은 아직도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셈이다. 미국쪽이 공동발표문을 ‘뮤추얼 언더스탠딩’(상호이해)이라고 표현했듯 진실에 다가서는 과정에서 양국은 막판까지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공동발표문이 아닌, 관련 문건을 포함해 각각 500여쪽에 달하는 한·미 양국 개별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노근리를 보는 양쪽의 입장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미국 보고서는 발포명령 책임 등에 대해 죄다 물음표를 달고 있다. 군데군데에서는 ‘하드 에비던스’(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사격명령은 없었다고 ‘단정’을 내리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해 고의적인 학살이 아니라는 증언들만을 골라서 기술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차피 핵심쟁점에 대한 ‘상호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바에야 나중에 있을 법정 소송에 대비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는 게 미국의 판단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쪽 노근리 자문단에서조차 비판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 조사단 자문위원인 버나드 트레이너 예비역 해병중장은 “사격명령이 없었더라도 미군 지휘부가 최소한 부대와 사병을 제지하거나 통솔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발포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쪽 개별보고서는 어떤가. 우리 정부 보고서는 “사격명령이 있었을 개연성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투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쪽 노근리 대책반은 이에 대해, <한겨레21>이 338호에서도 밝혔듯, 노근리라는 지역을 특정하고 있는 문건이 없고 증언이 엇갈린데다 사격명령을 입증할 명백한 문건의 부재 등을 꼽았다. 하지만 노근리 양민학살대책위는 “미국이 자국 참전군인들을 보호하고 피해배상을 비켜가기 위해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단정하는 데 비해 우리 정부는 ‘추측 정도’만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섭섭해했다. 피해주민들의 명백한 증언은 소홀히 한 채 일정한 수준에서 미국쪽의 주장을 ‘이해해주거나’ 적절한 선에서 봉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사격명령을 입증해줄 문건 부재에 대해서도 노근리 피해대책위는 미국쪽이 문건을 빼돌린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미국쪽이 갖고 있는 미 1기갑사단 예하 각 연대 및 대대의 커뮤니케이션 로그(전통보고문)는 몇월 며칠 몇시에 날씨가 어땠는지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문제의 노근리 지역 7연대 2대대 기록만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루이스 칼데라 미 육군부 장관은 “면책특권은 부여할 수 없다. 전쟁범죄자로 밝혀지면 처벌한다”고 엄포를 놓는 등 참전군인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 노근리 피해대책위 정구도 대변인은 “우리 정부가 강하게 나서서 미국쪽에 문건을 요청하고 조사했는지 의문”이라며 “우리 정부가 애쓴 것은 인정하지만 평가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여전히 미국 눈치 살피는 정부 미국쪽이 대책으로 내놓은 추모비 건립은 ‘노근리’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노근리대책단 정기창 과장은 “양국 조사가 끝난 만큼 대책단은 곧 해체될 것”이라며 “사후 대책도 미국이 위령탑을 건립하고 추모장학사업을 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된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추모비가 노근리만을 위한 게 아니라 또다른 미군의 양민학살사건들을 한꺼번에 덮기위한 것이라는 데 있다. 찰스 크래긴 미 국방부 예비군 담당 부차관보는 “위령탑을 세우는 것은 노근리뿐만 아니라 모든 민간인 피해를 위한 것”이며 “추가조사는 않는다는 데 양국간 이견은 없다”고 말했다. 노근리를 계기로 수많은 ‘또다른 노근리’(지금까지 한국전쟁 당시 일어난 미군 양민학살사건은 61건이 제기됐다)를 일괄적으로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진상조사 초기부터, 진실을 인정할 경우 뒤따를 법적 책임을 가장 신경써온 미국쪽은 당연하게 피해자 숫자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법적 분쟁으로 갈 경우를 미리 대비하고 대량학살로 비쳐질 경우 직면할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을 감안한 것이다. 그래선지 찰스 크래긴 차관보는 “피해주민 248명도 영동군청에 신고된 것일 뿐 한국 정부가 제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이 보상·배상을 거부함에 따라 ‘노근리 학살’은 앞으로 지리한 법정싸움으로 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노근리 피해대책위는 노근리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한편 미 연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등 다각적인 법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미 한국계 마이클 최 변호사와 유대인학살 나치전범 재판 등을 맡은 바 있는 미국인 변호사 3명을 선임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법적 대응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개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없고 국가간에 다툼이 있을 때 양국이 사법재판소행을 함께 동의해야만 가능하다. 노근리 피해대책위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기 위해 법무부 장관 승인서를 요청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가 소극적”이라며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법적 대응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노근리 대책단은 “이 대목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며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