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통제의 칼을 휘두르던 권위주의 국가는 87년 이후 전면에서 철수
김대환 장관 취임 뒤 파업 봉쇄에 앞장선 참여정부는 과거를 그리워하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회가 노동계의 불참 선언으로 연기됐다. ILO 총회 연기 사태는 국내에서 사회적 이슈로 별반 주목받지 못하고 조용히 지나갔으나 국제적 망신임이 틀림없다. 노동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면서 정부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노동계는 “노정관계 회복 없이는 총회에 참여할 수 없다”며 참여정부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사실 참여정부는 노동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의 집권이란 점에서 출범 직후 노동계의 기대가 컸다. 대선 과정에서도 노동운동 조직 내부에서 노무현 지지파가 하나의 세력을 형성해, 당시 정치노선을 둘러싼 갈등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노동계의 불신은 극한의 상태에 달했고 ‘노동자에 대한 희망의 약속’이라는 대선공약은 장식품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 노정관계가 어쩌다 이렇게 꼬인 것일까?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더니…
그람시는 어디선가 “동양에서는 국가가 전부”라고 말했다. 노사관계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정부는 강력한 ‘개입주의 국가’였다. “한국에서 노사관계는 없고, 단지 노정관계만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노사관계는 노사간 단체교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서 국가는 ‘주도하는 주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국가가 노사관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일까? 민주화 이행기 이전의 과대 성장한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는 억압적·배제적 노동 체제를 강고하게 유지했다. 1990년 현대중공업 파업 당시 1만8천명의 경찰병력이 페퍼포그·헬기·해상 경비정까지 동원한 육·해·공 진압작전(미포만 작전)을 펼쳤듯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물리적 탄압이 이뤄졌다. 국가가 사용자들을 대신해 노사관계 관리를 떠맡아온 것이다. 그런데 사용자쪽이 그동안 국가의 ‘공안적 개입’을 원했다면, 노동계는 정부의 ‘정치적 개입’을 기대했다.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 체계에다 노조 조직률 11%로 노동자 대표성이 부족하고, 노사 자율로 사회적 타협을 이끌어낼 만한 조직적·물질적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노동계 역시 국가의 개입을 통한 ‘힘의 균형’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1987년 6월 대투쟁에 따라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병영적 노동 체제는 해체되고, 국가는 노사관계의 전면에서 점차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 뒤 노·사·정 사이의 힘의 각축 과정에서 국가는 노동운동 세력을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포섭하기보다는 여전히 배제하려 했고, 이에 따라 ‘87년 노동 체제’는 항상적인 긴장과 대립이 지속되는 과도기적 체제였다.
참여정부는 집권 초기에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통해 노사간 힘의 균형을 이루고 △대립적·갈등적 노사관계를 ‘참여’를 통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로 재편하려고 시도했다. 또 종업원지주제 등 ‘노동자 경영참가’ 확대를 통해 사용자와의 협력 및 파업 감소를 유도했다. 하지만 노동개혁 의욕이 강했던 참여정부는 이 과정에서 노사분쟁에 자주 개입하는 등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물론 참여정부 초기 권기홍 노동부 장관 시절에는 화물연대 파업과 두산중공업 노동자 분신사태 때 ‘노동자 편에 선’ 개입에 나섰지만, 2004년 2월 김대환 장관으로 바뀐 뒤부터는 대기업 노조 파업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목적에서 주로 개입했다. 특히 노동개혁 로드맵에도 폐기하는 것으로 돼 있는 긴급조정권 발동과 직권중재 회부를 파업 때마다 적용했다. 개입의 명분은 대개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였다. 민주화 이행 이후 과거 정부가 노동에 대한 직접 통제 대신 헤게모니적 통제로서 ‘경제위기론’ ‘임금인상 자제론’ 등을 내세웠다면 참여정부는 걸핏하면 ‘배부른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를 꺼내들었다. ‘참여’를 말하면서도 한쪽에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노동을 고립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참여정부 노동부도 노동자 편이라기보다는 결국 과거 정부처럼 노동 통제기구가 돼버린 것일까?
퇴진 요구하면 임기만 더 늘어난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몸이 (공직으로) 얽매이지만 않았다면 매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그는 정이 있고 온화하고 따뜻한, 품이 넓은 사람이다…. 나는 노동자들의 친구다. 그래서 노동운동에 대해 쓴소리도 하는 그런 사이다.” 김 장관이 취임 직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과 김 장관의 공개적인 ‘쓴소리’는 민주노총을 감정적으로 자극했고, 김 장관의 노동계 비판 발언은 온건 노총인 한국노총마저 등돌리게 만들었다. 불신과 대립을 해소하기는커녕 그나마 있던 대화채널마저 잃고 만 것이다. “노동단체가 아무리 밉더라도 그들은 어쨌든 정부와 여당의 정책 대상이다. 미워도 정책 대상쪽과 술도 먹고 대화도 하고 그래야지, 쳐다보기도 싫다면 왜 노동정책을 집행하는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 의원의 얘기다. 민주노총은 요즘 ‘김대환 장관 퇴진 요구’를 되도록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럴수록 김 장관의 임기만 오히려 더 늘어난다는 게 그 까닭이다.
김대환 장관 취임 뒤 파업 봉쇄에 앞장선 참여정부는 과거를 그리워하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회가 노동계의 불참 선언으로 연기됐다. ILO 총회 연기 사태는 국내에서 사회적 이슈로 별반 주목받지 못하고 조용히 지나갔으나 국제적 망신임이 틀림없다. 노동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면서 정부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노동계는 “노정관계 회복 없이는 총회에 참여할 수 없다”며 참여정부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사실 참여정부는 노동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의 집권이란 점에서 출범 직후 노동계의 기대가 컸다. 대선 과정에서도 노동운동 조직 내부에서 노무현 지지파가 하나의 세력을 형성해, 당시 정치노선을 둘러싼 갈등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노동계의 불신은 극한의 상태에 달했고 ‘노동자에 대한 희망의 약속’이라는 대선공약은 장식품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 노정관계가 어쩌다 이렇게 꼬인 것일까?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더니…
그람시는 어디선가 “동양에서는 국가가 전부”라고 말했다. 노사관계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정부는 강력한 ‘개입주의 국가’였다. “한국에서 노사관계는 없고, 단지 노정관계만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노사관계는 노사간 단체교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서 국가는 ‘주도하는 주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국가가 노사관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일까? 민주화 이행기 이전의 과대 성장한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는 억압적·배제적 노동 체제를 강고하게 유지했다. 1990년 현대중공업 파업 당시 1만8천명의 경찰병력이 페퍼포그·헬기·해상 경비정까지 동원한 육·해·공 진압작전(미포만 작전)을 펼쳤듯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물리적 탄압이 이뤄졌다. 국가가 사용자들을 대신해 노사관계 관리를 떠맡아온 것이다. 그런데 사용자쪽이 그동안 국가의 ‘공안적 개입’을 원했다면, 노동계는 정부의 ‘정치적 개입’을 기대했다.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 체계에다 노조 조직률 11%로 노동자 대표성이 부족하고, 노사 자율로 사회적 타협을 이끌어낼 만한 조직적·물질적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노동계 역시 국가의 개입을 통한 ‘힘의 균형’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1987년 6월 대투쟁에 따라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병영적 노동 체제는 해체되고, 국가는 노사관계의 전면에서 점차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 뒤 노·사·정 사이의 힘의 각축 과정에서 국가는 노동운동 세력을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포섭하기보다는 여전히 배제하려 했고, 이에 따라 ‘87년 노동 체제’는 항상적인 긴장과 대립이 지속되는 과도기적 체제였다.

출발은 좋았고 기대도 컸으나…2004년 2월 김대환 노동부 장관(왼쪽)이 취임 직후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