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도 한가위 때면 서울보다 정겹게 기억되던 황골의 모습
이젠 농촌도 물질과 경쟁으로 채워진 시간과 공간만 남을 것인가 ▣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울이라고 대뜸 답하지 못하고 우물댄다. 서울이 고향이라고 말하기엔 왠지 거북하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정서나 이끌림이,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사람에 대한 ‘땅’의 부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나 같은 사람은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서울은 ‘땅’의 도시가 아닌 ‘부동산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견주기에서 해방시키는 ‘혈족’의 마력
파리에서 추석이나 설날을 맞을 때 나에게 다가온 한국의 정경은 서울이 아니라 황골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설날이나 추석 즈음에 아버지를 따라 갔을 뿐인, 그래서 기껏해야 1년에 한번 정도 찾았을 뿐인 황골 모습이 줄곧 살았던 서울의 거리보다 더 정겹게 다가왔다. 나로서도 무척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황골의 기억이라고 해보았자 특별한 것이 있지도 않았다. 온양역에서 걸어서 시오리 길. 다리를 지나 현충사를 끼고 돈 뒤, 작은 고개를 넘어 돌아가면 닿는 작은 시골 마을…. 나는 파리에서도 할아버지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호수를 바라보았고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았다. 그것은 어쩌면 땅을 매개로 하는 순수한 인간관계를 기대하는 무의식의 향방이었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누군가와 비교하고 경쟁하는 관계로부터 비켜나 있다고 기억되는 곳에 대한 인간 정서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혈육이라고 하지만 운 좋으면 명절에나 잠깐씩 볼 수 있는, 몇번의 줄긋기를 한 뒤에야 남이 아님이 증명되는 사람들이지만, ‘혈족’ 관계라는 마력은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경쟁과 견주기에서 벗어나도록 강제한다. 도시에 나가 출세한 사람의 젠체도, 변변치 못한 사람의 초라함도 그 시간, 그 공간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선 안 된다. 명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란 땅을 떠나면서 잃어버렸던 교감을 땅을 매개로 잠시나마 복원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 때문에 우리는 명절이 오면 교통체증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달려간다. 설령 내용을 잃고 형식으로만 남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우리 농촌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다. 황골도 많이 변했다. 공동화·고령화된 농촌은 ‘잘사는 농촌’ ‘돌아가고 싶은 농촌’을 만들겠다는 구호를 무색게 하는데, 그런 변화보다 더 의미심장한 변화는 땅이 부동산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 농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땅에서 부동산으로 재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흐름을 세계화의 농업개방 정책이 강력하게 채찍질하고 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명절 때의 훈훈함을 그리며 고향을 떠올리는 나와 같은 어리숭한 세대도 사라지고 그런 정서를 다독거리던 농촌도 사라질 것이다. 나에게 올 추석은 더욱 쓸쓸하게 다가온다. 황골을 지켜오신 작은아버지가 올봄에 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도 공간도 사라져간다.
땅이 사라지는 사회, 다만 투기 대상으로 큼직하게 쓰여 있는 ‘부동산’으로 바뀌는 사회, 앞으로 우리 농촌도 물질과 경쟁으로 채워진 시간과 공간만 남을 것인가. 그리고 시간의 효율적 안배를 위해 앞당겨 치러내던 추석 성묘마저도 사라져갈 것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고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되돌아가 마땅한 인간의 모습은 과거 사람들의 진부하고 궁상맞은 추억이 될 뿐이다.
그렇게 물질과 경쟁이 모든 가치를 잠식해버린 듯한데,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아직 땅의 개념이 남아 있기를 안간힘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런 현상은 부동산을 차지하고 발언 기회를 독점한 소수가 내지르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통계는 부동산을 둘러싼 악다구니가 몇%의 사람들에 의해 그들을 위해 벌어지고 있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대학이 산업이고 종교가 사업이 된 사회에서 말없는 땅 스스로 그 의미를 지킬 수는 없을 듯하다. 농촌 사람들이 도시인들 뺨치게 영악해졌다고 말하듯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땅의 의미가 있다손 쳐도 그것은 이미 늠름한 민중을 길러내는 토양이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땅은 이제 무엇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고향을 찾으며 한번쯤 질문해보자
여러 해 전, 프랑스 사회에서 실업률이 10%를 넘으면 사회 불안을 넘어 ‘사회 폭발’의 가능성까지 말했던 프랑스 학자들은 실업률 25%를 넘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남부의 지역사회가 비교적 안정을 유지했던 것에 질문을 던졌다. 그 나라들은 프랑스에 비해 사회 안전망도 열악한데 어떻게 안정이 유지되는지 물었던 것이다. 그들의 답변은 아직 핵가족을 기준으로 한 가족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발전하지 않았고 씨족관계와 가톨릭 전통이 상부상조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지역사회의 안전망이 되고 있다는 점에 모아졌다.
사회 안전망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비해서도 열악한 우리나라의 농어촌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는 씨줄과 날줄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이번 추석에도 고향을 찾는 우리 모두 한번쯤 던져볼 만한 질문이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친척은커녕 부모 자식간에 청부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끔찍한 사회에서, 사람은 위함을 받을 때 남을 위할 수 있다는 단순명쾌한 답을 공유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젠 농촌도 물질과 경쟁으로 채워진 시간과 공간만 남을 것인가 ▣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울이라고 대뜸 답하지 못하고 우물댄다. 서울이 고향이라고 말하기엔 왠지 거북하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정서나 이끌림이,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사람에 대한 ‘땅’의 부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나 같은 사람은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서울은 ‘땅’의 도시가 아닌 ‘부동산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견주기에서 해방시키는 ‘혈족’의 마력
파리에서 추석이나 설날을 맞을 때 나에게 다가온 한국의 정경은 서울이 아니라 황골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설날이나 추석 즈음에 아버지를 따라 갔을 뿐인, 그래서 기껏해야 1년에 한번 정도 찾았을 뿐인 황골 모습이 줄곧 살았던 서울의 거리보다 더 정겹게 다가왔다. 나로서도 무척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황골의 기억이라고 해보았자 특별한 것이 있지도 않았다. 온양역에서 걸어서 시오리 길. 다리를 지나 현충사를 끼고 돈 뒤, 작은 고개를 넘어 돌아가면 닿는 작은 시골 마을…. 나는 파리에서도 할아버지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호수를 바라보았고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았다. 그것은 어쩌면 땅을 매개로 하는 순수한 인간관계를 기대하는 무의식의 향방이었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누군가와 비교하고 경쟁하는 관계로부터 비켜나 있다고 기억되는 곳에 대한 인간 정서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혈육이라고 하지만 운 좋으면 명절에나 잠깐씩 볼 수 있는, 몇번의 줄긋기를 한 뒤에야 남이 아님이 증명되는 사람들이지만, ‘혈족’ 관계라는 마력은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경쟁과 견주기에서 벗어나도록 강제한다. 도시에 나가 출세한 사람의 젠체도, 변변치 못한 사람의 초라함도 그 시간, 그 공간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선 안 된다. 명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란 땅을 떠나면서 잃어버렸던 교감을 땅을 매개로 잠시나마 복원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 때문에 우리는 명절이 오면 교통체증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달려간다. 설령 내용을 잃고 형식으로만 남았다 하더라도.

부동산을 가진 소수가 아닌 우리에게, 이제 땅은 무엇인가? (사진/ 윤운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