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의 도전인터뷰]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대한민국은 군대다>에서 과거 학생운동의 전투주의 비판한 권인숙 명지대 교수…386 출신 남성들이 전형적인 가부장 문화를 유지하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군사주의와 여성주의로 한국 사회를 분석해온 여성학자 권인숙(41·명지대) 교수가 자신이 몸담았던 1980년대 학생운동에 메스를 가했다. 최근 펴낸 <대한민국은 군대다>(부제: 여성학적 시각에서 본 평화·군사주의·남성성, 청년사 펴냄)라는 제목의 책에서다. 그는 이 책에서 80년대 학생운동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인 ‘권위주의’와 ‘위계적 문화’ ‘차별적 성별 분업’ ‘절대선으로서의 국가주의·민족주의·집단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8월31일 오후 교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남자후배 위해 팬티와 양말을 빨아주고…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 20대 초반 이후 내 고민의 종합판이다. 학생운동을 할 때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 여성이기를 거부하면서 뭔가 남자가 되려고 하면서 느꼈던 해방감, 그 뒤 노동운동에서 여성의 삶을 요구받으면서 느끼는 문제를 전혀 제출할 수 없었던 집단적인 분위기, 그런 고민을 말하면 뭔가 서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고 인품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몰아쳤던 느낌들, 그런 답답함이 있었다. 왜 운동문화 속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을까, 왜 우리는 여성학 강사와 여성운동가들을 감정적으로 미워했을까. 석사·박사 논문은 그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었다. ‘구국의 길’이라는 말 속에서 보였던, 맹목적인 애국심이 과연 학생운동에서 자연스러운 것인가. 왜 민족이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떨렸을까. 그런 것을 고민하다 보니 군사주의나 국가주의가 학생운동에 이데올로기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여성들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이 더 강하고, 소수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제출할 수 있는 문화적인 ‘열림’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느꼈다. 군대문화, 군사문화, 군사화, 군사주의라는 각각의 개념이 따로 쓰이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 = 군사문화는 보통 정치에 참여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정치군인들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안보가 절체절명의 신성화된 과제다. 징병제는 50년 동안 한치의 의심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집단주의와 반공주의가 내면화됐다. 애국심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도전받을 수 없는, 그런 문화가 학생운동에도 있었던 사회다. 개인적으로는 ‘군사주의 문화’라는 단어를 쓰기를 제안한다. 한 사회가 국가안보와 그 유지를 위한 조직화에 어느 정도로 가담하고 있는지, 내면화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내용 면으로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고백적인 수기로도 보인다. 가명이지만, 김상인(책에서 학생운동·노동운동을 겪은 여성 활동가로 소개된 이)씨의 사례는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것인가. = 고백록이나 회고록의 측면은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에 비해 여성 활동가들은 정체성의 변화를 많이 겪었다. 결혼·출산·육아의 과정이 있어 더욱 그렇다. 김상인씨의 경우는 내 경험이 그대로 투영됐다기보다는 당시 모범으로 여겨지는 여성 학생운동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다소 극단적이다. 남자 후배들을 위해서 팬티와 양말을 빨아주고, 김장을 담그는 등의 모습이 특히 그렇다. 그렇지만 전형성이 있다. 반공과 국가안보, 민주화, 계급 문제 해결 등 시대적 명분에 동원되고 정치화됐던 한 개인의 삶이 자세히 보여지기를 기대했다. 남자 386과 여자 386의 차이 남자 386과 여자 386의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있나. = 얼마 전에 한 남성 활동가 출신 동료를 만났는데, “왜 공지영은 우리의 행복했던 시절을 그렇게 이상하게 틀어서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 말을 친구와 함께 들었는데 둘 다 깜짝 놀랐다. 나중에 여자친구들 몇명하고도 얘기했는데 모두 정말 깜짝 놀라더라. 그래서 우리 식 표현으로 “아, 그래서 386 남자애들이 그런가 보다” 하고 얘기했다. (웃음) (운동권) 여자들은 모든 게 혼란스럽고 나중에 뒤돌아보면 부끄럽고 민망스러운, 그런 생각이 강했다. ‘행복’은 내 주변에선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 단어였다. 남자들은 그 속에서 편안했는지 모르지만, 여자들은 (그 속에서) 너무나도 도드라진 존재였다.
386 세대의 한계가 지금 이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최장집 교수가 지적한 바 있지만, 386 세대가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되었거나,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 진보성이 무엇이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성취한 진보가 무엇이고 한계로 남은 부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감동했지만, ‘민주의 내용’을 체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학생운동은 보통 기존 문화에 대해 도전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 군부독재라는 억압의 틀에 비판의 초점이 모아지면서 구국 행위나 계급적 민주화에는 힘을 썼지만, 인간관계·소수자·가부장제·남녀간 성문화 등에 대한 담론은 없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이기주의적이고, 서구적이고, 프티부르주아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차이를 인정할 수 없는 문화였다. 식민지와 전쟁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86 세대의 한계가 현실에서 도드라지게 보이나. 90년대 이후 대학에 들어간 이들은 386 세대가 무척 권위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 시대적 사명감이나 존재감이 너무 컸던 것 같다. 단순히 대학생이 아니라 한 사회를 주도해나가는 지식인으로서의 무게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웅과 같은 자의식을 가진 이들이 꽤 많았다. 그것은 학생운동이 그만한 권위와 권력을 가졌다는 점을 내포한다. 주변부에 있던 이들은 (지금도) 좀 다르다. 소외감을 느껴봤던 남성과는 달리 지도급에 있었던 남성들은 결혼관계나 직장관계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대안을 찾으려는 모습이 별로 없다.
동지하고 결혼했는데 가부장이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
= 주변을 살펴봐도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경우가 없다. 가정 안에서는 전형적인 기존 남성들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한다. 학생운동 때도 그 부분은 도전받지 않았다.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다. 노동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도 남편이 아내에게 담배 심부름 같은 걸 시킨다. 사회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경험을 들어봐도 지금도 여전히 성별 분업적 구조가 있고, 여성에게 끊임없이 모성성을 요구한다고 한다. 학생운동 때보다 더 심하다는 얘기도 한다.
부분을 전체로 보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남성들의 경우에도 지도급에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 더 강한 것 같은데. 여성들은 어떤가.
= 경험에 따라 많이 다를 것 같다. (학생운동) 리더였는가 아니었는가, 또는 (학생운동 기준으로 볼 때) 중심부 대학이었나 아니면 주변부 대학이었는가에 따라서도 다르다. 리더들은 갈등 없이 살지 않았을까. (웃음) 본인들이야 이렇게 얘기하면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책에도 썼지만 여성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남성성을 강요받고 제한적인 여성성, 즉 모성성만을 강요받았다. 그러다가 결혼하면서 많은 혼란을 겪었다. 남편은 돈 벌고 자신은 아이 낳고 시어머니 모시고 하면서. 80년대 학생운동 활동가 가운데 20~30%가 여성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부부관계에서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사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동지’하고 결혼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부장’이더라 하는 얘기다.
386 세대가 지닌 긍정성, 예를 들어 탄핵 반대 투쟁 때 보여준 사회참여 의식과 실천력, 집단주의가 긍정적인 모습도 있는 것 아닌가. 의견광고를 신문에 내자고 하면 모금을 해서 수천명의 이름을 모두 싣는 방식의 사회적 실천을 하는 모습은 70년대 세대나 90년대 이후 세대가 보이지 못하는 모습 아닌가. 집단주의라는 말로 단순하게 재단하는 것 아닌가.
= 사회적 책임감의 발달은 386의 가장 긍정적 특징이다. 우리 사회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실천적 문제의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됐던 시대다. 가치관의 변혁을 겪은 세대였으니까. 민중의 삶을 통해 내 삶을 평가하는 식의 담론들을 만들어내면서 덜 이기적이고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한 존재로서 자기를 만들고 학생운동이라는 틀을 통해 그것을 대중화했던 부분이 있다. 건강한 사회의식을 가진 점에는 동의한다.
80년대 학생운동의 전투적 경향은 군부독재와의 강도 높은 투쟁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폭력에도 정의의 폭력이 있고 불의의 폭력이 있는데, 이를 뭉뚱그려서 군사주의라는 틀로 보는 것은 현상적인 비판이 될 수 있지 않나. 그렇다고 386 세대가 군사주의를 내면화한 세대라고 할 수 있을까.
= 폭력적인 방식이 채택될 수는 있다. 어떤 운동이든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관심 있던 부분은 이론 논쟁은 그렇게 많으면서 투쟁 방법에 대한 논의는 왜 그렇게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부적절할 때가 많았다. 교문 앞 시위가 대표적이다. 정말 필요한지 공감이 안 갔다. 지도부에서는 가두시위 훈련으로 볼 수도 있고 폭력혁명을 꿈꾸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보면 헛질하는 느낌도 많았다. 그 밑바탕에는 무엇이 깔려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 컸다. 1995년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평화운동이 대중화하지 못했고, 어떤 면에서는 부정적으로까지 보게 된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힘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구나 하는 점을 느꼈다. 물론 식민지화와 전쟁 같은 역사 속에서 얻은 경험적 지식의 내면화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뒤 강한 국가를 해체하는 노력을 했다. 우리는 그 반대였기 때문에 힘의 논리에 대한 공감대가 뿌리 깊다. 또 ‘80년 광주’의 영향도 크다고 본다.
왜 투쟁 방법은 논쟁하지 않았을까
‘녹두대’나 ‘오월대’를 비롯해 학교마다 만들어졌던 학생운동의 전투조직도 이런 분석과 연결된다는 말인가.
= 그렇다. 이런 식의 폭력화는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전투적인 긴박감 같은 논리로 밀고 나갔지만, 그런 점에 대해서 고민과 균열은 없었다. 그때 운동했던 이들이 폭력적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그들이 폭력을 좋아했다는 얘기도 아니다. 요컨대 우리 사회 자체가 폭력에 대한 이해, 힘·물리력에 대한 이해가 참 다르지 않는가 하는 고민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회의 운동역사를 보면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참 많은데 우리는 그런 비판을 하면 내부적으로 곧바로 살벌한 비판이 나왔다.
전사회적인 군사주의의 내면화에 대한 실천적인 대안이 있나. 세대론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 386 세대만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추호의 의심 없이 믿고 있는 논리들, 예를 들어 국가안보나 강한 군대, 신성한 국방의 의무, 반일주의, 민족주의 같은 논리들이 공개적으로 다양한 차원에서 토론돼야 한다. 반공주의 전선이 무너지고 나면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더 강고한 형태로 작동하리라고 본다.
남자후배 위해 팬티와 양말을 빨아주고…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 20대 초반 이후 내 고민의 종합판이다. 학생운동을 할 때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 여성이기를 거부하면서 뭔가 남자가 되려고 하면서 느꼈던 해방감, 그 뒤 노동운동에서 여성의 삶을 요구받으면서 느끼는 문제를 전혀 제출할 수 없었던 집단적인 분위기, 그런 고민을 말하면 뭔가 서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고 인품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몰아쳤던 느낌들, 그런 답답함이 있었다. 왜 운동문화 속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을까, 왜 우리는 여성학 강사와 여성운동가들을 감정적으로 미워했을까. 석사·박사 논문은 그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었다. ‘구국의 길’이라는 말 속에서 보였던, 맹목적인 애국심이 과연 학생운동에서 자연스러운 것인가. 왜 민족이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떨렸을까. 그런 것을 고민하다 보니 군사주의나 국가주의가 학생운동에 이데올로기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여성들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이 더 강하고, 소수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제출할 수 있는 문화적인 ‘열림’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느꼈다. 군대문화, 군사문화, 군사화, 군사주의라는 각각의 개념이 따로 쓰이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 = 군사문화는 보통 정치에 참여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정치군인들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안보가 절체절명의 신성화된 과제다. 징병제는 50년 동안 한치의 의심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집단주의와 반공주의가 내면화됐다. 애국심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도전받을 수 없는, 그런 문화가 학생운동에도 있었던 사회다. 개인적으로는 ‘군사주의 문화’라는 단어를 쓰기를 제안한다. 한 사회가 국가안보와 그 유지를 위한 조직화에 어느 정도로 가담하고 있는지, 내면화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내용 면으로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고백적인 수기로도 보인다. 가명이지만, 김상인(책에서 학생운동·노동운동을 겪은 여성 활동가로 소개된 이)씨의 사례는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것인가. = 고백록이나 회고록의 측면은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에 비해 여성 활동가들은 정체성의 변화를 많이 겪었다. 결혼·출산·육아의 과정이 있어 더욱 그렇다. 김상인씨의 경우는 내 경험이 그대로 투영됐다기보다는 당시 모범으로 여겨지는 여성 학생운동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다소 극단적이다. 남자 후배들을 위해서 팬티와 양말을 빨아주고, 김장을 담그는 등의 모습이 특히 그렇다. 그렇지만 전형성이 있다. 반공과 국가안보, 민주화, 계급 문제 해결 등 시대적 명분에 동원되고 정치화됐던 한 개인의 삶이 자세히 보여지기를 기대했다. 남자 386과 여자 386의 차이 남자 386과 여자 386의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있나. = 얼마 전에 한 남성 활동가 출신 동료를 만났는데, “왜 공지영은 우리의 행복했던 시절을 그렇게 이상하게 틀어서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 말을 친구와 함께 들었는데 둘 다 깜짝 놀랐다. 나중에 여자친구들 몇명하고도 얘기했는데 모두 정말 깜짝 놀라더라. 그래서 우리 식 표현으로 “아, 그래서 386 남자애들이 그런가 보다” 하고 얘기했다. (웃음) (운동권) 여자들은 모든 게 혼란스럽고 나중에 뒤돌아보면 부끄럽고 민망스러운, 그런 생각이 강했다. ‘행복’은 내 주변에선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 단어였다. 남자들은 그 속에서 편안했는지 모르지만, 여자들은 (그 속에서) 너무나도 도드라진 존재였다.

(사진/ 류우종 기자)

80년대 학생운동의 준군사적 조직체계와 군사문화를 이해하려면 한국 군사주의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게 권교수의 설명이다. (사진/ 한겨레 이정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