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명 문하생 북적거리는 만화가 김성모의 대규모 작업실에 ‘막내’로 들어가다…지우개질·먹칠하기·스크린톤 붙이기로 이어진 밤샘작업은 혹독한 체력전이었네
▣ 김다슬 인턴기자
pinkxanoc@hanmail.net▣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만화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어 어쩔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무작정 만화가 좋았다. 보는 것도 좋고 직접 그리는 것은 더욱 좋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만화 월간지 <챔프>나 <윙크>를 구독하는 친구와 친해지려고 노력한 기억도 있다. 그것이 고교시절 만화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나의 만화 사랑은 만화를 직접 빌려보는 것도 아니고 친구한테 어떻게 한번 빌려서 볼 수 있을까 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만화가에 동경은 있었다. 간혹 작가가 연재 중간에 ‘화실통신’이라는 제목으로 마감 직전의 작업실 풍경이나 에피소드를 전하면 괜한 ‘동경’에 휩싸이지 않았던가.
그런 동경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기자라는 신분으로 만화가들의 세상에 뛰어드는 것이다. 전업 작가의 화실에 ‘임시 문하생’으로 들어가 먹칠하는 ‘재미’를 만끽하면 될 듯했다. 하지만 만화가의 화실로 가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국만화가협회에 속한 만화가만 600여명이고, 온라인 작가를 포함하면 1천명을 웃돈다. 이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황제의 섹스투어>에 감지덕지하며…
순간 뇌리를 스치는 작가가 있었다. 바로 만화가 ‘김성모’였다. 그는 기록적인 다작에다 재치 있는 대사로 웹상에서 ‘어록’이나 ‘플래시’가 숱하게 떠돌고 ‘디시인사이드’엔 ‘김성모 갤러리’(일명 근성겔)까지 있다. 그야말로 초절정 인기 만화가인 셈이다.
만일 김성모라는 이름에 ‘인기’라는 키워드만 떠올랐다면 잠시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만화계의 ‘이슈메이커’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철저한 상업주의 만화관으로 만화계와 독자들이 나서는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도장으로 만화를 찍어낸다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문하생 활동을 체험하면서 세간의 논란에 대한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나의 문하생 입문은 오로지 화실이 결정할 몫이었다. 작업 공동체 생활을 하는 화실은 낯선 외부인의 ‘침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먹칠 작업을 완수한 뒤 펜터치할 원고를 넘겨받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김다슬 인턴기자. 그러나 카메라 앞이라 떨리던 손이 표시가 나진 않는다.
처음 연락을 취했을 때 화실의 운영을 총괄하는 도현호씨는 “작업량이 많다 보니 며칠씩 시간을 빼기는 어렵다”면서 3시간 속성반을 제안했다. 기자가 ‘속성’으로 뛰어든 세상이라니…. 일단 부닥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화실로 찾아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화실의 실장을 맡고 있는 이성훈씨가 문하생 입문을 허가했다. 보통 만화가들은 한두명의 문하생과 함께 작가의 집에서 작업한다. 하지만 한때 문하생이 150명에 이르렀던 김성모 화실은 요즘도 50명이 넘는 문하생이 활동하는 대규모 작업실이다. 김 작가가 스토리를 쓰고 콘티를 짜면 문하생이 작업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한달에 6~10개의 타이틀을 소화하고 있다
첫날 분위기를 익힌 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문하생 수업이 이뤄졌다. 나의 ‘사부’는 화실에 들어온 지 6개월가량 된 막내 문하생 박상현(25)씨였다. 아직 ‘중견’의 길은 멀기만 한 박씨였지만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도한다는 데 대해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상대적으로 마감에 여유가 있는 <황제의 섹스투어>라는 작품에 관련된 일을 맡겼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성인극화물이었다. 작업을 맡기는 사람들이 제목 때문에 다소 민망해했지만 ‘전체관람가’ 등급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왕초보를 배려해 마감에 쫓기지 않게 해주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한편의 만화가 만들어지려면 스토리와 콘티 작성, 스토리에 맞춰 데생(밑그림)하기, 인물의 얼굴 펜터치(마스크), 인물의 몸 펜터치, 배경 펜터치, 마무리작업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서 내가 맡을 부분은 당연히 마무리. 그것도 만만히 볼 수는 없었다. 연필자국을 없애는 ‘지우개질’에서 먹칠·스크린톤 붙이기(화면효과)·빗나간 선을 지우는 화이트칠 등까지 있었다. 이런 온갖 뒤처리 작업은 모두 화실의 ‘막내’ 몫이다.
마감이 한창인 작업실. 늦어지면 도현호 팀장이 득달같이 달려와 재촉한다.
갈기머리, 삭발시키고 싶어라
오늘부터 내가 할 일은 우선 먹칠이었다. 나의 사부는 “여기 원고에 잘 보면 ‘X’자가 그려진 부분이 있죠? 그 부분만 꼼꼼하게 찾아 붓으로 까맣게 칠하면 돼요. 머리카락 끝부분 같은 곳은 섬세하게 하고요”라면서 뭔가 미덥지 못한 듯 “어렵겠다 싶으면 차라리 남겨두세요”라고 덧붙였다.
“내가 만화동아리 출신인데 먹칠쯤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참음의 미덕을 실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십장의 원고를 들여다보면서 ‘X맨’을 찾다보니 눈알이 빠질 듯했다. 뒷머리가 지끈지끈 땅기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알고 보니 내게도 수전증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은 씁쓸하기만 했다. 남자 주인공의 갈기머리는 사방으로 날리며 춤을 춘다. 이발소 장면을 하나 만들어 주인공을 삭발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사부가 귀띔한다. “안 그래도 <대털> 때는 원성이 하도 높아서 주인공이 마침내 삭발을 한 적이 있었어요. 비록 37권째에 삭발을 해서 아쉬웠지만…”(<대털>은 40권이 완결).
그나마 이날의 작업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날은 밤샘작업에 참여하는 날이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성훈 실장이 오늘은 한번 펜터치를 해보라며 쓰지 않는 원고를 가지고 왔다. 밑그림이 그려진 원고 앞에 펜을 잡고 앉아 있으니 밤새 회복됐던 손이 다시 떨렸다. 잠시 휴식을 허락받고 곳곳에 널린 만화책을 집어들고 몇장이나 넘겼을까. 화실 노동의 집대성으로 불리는 지우개질 원고가 나왔다. 아쉽게도(?) 원고가 한장뿐이란다. 고작 지우개질이라면서 직접 시범까지 보여준다. 왕년에 지우개질 한번 안 해본 사람 있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얇디얇은 만화용지에 연필자국은 생각보다 깊었다. 지우고 또 지워서 내 눈에 완벽하게 지워진 원고를 사부에게 보여줬을 때 “지우개 들고 따라오세요”라는 한마디가 되돌아왔다.
어느덧 밤 12시를 지나는데 화실의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 밑그림을 담당하는 데생맨, 얼굴 펜터치를 담당하는 마스크맨 등 모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스크맨 남석씨는 “이 화실에서 그림을 마구잡이로 ‘제조’한다는 비판도 있어요”라고 말을 건네면서 “그것은 오해일 뿐이다. 거쳐야 할 과정을 뛰어넘는 게 아니라 분업이 잘 이뤄져 효율이 높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20여년 경력의 데생맨 정현성씨는 인터넷에서 만화의 과거와 미래를 본다. “PC통신 시절 작가들은 지명도를 높이려고 업체에 작품을 무더기로 제공했는데 제살깎기였어요. 만화계가 어려워도 길은 있어요. 개인작가들에겐 인터넷이나 전자출판이 돌파구입니다.”
작업실 한켠에 있는 누군가의 책상. 미완성 원고 한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만화계가 처한 현실을 몸으로 느끼는 동안에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드디어 야식시간이다. 따끈한 국물에 피가 다시 도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밤샘 작업에 익숙한 화실 사람들은 생기가 도는 듯했다. 화실에서 30대가 주축이었는데 체력은 문하생 경력에 비례하는 것 같았다. 체력짱들 틈에서 20대 초반의 내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물거렸다. 그제야 먹칠을 끝냈다 싶어 잠시 한숨 돌리려 했는데 먹칠을 수정하고 화이트칠을 하는 단계에 돌입해야 했다. 먹칠한 곳에 군데군데 구멍난 부분을 까맣게 때우고 틀린 부분은 하얗게 수정해주는 것이다. ‘허술한 부분을 다시 다 메워야 하는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꼼꼼히 칠할걸’이란 후회도 소용없는 일.
만화가 문하생의 길은 체력전이었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일감이 주어졌다. 금세 스크린톤 작업 일감이 자리에 놓였다. 스크린톤은 만화 원고에 명암이나 무늬 등을 넣을 때 사용하는 재료로 스티커처럼 원고에 붙이고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 사용한다. 칼로 살살 잘라내지 않으면 원고가 떨어져나갈 수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한다. 흑백의 만화가 실감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스크린톤에 달렸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야식의 포만감을 느낄 무렵부터 사고는 정지해 있었다. 무아의 경지에 이른 듯 손만 움직였다. 그러다 아침 7시 무렵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는데 누군가 쿠션을 갖다줬다.
무아의 경지에서 치른 스크린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이성훈 실장이 올라오더니 “왕초보치곤 먹칠도 깔끔하게 잘하고 스크린톤도 잘 붙였다”고 총평했다. 그 한마디가 간밤의 피로를 날리는 듯 뿌듯했다. 사실 ‘마무리’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만화 작업에서 가장 까다로운 공정이라서 손재주와 감각이 필수적이다. 그런 작업을 깔끔하게 해낸 것은 내게도 소질이 있었던 까닭이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한창 낑낑거리고 있을 때 전화한 누군가 “이참에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보라”고 격려(?)했는데 ‘이 기회에 만화계에 입문해?!’ 잠시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지만 용기가 모자란 탓인지, 졸음이 몰려와서인지 차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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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주의보다는 대박”
73개 타이틀에 1100여권 쏟아낸 만화가 김성모… “남근주의”비판도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뼈와 살을 분리해주마” 등의 온라인 유행어를 들어봤는가. 바로 만화가 김성모의 작품들에서 나온 말이다. 1993년 데뷔한 뒤 <럭키 짱>과 <대털>을 발표하면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용주골> <빨판> 등의 본격 성인극화를 내놓으면서 입지를 굳혔다. 지금까지 73개 타이틀에 1100여권의 작품을 쏟아냈고, 지난 2003년엔 출판사 ‘자유구역’을 설립했다.
요즘 만화가 김성모의 진면모는 인터넷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만의 독특한 대사가 또 다른 유머코드로 누리꾼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진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그에 대해 돈만 아는 ‘만화공장의 공장장’이라거나 ‘남근주의를 내세우는 마초’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혼자 하는 작업에는 한계가 있다. 만화가도 분업해야만 살아남는다. 작가가 스토리도 만들고 데생도 하고 기획도 하는 시스템은 작가를 오히려 갉아먹는다.”
그가 선도적으로 제안하고 실험한 ‘체계화된 분업화’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이는 만화시장이 절대적으로 작은 우리나라의 여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문하생들이 많을수록 그들을 책임지기 위해 작품을 많이 해야 한다. 그 가운데는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작품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작가주의 작품보다 시장 자체를 움직일 수 있는, 한번 보고 버리더라도 ‘대박’인 작품이 필요하다.”
이런 지론을 고수하는 탓에 상업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작품에 여성이 수동적으로 그려져 ‘여성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그런 지적을 받아들인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실 사회 밑바닥으로 갈수록 이런 성향이 강한데 내 만화의 주인공들도 ‘밑바닥’ 인생이다.” 그는 여자를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는 까닭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난폭한 사람이 아니”라고 거듭 말했다.
만화계의 논란을 피하지 않는 김성모 작가.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로 ‘근성’을 얘기한다. “알다시피 곱게 자란 것도 아니고 심하게 주저앉은 적도 몇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를 갈고 일어섰고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한때 잘나갔던 작가들이 실패가 두려워서 작품 하나로만 버틴다면 자멸에 이르고 만다. 결국 근성이 미래를 여는 셈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시장이 순정만화를 원한다면 순정이라도 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때 김성모판 순정만화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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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어"
[인터뷰/ 베테랑 문하생 권희정씨]
한달에 두권으로 생활비 벌며 ‘내 작품’ 준비
베스트 데생맨 권희정씨는 김성모 화실에서만 8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김성모 작가의 만화 스타일이나 추진력이 마음에 들어 문하생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만화계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잠깐 들어봤다.
날마다 일만 하는데 어느 정도나 하는가.
= 보통 한달에 두권 정도를 소화한다. 자기 분량만 채울 수 있다면 언제 일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화실 일은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하고 자기 연마를 하거나 자신의 작품을 준비하는 데 시간을 쏟는 편이다. 문하생으로서의 화실 생활은 안정적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생활에 안주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안정적이라는데 보수는 얼마나 받는가.
= 보수는 원고 매수에 따라 받는다. 물론 실력에 따라 책정된 보수 차이가 많은 편이다. 이곳은 화실이 크고 일도 많기에 괜찮은 편이다. 한창 전성기 때는 한달에 300만원 이상도 벌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만큼만 벌고 있다. 사실 돈만 생각한다면 이쪽에서 견디기 힘들다.
김성모 작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 불도저 같은 사람이다. 사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서 피곤할 때도 많다. (웃음) 만화가들 가운데도 김 작가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만큼 움직이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논란은 있겠지만 배울 것도 많은 사람이다.
만화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 내 가족이 만화를 하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것이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고 싶다면 억척스럽게 덤벼들어야 한다. 만화계가 바닥을 쳤으니 이제 올라갈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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