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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히메유리탑 아래서 나는 물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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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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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절벽 아래 몸을 던진 일본 종군 간호사들은 비장하고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교토에 있는 폭침 사건 희생자들의 위령비 ‘저고리상’은 아시는가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1967년, 내 나이 스무살 때 일본 작가 고미카와 준페이(五味川純平)의 소설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장편소설 <인간의 조건>, 대하소설 <자유와의 계약> 같은 책들을 아주 재미있게, 의미 있게 읽었다. 특히 <인간의 조건>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매우 유명한 작품이다. 그즈음 내가 읽은 고미카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일본과 미국과의 전쟁을 그린 대하소설 <전쟁과 인간>이다. <전쟁과 인간>에 묘사된 에피소드들 중에서 특히 잊을 수 없었던 것은 100여명에 이르는, 백의로 종군한 일본 여학생 간호사들에 대한 매우 슬픈 이야기다.

탐미적이던 시절, 그 절벽을 상상하다


2차 대전 막바지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하기 직전 이 종군 간호사들은 동굴로 은신한다. 미군이 항복을 권하지만 이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일제히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일본인들이 잘 쓰는 말로 ‘옥쇄’(玉碎), 즉 ‘옥이 되어 부서진’ 것이다. 고미카와의 섬뜩한 묘사에 전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흰옷 입은 100여명의 종군 간호사들이 절벽에서 몸을 날리는 이미지, 당시의 철없던 나에게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비장한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좀 철없이 탐미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뒤로도 나는 그 절벽의 모양을 더러 상상해보고는 했다.

1971년 10월26일 나는 군인 신분으로 오키나와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열흘간의 본국 휴가를 마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경기도 오산의 미군기지에서 오키나와의 가테나 미군기지까지 나를 태워다준 비행기는 미군 소속 항공기였다. 말하자면 ‘백의의 종군 간호사들’에 대한 가해자들의 항공기였다. 가테나 기지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무심히 관광 안내책자를 뒤적거리다 ‘히메유리탑’(姬百合塔) 사진을 보았다. 내용을 읽었더니 바로 그때 투신한 종군 간호사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라고 했다. 100명에 이르는 흰옷 차림의 간호사들을 ‘백합’(百合)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그 탑 앞에 한번 서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가테나 기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여권이나 비자가 내게는 없었다. 나는 보딩패스(搭乘命令書)밖에 없는 군인인데다 통과여객에 지나지 않아서 기지를 떠날 수 없었다. 관광 안내서에 사진으로 실려 있는 히메유리탑은 작았지만 그들이 투신했다는 절벽은 무시무시하게 높고 그 아래의 바위와 바다도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험악했다.

2차 대전 막바지에 오키나와 종군 간호사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일제히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옥쇄했다. 오키나와는 일본군 장교들이 수많은 조선인들을 학살한 섬이기도 하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그로부터 20년 뒤인 1990년에 이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의 흑백영화 <히메유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의 이미지와 1967년에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1971년에 본 흑백사진을 비교하면서 나는 내 상상력이나 기억이 현실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는 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미지가 덧붙여진다. 1991년, 진주만 피격 50주년을 맞은 미국이 히메유리 사건을 특집으로 보도하면서 간호원들이 투신한 그 절벽을 컬러필름으로 보여준 것이다. 미국인의 눈으로 보고 찍은 그 필름을 나는 미국에서 보았다. 비장한 히메유리 이미지, 오래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8월12일, 나는 평화와 환경을 생각하면서 순항하는 ‘피스 앤드 그린 보트’(Peace and Green Boat)에 오른다. 나는 이 보트 위에서 약 300명의 일본인들을 만나게 되어 있다. 침략전쟁을 시인하는, 좀 트여 있는 일본인들이란다. 일본의 우익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란다. 25일에는 오키나와의 히메유리탑도 함께 둘러보고, 26일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나가사키에도 들를 모양이다. 나가사키? 좋다. 하지만 나는 히메유리탑 아래서 일본인들에게 물으리라. 준엄하게, 그러나 얼굴 안 붉어질 만큼 준엄하게 물으리라.

그대들은 고미카와 준페이의 소설 <전쟁과 인간>을 아시는가? 고미카와가 히메유리탑에 얽힌 사연을 얼마나 아름답고 비장하게 그렸는지 아시는가? 그대들은 50년대에 제작된 영화 <히메유리>를 아시는가? 아는 사람들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는 사람들에게 다시 물을 것이다.

한국인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히메유리 사건을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학적 애착 혹은 연민까지도 느끼고 있다. 일본인들인 그대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희생된 조선인들의 위령비 ‘저고리상(像)’을 아시는지?

‘피스보트’에서 일본인들과 만나면…

교토부 마이즈루에는 우키시마마루 순란자추모위령비(浮島丸殉難者追慕慰靈碑), 속칭 ‘저고리상’이 세워져 있다. 종전 직후 여객선 우키시마호(號)를 타고 귀국하던 2천명(일본 주장으로는 500명)의 조선인 남녀의 목숨을 앗아간 폭침 사건 희생자들의 위령비다. 벽돌색 타일을 박은 옹벽을 배경으로 150cm 정도 되는 대좌(臺座) 위에는 250cm 크기의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인이 왼손으로 목이 뒤로 꺾인 아기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앉은 채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사내의 손을 잡고 서 있다. 여인의 뒤에서는 여남은살 된 사내아이가 여인의 허리를 안은 채 역시 울부짖고 있다. 여인의 발치에는 사내들이 쓰러진 채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그 조선인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던가? 일본의 전쟁 수발을 들어준 죄밖에 없다. 여인은? 지아비를 따라와 그 수발을 들어준 죄밖에 없다. 그것을 아시는지? 한국인인 내가 히메유리탑을 알고 있고 거기에 경의를 표한다면 그대들 역시 저고리상에 대해 알고 있고 거기에 경의를 표해야 공정하지 않을지? 그 앞에서 울어본 적이 있는 내가 물을 것이다.

논픽션 작가 김중태의 <오끼나와 한국인 학살기>에 따르면, 오키나와는 일본군 중위 시카야마(鹿山)를 비롯한 일본군 장교들이 수많은 조선인들을 학살한 섬이기도 한데, 아시는지? 오키나와에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데도 히메유리탑만 돋우어 미화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시는지?

모르신다면 우리는 함께 그 까닭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지? 누군가 이런 정보를 차단했거나 왜곡했을 가능성을 우리는 함께 의심해야 하지 않겠는지? 평화와 환경을 생각하려고 모였으니 이런 문제를 함께 의논해야 하지 않겠는지?

나는 트인 일본인들과의 15일간에 걸친 만남에 대해 긴 보고서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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