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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 쓸쓸함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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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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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땅 곳곳에서 사람들의 기름진 모습을 만날 때
깊이 간직했던 늠름한 민중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 홍세화/ <한겨레> 기획의원

전두환 정권 초기였으니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내가 점원으로 일하던 파리 오페라 근처에 있는 공원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사람은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한다. 고문이 고문인 까닭은 참을 수 없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고문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지금은 1987년 6월항쟁을 되돌아보면서 민주화 과정에 대한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서슬 퍼런 시절에 그 무도한 폭압정권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최근 출간된 <대화>에서 리영희 선생이 밝혔듯이 지식인에게 자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이방인의 삶, 담배는 그러한 삶에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옛 동지의 모습에서도 쓸쓸함이…


공원 벤치에 앉아 속절없이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어느 여인이었을까, 스치듯 지나가는 바바리코트의 뒷모습에 울컥 하면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마구 흘러내릴 것 같아 도리질을 치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여인의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다만 그녀의 바바리 자락의 작은 흔들림에 나는 왜 그렇게 흔들린 것일까? 저 깊은 심연으로 마냥 떨어지는 느낌, 그것은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죽음의 의지에 맞선 삶의 외침이었을까, 아니면 30대에 사회를 잃어버린 이방인이 가져야 했던 슬픔의 깊이 때문이었을까? 지금은 그 의미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그때부터인 듯, 아니면 그 전부터일 수도, 우울은 병이 아니라 삶의 증거가 되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돌아온 땅에서 나는 분노보다는 슬픔을, 슬픔보다는 쓸쓸함을 느낀다.

사람의 의식은 처지에 따라 바뀐다고 하지만 정서는 바뀌지 않는가 보다. 20여년의 공백을 두고 다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이 바뀐 것에 비해 정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가 분노보다는 슬픔을, 슬픔보다는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처지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나이 탓인 게 분명하다. 황혼의 나이엔 분노나 슬픔보다는 쓸쓸함이 어울린다.

20년이 지나 돌아온 땅에서 나는 분노보다는 슬픔을, 슬픔보다는 쓸쓸함을 느낀다. 이 사회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서 오는 것일까? (사진/ 윤운식 기자)

본디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내 쓸쓸함은 사회적이다. 나는 쓸쓸한 독거노인을 볼 때보다 어린 학생들이 장래희망으로 ‘CEO’를 꼽을 때 더 쓸쓸함을 느낀다. 나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냐?”라고 묻는 동창생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냐?”라고 똑같이 대꾸하기 전에 먼저 쓸쓸함을 느낀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와 그에 맞선 인간성의 항체에 대한 성찰이 부족함에 쓸쓸함을 느낀다. 어느 날 병원 문을 밀고 들어가다가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부딪힐까 염려되어 문을 지치고 있었는데 뒷사람이 열려 있는 틈으로 살짝 들어가더니 그 뒷사람도 줄줄이 뒤따라 들어갈 때 계속 문을 지치고 있으면서 느낀 것도 쓸쓸함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뜬금없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말할 때에도 황당하다는 느낌과 함께 쓸쓸함이 다가온다. 그렇게 나는 이 땅 곳곳에서 시시때때로 쓸쓸함을 느낀다. 지면이나 화면을 통해 다시 만나는 그때 그 사람들의 기름진 모습에서도 분노보다는 쓸쓸함을 느끼고, 옛 동지의 출세한 모습에서도 쓸쓸함을 느끼고, 옛 동지의 삶에 지친 모습에서도 쓸쓸함을 느낀다. <한겨레> 출근길에 층계참을 오르면서 자주 다가오는 감정도 쓸쓸함이다. 이 쓸쓸함에 차라리 깊이나 층위의 차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지도 못하다. 그저 잔잔할 뿐. 도대체 이 쓸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람시의 말을 품고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서 오는 것일까?

가령 귀국 뒤 택시 노동자들에 대한 동료의식이 점차 사라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택시 노동자의 눈’을 갖겠다고 했던 내가 이 땅의 택시 노동자들에게서 작은 동질감마저 느껴본 적이 없다. 택시 노동자들에게서 소우주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귀국 직후 택시를 타면 신바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먼저 말을 걸었는데 최근에는 택시에 올라 내릴 때까지 입을 봉하고 있다. 처음에는 택시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파리와 서울의 차이를 얘기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좁은 택시 안의 공기는 서먹해지곤 했다. 대화의 주제가 <한겨레>로 넘어갈 때가 있는데, 택시 노동자들이 <한겨레>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 않았다. <한겨레>가 편향적이라거나 심지어 ‘빨갱이 신문’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들 중 누구도 ‘당연히’ <한겨레>를 읽지 않았다. <한겨레>를 읽지 않은 채 그들이 갖고 있는 <한겨레>가 편향되었다는 확신은 흔들릴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택시 노동자들과 만나며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사람은 한번 형성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택시 노동자들은 열린 자세로 <한겨레> 구성원에게서 <한겨레>에 대한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이미 형성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고집하고 있었다. 하긴 <한겨레> 구성원에게서 <한겨레> 얘기에 귀기울인다고 하여 그들의 삶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땅의 대중은 천민자본주의 아래 파편화되고 피폐해진 원자로서 조금도 무식하지 않았다. 끝내 민중성에 대한 믿음과 연대의식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저 깊은 곳에 간직했던 늠름한 민중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 쓸쓸함은 큰 부분이 이런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아내는 여름이 오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는 아들이 남아 있다는 핑계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땅이 쓸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선 돈이 아직 사람들을 덜 이간질하고 덜 오염시켰다. 나는 아내의 쓸쓸함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내 쓸쓸함이 잔잔한 따뜻함조차 안고 있지 못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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