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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경복궁에서 폼을 만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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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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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장 교대식 기수로 변신한 ‘폼생폼사’ 길윤형 기자
“좌향 앞으로 갓”에 허둥댔지만 사진모델로 간택되는 기쁨까지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아얏!”

‘뒤로 돌아’라는 구호에 높이 치켜든 깃발을 바닥에 직각으로 세우다 깃대 끝으로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찍었다. 찔끔, 눈물이 솟았다. 마음을 다잡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부동자세를 취하는데, 부들부들 다리가 떨린다. 이틀 동안 기자의 훈련을 담당했던 행사 진행원 이동현(30)씨가 저만치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치겠죠? 저는 돌아버리겠다니까요!” 2년 전 새 차를 구입한 친구가 차 뒤에 써붙인 초보운전 공지 문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매섭게 내리쬐는 7월 땡볕이 ‘부동자세’에 갇힌 마흔명의 청년 수문군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쏟아졌다. 7월27일 오후 1시, 동십자각 너머 <한국일보> 건물에 매달린 대형 화면은 박지성이 중국에서 첫 골을 넣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


키와 용모가 받쳐줘야 한다고?

길윤형 기자(가운데)가 청룡기를 들고 근무를 서고 있다. 내리쬐는 햇볕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직각으로 꼿꼿하게 세운 다른 사람들의 깃발과 달리 앞쪽으로 조금 기울어졌다.

처음 ‘뛰어들기’를 결심했을 때, 나름대로 정한 기준이 있었다. 첫 번째 ‘폼’나는 일일 것, 두 번째 ‘폼’나는 일일 것, 세 번째 ‘폼’나는 일일 것. 2000년까지만 해도 의정부 기지촌을 주름잡던 ‘미스터 MP’였는데, 누가 뭐래도 스타일 구겨지는 일에 뛰어들 수는 없었다. 지난 가을 우연히 구경했던 수문장 교대식이 머릿속을 스쳤다. ‘각’으로 승부한다면 누구에게도 지지는 않을 터. 적당히 폼도 나면서 독자들에게 우리네 전통 문화를 전해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조선 시대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수문장 교대식)을 주관하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냉랭한 반응이었다. “글쎄요. 그렇게 무작정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안태욱 문화행사팀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몇 차례 설왕설래 끝에 양 팀장이 조심스럽게 속내를 드러냈다. “외국 사람들도 보는 행사인데, 키나 용모가 어느 정도는 되셔야….” 헉, 그랬던가! “‘기자가 뛰어들다 실패한 세상’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등 뒤에서 ‘쿡쿡’거리는 부서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신립 장군 탄금대에 배수진 치는 마음으로 7월25일 오전 10시 경복궁으로 향했다.

겉으로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조선 시대 궁성문을 여닫는 데는 나름의 절차와 예법이 있다. 조선 시대 도성 문은 파루(새벽 4시께)에 종을 33번 쳐 열고, 인정(밤 10시께)에 28번 쳐 닫았다. 종이 울리면 궁성문을 여닫는 업무를 담당하던 승정원 주서가 당직 승지에게서 문의 자물쇠를 받아온다. 승정원 주서는 궁성문의 열쇠를 관리하는 액정서 사약과 궁성문의 여닫이를 감독하던 도총부 당하와 함께 광화문으로 이동한다. 이 세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궁성문은 열리거나 닫히지 않는다. 문이 열리면 밤새 종을 딸랑거리며 도성 안을 순찰하던 요령군이 들어오고, 곧이어 숙직 수문군과 새 수문군들이 업무를 교대한다. 기자는 수문군의 양옆을 호위하는 10개의 깃발 가운데 오른쪽에서 4번째 ‘청룡기’ 기수를 맡기로 했다. 양 팀장은 “조선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에 나서기 전 경복궁 흥례문과 광화문 사이에서 임금께 출정식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냐 하면 바로 이 자리다.

“제발 발 좀 맞추세요”

‘호랑이’ 이동현 조교의 지도 아래 곧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좌향좌’라는 구호가 나오면 두 번째 ‘좌’에 맞춰 오른손으로 깃대를 잡아 위로 올리고, 왼손으로 깃대 끝을 고정해 치켜든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나면 자동으로 깃대를 오른쪽 새끼발까락 끝에서 대각선으로 20cm 정도 떨어진 곳에 고정한다. 눈길은 물론 정면이다. 왼손으로는 ‘환도’(칼) 집을 잡는다. 조선 시대 제식은 현대 제식과 달리 △게걸음(횡보) △뒷걸음 △직각보행이 없다.

좌향좌, 우향우까지는 어떻게 됐지만, ‘좌향 앞으로 가’로 진도가 나가자 머리와 몸이 따로 놀기 시작했다. “오늘 기수 투입은 무리”라는 이 조교의 의견에 따라 첫날은 역할 부담이 제일 적은 요령군을 맡아 오후 3시 행사에 참여하기로 결정됐다. 이 조교는 “장창을 들고 걸으면서 종을 치면 되는 단순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수문장 교대식을 마친 수문군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깃발의 호위를 받으며 홍례문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 가’라는 구호에 왼발부터 발을 뗀다. 종은 단순하게 한번 내리쳐선 안 되고 리듬감 있게 두번에 나누어 친다. ‘땡’이 아니라 ‘때댕’이다. 종은 오른발에 맞춘다. 종에 신경쓰다 보면 발이 틀리고, 발을 맞추니 장창의 방향과 옆 사람과의 줄이 어긋났다. 옆에선 다른 요령군이 “제발 발 좀 맞추세요”라며 타박을 줬다. 두발마다 한번씩 발이 어긋났고, 세 번째 발이 맞았다 싶으면 네 번째 발부터 다시 따로 놀았다. 좌절하는 기자에게 이 조교는 “군대 다녀오신 지 오래되셨으니까 어쩔 수 없죠”라며 결정타를 날렸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변 동료들을 둘러봤다. 대부분 서너살 터울의 동생들이다. 수문군들은 키가 180cm 이상으로 늘씬하고 잘생긴 게 특징이다. 의장대 선발 인원의 신체 조건이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 출연자들은 예상과 달리 공익이 아니다. 대부분 대학 휴학과 취업 준비생들로, 모두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1년씩 고용 계약을 맺고 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일당은 하루에 5만5천원이다.

왕궁문을 지키는 ‘정병’(양민 가운데 골라 뽑은 병졸) 역할을 맡고 있는 김종혁(27)씨는 “아르바이트로 하기에는 최고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행사에 참여했던 친구의 소개로 수문군이 됐다. 그는 취업 준비생이다. 실직한 뒤 얼마 전까지 밤에는 노래방에서 일하며 ‘투잡’ 생활을 했지만, 여름에는 몸이 피곤해 그만뒀다.

공익 아닌 계약직… 일당은 5만5천원

우종문(25)씨와 임종재(25)씨는 야간 대학에 다닌다. 우씨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 복학해 이제 마지막 학기다. 또래들이 집으로 돌아가거나 애인을 만나러 갈 시간에 우씨는 일을 마치고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로 간다. 휴학생인 유재선(24)씨도 “돈도 돈이지만,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린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불만을 물으니 “뙤약볕에 피부가 검게 타 여자친구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얼굴을 보니 별로 효과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7월27일 다시 경복궁을 찾았다. 회의 끝에 이날 하루는 다른 참가자들과 똑같이 행사에 참여하기로 결정됐다. 하루 3번, 3시간 근무다. 다행히도 11시 근무 때 엉뚱한 구령에 기를 잘못 올린 것만 빼곤 큰 실수는 없었다. 오후 3시 근무 차례가 되자 “줄 좀 맞추세요. 또 발이 틀렸어요”라는 동료들의 지적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행사가 끝나면 관람객들은 부동자세를 취한 수문군들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은 수문장 역할을 맡은 ‘미스터 수문군’ 한승완(25)씨다. 이 친구는 키가 188cm인데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꽃미남’이다. 여고생들이 몰려와 “오빠 휴대폰 번호가 몇번이예요?”라며 짓궂게 묻지만 한씨 표정엔 변화가 없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왼쪽 가장자리 네 번째 줄에 깃발을 들고 선 기자에게까지 눈길을 보내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포기하고 있던 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둘이, 지나가다 서로 킥킥대며 사진기를 꺼내들고 기자 앞으로 다가왔다. 마네킹처럼 서 있는 기자 옆에 서더니 포즈를 잡기 시작했다. 웃음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출연한 기수는 모두 10명이었는데, 사진 모델이 된 기수는 기자가 유일했다. 정말이다, 믿어달라!

뙤약볕에 지친 수문군들이 컨테이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휴식 시간은 겨우 20분 남짓이다.

저문 왕조의 문을 지키는 관광상품

언젠가 <한겨레21> 지면에 ‘역사를 바로 세운다’며 이 터에 서 있던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김영삼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던 것 같다. 일제는 1912년부터 경복궁 내 흥례문과 주위의 회랑 등을 철거하기 시작해 1916년 6월25일 공사를 시작했다. 준공식은 10년 만인 1926년 10월1일에 열렸다. 양 팀장은 “우리 민족의 슬픔이 담긴 터에 전통 재현 행사를 열어 조선 왕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외국인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젊은 청년들이 뙤약볕을 참으며 이미 저문 왕조의 수문장 교대식을 치르고, 일본 관광객들이 이 광경을 보고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는다. 역사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미스터리한 어떤 것이 아닐까. 취타대의 북소리에 맞춰 행진하다, 한눈팔고 바라본 백악은 여전히 푸르고 강성했다.


수문장은 준장이나 대령급

교대식은 <경국대전> <왕조실록> 참조한 최고 수준의 재현

수문장 교대식은 조선시대 도성과 궁성의 문을 관장하는 수문장의 근무 교대 행사를 본 떠 2002년 5월부터 재현되기 시작했다. 도성과 궁궐의 수비를 위해 수문장이 설치된 것은 예종 1년(1469)이고,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에서 명문화됐다.

수문장은 도성문과 경복궁 등 국왕이 생활하는 공간의 안전을 지키는 책임자로 엄격한 절차에 따라 선발됐다. 수문장의 직급은 무관 4품으로, 오늘로 치면 준장이나 대령쯤에 해당한다.

안태욱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행사팀장은 “수문장 교대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이 없어 애를 먹었다”며 “100%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전하는 자료로 만들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재현이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행사 순서는 <경국대전> <왕조실록> 등이 뼈대가 됐고, 군사 배치는 고종 16년(1879) 12월 왕세자(순종)의 천연두 증세가 회복된 것을 축하해 제작한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병>이 바탕이 됐다.

엘리트 병사로 구성된 수문 군인지만, 가끔 군율을 위반하는 사람이 많았던지 중종 3년(1500)에 병조판서 성희안의 이름으로 발표된 수문 규칙을 보면, “부녀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자는 처벌한다” “노름하다가 분해서 싸우는 자는 처벌한다”는 조항을 찾을 수 있다.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일 열린다. 단, 광화문이 문을 닫는 화요일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행사가 없다(02-3210-1645).



“골탕 좀 먹이지 마세요”

[인터뷰 / 경력 3년의 ‘수문장 베테랑’ 오동하씨]

뺨 때리거나 콧구멍 후비는 이들도… 민간외교관으로서 긍지 느껴

뙤약볕을 많이 쐰 탓인지 오동하(27)씨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수문장 교대식이 처음 재연된 2002년부터 행사에 참여해온 ‘베테랑’이다. 말끝에 행사에 대한 자부심과 열의가 묻어났다. 오씨는 “수문군으로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민간 외교관이라는 자세로 열심히 공연에 나서고 있다”며 “관람객들도 성숙한 관람 매너를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일 힘든 때는 언제였나.

행사 참가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동 자세로 서 있어야 한다. 관람객들이 짓궂은 장난을 칠 때 당혹스럽다. 말을 거는 것까지는 좋은데, 환도를 빼서 도망가거나 콧구멍을 후비는 사람도 있다. 출연진의 따귀를 때리고 간 고등학생도 있다. 성숙한 관람 문화를 가져줬으면 좋겠다. 외국인 관람객 가운데는 중국 사람들이 유별나 힘들다.

보람도 많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지금은 행사에 직접 출연하지 않고 진행원으로 참여한다. 외국 관람객들이 행사에 높은 관심을 갖고 질문을 쏟아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얼마 전에 만난 외국인이 “한국에도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며 관심을 가져 뿌듯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관광 올 때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경복궁이라고 들었다. 모두 민간 외교관이라는 생각으로 성실히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제일 큰 오해가 출연진을 ‘공익’으로 보는 것이다. 출연진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근로자다. 보통 2월에 출연진 모집을 하고, 결원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채용한다. 높은 일당(5만5천원)보다는 우리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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