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나는 요즘 ‘타협’ 하며 산다”

570
등록 : 2005-07-26 00:00 수정 :

크게 작게

[김창석의 도전인터뷰]

개혁이 혁명보다 힘들다고 말하는 김선수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
“형사소송법 절충하고 조정하면서 한 발짝이라도 나가려고 고민 중”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김선수(44)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이하 사개추위)의 사무처에 해당하는 기획추진단 단장도 겸하고 있다. 맡은 일의 민감성과 폭발성 때문에 그는 여태껏 언론 인터뷰를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한겨레21>은 사법개혁의 실무 총책임자인 그의 입을 처음으로 열었다.


외부에서는 '굴절' 됐다는데…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는 시민을 만나 하는 일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 ‘사법개혁’의 뜻을 대중적인 언어로 설명해달라.

(헛웃음을 지으며 한참 고민하다가) 사법이라는 게 법을 집행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는 법조인들의 일로만 여겨져왔다. 국민은 대상이자 객체였다. 모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게 민주주의 기본 원리다. (사법개혁은) 객체였던 국민이 주체로 나서는 것이다. 또 그동안 소수 법조인이 독점했던 사법작용을 투명화해서 통제하자는 것이다.

정리하면 ‘소수 법조인 독점의 분산’ ‘국민을 대상에서 주체로’ ‘사법 시스템의 투명화와 시민적 통제’인가.

그렇다. 그동안 엄격한 시험을 거친 소수 엘리트가 법조를 독점했다. 시험에 의한 선발이 아니라 교육에 의한 양성으로 법조인을 키우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립, 국민이 직접 형사재판의 판단자로 판사와 함께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제도,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 형사재판의 공판중심주의로 전환 같은 것이 중요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윤운식 기자)

가야 할 길이 100리라면 몇리 정도 왔나.

한 30리 정도나 왔나. (웃음) 처리할 게 많다. 우리가 처리하더라도 정부 입법 과정을 거쳐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 그 뒤에도 성공적 정착을 위한 홍보와 국민들의 참여 시스템을 만드는 일까지. 산 넘어 산이다. 완전히 새로운 제도들도 있기 때문에 제도가 성공적으로 도입되고 안착하기 위한 기본적인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까지 해야 한다.

개혁이 기득권과의 싸움이던가. 법조라는 기득권은 특별하지 않나. 최근 검찰과의 싸움은 어땠나.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는 맞는 얘기 같다.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한번 확 뜯어고치는 혁명이 아니라면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 재야에 있었더라면 이런 고민 안 하고 원론적인 주장과 비판에 그치면 되는데 어떻게든 만들어가야 하니까 필요한 때 어쩔 수 없이 타협도 해야 한다. 외부에서는 ‘굴절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 발짝이라도 나가려면….

변호사 할 때도 노동 사건만 하면서 그것도 기업쪽 수임은 안 하는 등 원칙주의자 아니었나. 타협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형사소송법 절충하고 조정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애초 그렸던 만큼의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더라도 한 발짝 앞으로 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형사소송법 개혁 작업 시작할 때 우리 단원들하고는 수십년 심지어는 100년 앞을 내다보는 형사소송법을 만들자고 각오를 다졌는데…. 지금 보면 그런 단계까지는 못 갔다. 2012년에 국민참여재판이 본격화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는데 그때 가서 증거법도 다시 한번 재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어느 정도 과도기적인 형태로 보고 싶다.

한국은 오히려 배심제에 적합

형사소송법 관련 합의 내용이 개인적으로는 불만족스럽다는 얘기인데.

우리 단계에서 검찰과 합의 못하고 국회로 넘어간다고 했을 때 검찰이 국회 입법 단계에서 오히려 반대로 돌아설 수 있지 않겠나. 입법 저지로 돌아설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 조직의 힘이 국회 입법 저지까지 이를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게 힘이 센가.

일단 합의됐으니까 그 정도로 하자. (웃음) 사실 검찰만 문제를 제기했으면 모르겠는데 법원도 재판 실무가 돌아가기 어렵다고 했다. 다 증인으로 불러내기 힘들다는, 그런 얘기였다.

그럼 사개추가 그런 현실도 모르면서 제도 개혁을 추진했다는 말인가.

처음에는 검찰·법원이 (우리와) 같은 입장이었다. 검찰도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안을 냈다. 대검찰청이나 법원행정처는 가능할 것으로 봤는데 일선 검사나 판사들이 다르게 느낀 것 같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 466호 법정에서 미국식 배심제와 독일식 참심제 모의재판이 열렸다. 배심원들이 검사화 변호사의 신문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일선에서 개혁을 거부한 것인가.

제대로 전파가 안 돼서 그런 건지…. 형사 사건을 실제로 처리하는 두 영역(검사와 판사)에서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가 결합돼 있는 검찰 제도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 특히 시민적 통제 방법이 무엇인가. 재정신청 확대 이외에 다른 내용은 없나.

검찰 개혁 부분은 우리 과제는 아니다. 재정신청 확대는 피해자 보호 확대라는 점에서 이뤄진 것이다. 사개위 단계에서부터 없었던 부분이다.

대법원 개혁과 관련해 고법상고부 설치를 최근 발표했는데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법관의 사회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 아닌가. 팥소가 빠진 빵 같은 느낌이다.

다양성 확보 방법은 법률로 만들어놓기는 어렵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요구하고 인사권자가 시민사회 요구에 부응하도록 해야 한다. 고법상고부가 설치되면 대법원의 사건 부담이 줄어들어 재판 실무에 밝은 법조인만이 대법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에도 좋은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법관 개인의 권한이 너무 크지 않나. 배심제를 하더라도 권고적 권한만을 가지는 한계가 있다. 또 우리나라에는 아직 양형기준법도 없지 않나.

‘참고적 양형기준제’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 과제로 돼 있다. 구속력을 갖기는 어렵지만, 객관적인 양형 기준을 만들자는 취지다. 양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글쎄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배심원들이 권고적 효력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배심원들이 제시한 의견과 다르게 판단하려면 그럴 만한 상당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판사가 쉽게 뒤집지 못할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이 상당한 정도로 재판 투명화를 가져올 것이다.

1차적 인간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배심제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지적도 있다.

우리 사회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독재정권을 물리친 경험이 있을 정도로 민도가 높은 나라다. 미국보다 동질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보다 배심제가 성공하기 위한 여건이 더 좋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배심원의 사회적 대표성이 종종 문제된다. 소수자를 참여시키지 않는 문제 등이다. 1차적 인간관계를 얘기하는 사람들한테 ‘당신이 배심원이 되면 공정하게 할 거냐’하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공정하게 할 거라고 말한다. (웃음)

사법개혁의 전체 방향이 법원의 권한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주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판단자의 지위에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사회가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법관은 사회적 경험도 있고 권위도 지녀야 한다. 법조 일원화도 그런 맥락이다. 물론 재판 과정이나 판결을 공개·평가·감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런 것이 제도화되지 않은 것은 문제 아닌가.

물론 제도화되지는 않았지만, 법관 평가와 인사 시스템 문제는 법원 내부 개혁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분이 대법원장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지난해 3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탄핵 발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장. 김선수 당시 민변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법적 문제가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진/ 한겨레 임종진 기자)

로스쿨 도입과 관련해 입학 정원을 1200명으로 제한한 것은 매우 반개혁적이다. 소수에 의한 독점을 깨는 것과는 반대 방향이다. ‘고시낭인’은 없어질지 몰라도 ‘로스쿨’ 낭인이 생길 것이다.

고시 합격자 1천명 시대에 대한 검증도 아직 안 됐다. 숫자 문제는 시간이 좀더 흘러야 한다. 일단 도입된 뒤에 사회가 요구하는 법조인의 수도 면밀히 검토되지 않겠나. 처음부터 확 늘리는 것은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일본처럼 로스쿨 정원만 늘리고 신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제한하는 방식이면 로스쿨 도입의 취지가 퇴색한다.

대법관 전관예우, 수임제한은 힘들 듯

대법관이 퇴임 뒤 변호사 개업을 해서 대법원 사건을 싹쓸이 수임하고, 판검사가 마지막 재임지에서 개업한 뒤 싹쓸이 수임하는 등 심각한 법조윤리 문제에 대한 대책은 뭔가.

수임 제한까지는 못할 것 같다. 사개위 단계에서 이미 논의를 많이 했는데 수임과 개업 제한은 위헌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법원장·법무부 장관·대한변협 회장이 지명한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앙법조윤리협의회를 설치해 퇴직 뒤 2년간 형사사건·교통사건·산재 손해배상 사건 등의 수임 경위와 처리 결과를 변호사회에 의무적으로 내도록 해 감시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대법원 사건을 싹쓸이하는 문제는 사개위 때 나도 강하게 주장했지만, 제도화는 안 됐다. 소수 주장에 속했다. 지금도 그 방향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보자면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퇴임 대법관 스스로가 그런 인식을 가져야 한다. 조무제 전 대법관처럼 학교로 돌아가는 이들도 생겨야 한다. 최고 법관 출신으로 사회 원로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사건을 가지고 후배 법관들이 갈등하게 만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처리할 과제 중 눈여겨볼 만한 것이 뭐가 있나.

모든 행정부처에 변호사 자격이 있는 법무담당관을 둠으로써 행정 영역에서 법치주의를 확산하고 모든 행정 절차를 진행시키는 데 인권적·법률적 관점이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법률구조제도도 실질화할 방안도 연구 중이다.

사법개혁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해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이 많다. 몰아치는 방식으로 서두르는 이유가 혹시 정권이 힘이 빠지면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 아닌가.

지금 과제들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 계속 제기됐던 문제들이었다. 형사소송법은 50년 동안 과제였다. 나머지도 10년 이상 된 숙제였다. 좀더 여론 수렴을 잘했더라면 저항이 덜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면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구체적인 방안들은 10년 된 과제를 정리하는 것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정권 후반기에는 실제 진행시키기 어려운 점은 사실 아닌가.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도 사법개혁과 관련해서 방향만 제시하고 후속 추진은 해당 부처에 맡겨놨다가 실패했다. 참여정부는 과거 실패를 거울 삼아 사개위 이후에 후속 추진기구로 사개추위를 만든 것이다.

급진개혁파 몇명이 사개추위의 방향을 좌지우지한다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사개위 단계에서 주장한 것만 가지고 그런 판단을 하는 것 같다. 사개위에서는 내 주장이 소수안이었기 때문에 거의 채택 안 됐다. 그러나 지금은 다수가 합의한 안에 대해 추진하는 것이다. 개인의 지향에 따라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개혁 방향에서 이탈했다고 비판하고, 한쪽에서는 반대의 논리로 비판한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