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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자전거와 스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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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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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주간지는 일주일 장사다. 아무리 멋진 표지사진도 일주일 후엔 잊혀지게 마련이다. 특히 매주 “그림이 되는” 표지거리를 찾아헤매는 사진팀의 경우 너무 고생을 해서 그런지 표지에 사진이 실린 뒤에는 보기도 싫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서울 여의도 증권타운 한복판을 질주하는 자전거 사진이 표지에 실렸던 <한겨레21> 565호는 예외였다.

<한겨레21> 사진팀으로 ‘스쿠터 수리비용 명세서’가 날아든 건 표지 사진이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진 뒤였다. 사실 사진기자에게 자전거처럼 까다로운 소재도 흔치 않다.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이 그린 투박하고 멋없지만 삶의 무게가 실린 자전거, 옷 광고에 나오는 목가풍의 자전거, 랜스 암스트롱이 몇번이나 세계를 제패한 초현대식의 날렵한 자전거, 심지어 달빛에 실루엣으로 하늘을 나는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사람이면 가슴속에 멋진 자전거 그림 하나쯤은 쉽게 떠올린다. 그 ‘그림 같은 그림’들을 몰아내고 내 사진을 그곳에 내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독자들의 기대치가 높을 게 뻔하기에 셔터누르는 손가락이 더 무거워지는 법이다.

(사진/ 곽윤섭 기자)


아이디어가 난무했다. 붉은색 노을 아래 도심을 배경으로 뒷자태가 아름다운 여인네가 타는 자전거, 영화 <중경삼림>처럼 느린 셔터 속도로 달려보며 찍는 자전거, 바퀴살 사이로 노을과 도시와 사람을 넣는 아주 복잡한 앵글에 이르기까지, 정작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은 무서워서 한마디도 못하는데 주변에선 부담없는 조언들이 쏟아졌다. 결국 어스름한 저녁에 도시를 달리는 넥타이 맨 직장인의 자전거로 결정했다.

자전거를 앞서 달리면서 속도감을 표현하려면 무언가 탈 것이 있어야 했다. 오토바이가 떠올랐지만, 뒤에 매달려 중심잡기가 어려운데다 앵글도 높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떡인가. 바퀴 3개짜리 스쿠터를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스쿠터 주인은 한겨레에 녹즙을 배달하던 분이었다.

회사에서 일 잘하고 있는 도회풍의 후배를 모델로 간택해 몇번이고 여의도 금융가를 달리게 했다. 더운 여름날 양복 입고 가방 메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같은 사진기자이면서 스쿠터를 몰 줄 안다는 ‘죄’로 끌려나온 류우종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빨리 끝내야겠다는 욕심이 커질수록 도심 속 자전거는 잘 표현되지 않았다. 시속 140km로 달리는 취재차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본 적은 있지만 최고 시속 35km짜리 스쿠터 짐칸에 쭈그리고 앉은 건 처음이었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을 때까지 같은 코스를 수없이 반복했다.

표지사진은 탄생했지만, 스쿠터에 문제가 생겼다. 녹즙 배달용 오토바이가 졸지에 첨단(?) 취재용 차량으로 둔갑해 무리한 운행을 한 까닭에 엔진이 녹아버린 것이다. 수리비는 변상했지만, 며칠 동안 생활수단이 없어 고생하신 아주머니께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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