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원하는가, 생산성을 원하는가
등록 : 2005-07-12 00:00 수정 :
[김창석의 도전인터뷰]
여론의 뭇매 맞는 신만수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위원장의 항변
“노조결성후 5년간 무사고… 지엽적 내용으로 본질 흐리지 말라”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조종사노조들이 연대해 쟁의행위를 벌이고 있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귀족노조’ ‘호텔에 묵는 것도 모자라 골프채까지 요구하는 노조’ 등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7월7일 저녁 만난 신만수(51)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안전운항 문제가 최우선의 요구인데도 일부 언론에서 연봉 문제 등 지엽적인 내용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린다면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또 노조 설립 이후 조종사들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최근 5년 동안 대형 비행사고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자, 회사쪽은 안전 문제보다는 경제성 논리를 내세워 조종사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종사 자율성과 안전의 함수 관계
노조가 쟁의행위에 들어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5년 전 조종사들이 노조를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2000년 괌 사고를 비롯해 그 전후로 일어난 상하이 화물사고, 포항·울산 등지에서의 대형 비행사고 때문이었다. 사고들의 최전선에는 조종사들이 있었다. 사고의 책임을 조종사한테 몰았다. 예를 들어 비가 어느 정도 오거나 바람이 어느 정도 이상 불면 착륙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도를 넘어 운항을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거지 비행’을 시킨 관리자들은 감봉 같은 것도 안 된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목숨으로 책임을 진다. 노조 설립 이후에는 조종사들의 아픔과 고통을 말할 수 있었다. 2000년 설립 이후 13개월 동안 3번이나 쟁의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이제 조종사의 위치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가 그것을 이전으로 돌리려고 하기 때문에 쟁의가 계속되는 것이다.
회사 방침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인가.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우리 조종사들의 노동은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한번 사고로 끝이다. 안전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형식적으로도 회사 운영방침의 첫 번째는 ‘운행 안전’이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경제성’이다. 노조 설립 뒤 5년 동안 사고가 한번도 없었다. 아시아나도 마찬가지로 노조 설립 이후 사고가 한건도 없었다. 아주 중요한 얘기다. 설립 이전과 이후가 다른 점을 봐야 한다. 조종사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다. 제 목소리를 내고 제자리를 잡으니까 사고가 없어진 것이다. 세계 유수 10대 항공사들을 보면 10년, 20년 동안 무사고 비행을 한다. 엄청난 대기록이다. 일본의 항공사들도 장기간 무사고를 기록한다. 조종사들의 지위를 제대로 보장하고 회사 운용에 반영하니까 그렇다. 비행 안전의 정점에 있는 것은 조종사다. 현장에서 각 분야를 유기적으로 총괄 지휘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기장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일에 집중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회사쪽은 영업이익과 생산성을 안전보다 우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전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문제가 되나.
스케줄 담당 회사 임원이 “회사는 영업이익을 우선해 스케줄을 짤 수밖에 없다. 조종사노조와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망언을 해도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다. 대한항공 상황이 현재 이렇다. 5년 동안 사고가 없다 보니 이제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 말로는 안전과 다른 것을 바꿀 수 없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왜 무너졌나. 사고는 총체적 부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비용 절감 10%, 인원 절감 10% 등을 실천하려는 게 회사 방침이다. 안전 우선이 아니라 생산성 우선으로 가자는 얘기다.
‘2박3일 시카고’고쳐야 한다
대형 항공사고가 5년째 생겨나지 않는 것은 조종사노조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조종사노조쪽의 주장이다. (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안전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전 단체협약에서는 안전 운행의 큰 틀만 정해져 있다. 1년에 총 비행시간은 1천 시간을 넘지 못한다는 식이다. 세세한 것까지 마련하지 못했다. 이번에 그것을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종사들 용어로 ‘2박3일’이라는 게 있다. 시카고에 가는데 갈 때 비행시간만 열서너 시간이다. 집에서 준비하고 공항으로 나가는 시간이나 그쪽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 시간까지 더하면 꼬박 하루가 간다. 가서는 20여 시간만 쉬고 바로 돌아온다. 2박3일 만에 미국에 다녀오는 것이다. 시차와 식사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는 현지에서 30시간 정도는 쉬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유럽 같은 곳도 조종사 3명이 2박3일 동안 갔다오는데 돌아올 때는 비몽사몽 수준이 아니라 기절할 정도다. 이런 비행을 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쉬는 것을 일반인들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항상 한라산 꼭대기 정도의 높이에서 생활한다. 1년 내내 환절기 상태에서 지내는 것으로 보면 된다. 부기장의 경우에는 제대로 식사하는 적이 별로 없다.
대한항공이 물동량 세계 1위라는 보도가 나온다. 대단한 실적이다. 그런데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일주를 닷새 만에 하는 것이다. 인천~뉴욕~런던~룩셈부르크~인천을 닷새 만에 다녀오려면 조종사들은 어떻게 되겠나. 이전에는 9박10일로 했다. 인천~뉴욕~코펜하겐~오슬로~룩셈부르크를 4박4일 만에 다녀오기도 한다. 밤낮이 계속 바뀌어 사람 몸이 정신을 못 차린다.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비행을 그만둔 선배들은 안타깝지만 일찍 돌아가신다. 한달에 8번 밤을 꼬박 샌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차를 넘어갈 때마다 얼마씩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매뉴얼을 만들어놓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는 항공기 근무 형태에 관해 건교부가 만든 기준이 달랑 4장으로 정리돼 있을 뿐이다. 조종사를 항공기의 부속품으로 여기면 안 된다. 무리한 비행 끝에는 멍한 상태가 되고 평형감각에도 문제가 생긴다. 맑은 정신에서 착륙을 해야 승객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생체리듬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결국 안전을 지키고 생산성을 궁극적으로 높이는 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 요인이 가시화할 정도는 아닌 것 아닌가. 위험하다는 가능성만을 가지고 과장하는 것은 아닌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는 특수공항으로 지정돼 있다. 산악지형에다 시야도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륙·착륙도 한쪽으로만 해야 한다. 그런데 비행기가 뜰 때는 정풍(비행기 앞쪽으로 부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 배풍(비행기 뒤에서 부는 바람)이 불 경우 10노트까지만 이·착륙을 허용했는데, 그것을 15노트로 올리려고 한 적이 있다. 영업이익을 위해 안전을 포기하려고 한 것이다. 조종사노조에서 건교부 장관을 면담해서 강하게 요구해 결국 바뀌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
연봉 높다는 건 인정하지만…
30년 비행 경력의 신만수 위원장은 리본 하나 달고 근무하는 것도 막는 회사쪽의 형태를 비판했다. (사진/ 윤운식 기자)
조종사노조의 파업이 대중적 관심을 끄는 것이나 일부 언론에서 꼬투리를 잡는 이유도 일단 고액 연봉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억대 연봉자가 많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 아닌가.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도 고액 연봉 때문이 아닌가.
돈 얘기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하겠다. 다른 직장보다 평균적으로 높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책임이나 하는 일의 전문성과 어려움, 그리고 세계적 추세에 비해서는 그렇게 높은 것으로 보기 힘들다. 회사는 4, 5년 동안 40% 정도 인상됐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전에는 얼마나 열악했다는 것인가. 세계적인 항공사들은 인력 관리에 드는 비용이 전체 비용의 25% 안팎인데 대한항공은 10% 초반대다. 나처럼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서 복무하다 민간 항공사로 온 사람들을 보자. 내 경우도 비행은 했지만 계속 군인 월급을 받다가 92년부터 항공사 월급을 받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월급쟁이는 월급쟁이일 뿐이다. 연봉 1억원 받는다고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통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전락하면 똑같이 힘이 없는 존재다.
고액 연봉을 받는 만큼 경쟁도 심하고 고용이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용불안을 해소해달라는 요구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회사는 2000년부터 노무관리를 강하게 한다. 4, 5년 동안 사직이나 퇴직한 조종사가 80명이나 된다. 2천명 남짓한 대한항공 전체 조종사 가운데 비정규직 외국인 조종사도 10%에 가깝다. 일상적인 감시도 노무관리의 하나다. FOQA라는 기계장치를 통해서 조종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개인을 평가하는 도구로 쓴다. 외국 항공사들은 노사간에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합의하고 도입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없다. 조종사를 단순히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면 안 된다. 비행기가 공중에 뜨면 대통령이 아니라 하나님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본인이 알아서 악천후를 뚫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자율성을 보장해야만 하는 특수직업이다. 통제하고 억압한다고 해서 잘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조종사 자율성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말 잘 듣는 조종사가 아니라 안전에 대한 소신과 능력을 갖춘 조종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쟁의 과정에서 대한항공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방송사들이 파업하면 아나운서들도 리본을 달고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상식 아닌가. 우리가 이번에 리본을 달려고 직원들의 사물함에 놔뒀는데 사쪽에서 그것을 모두 훔쳐갔다. 우리가 리본을 달고 비행기를 타려 하자 관리직원들이 파리떼처럼 달려들어서 리본을 떼라고 심적·물리적 압박을 가했다. 결국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게 한 사례도 있다. 이런 식의 대응이라면 노조와의 신뢰가 생길 수 없다.
골프채 논란은 ‘침소봉대’
외국에 머무를 경우 호텔에 골프채를 의무적으로 배치해달라는 요구가 단체협약 사항에 포함돼 있다고 해서 ‘귀족노조’ 논란이 일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회사가 아니라 아시아나의 경우에 그런 요구가 포함돼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외국에 들러 휴식할 취할 때 시차에 인위적으로 적응하려고 조종사들은 헬스클럽에 가거나 테니스를 하거나 또 다른 방법을 쓴다. 골프를 치는 조종사들도 있지만, 외국에서는 대부분 우리나라와는 달리 골프 치는 것이 서민적인 것이다. 특별한 계층이 즐기는 게 아니다. 그것만을 도드라지게 해서 확대하는 것은 침소봉대하는 것이다. 사실 아시아나에서도 원래 호텔들에 갖다놓았던 것을 한순간에 없앤 것이다. 일부러 노조쪽에서 나서도록 한 것이 아니냐고 볼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매번 쟁의행위에 들어갈 때마다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섭섭하지는 않나.
2001년 파업 때는 언론에서 ‘이 가뭄에 웬 파업?’이라고 쓰더라. 도대체 가뭄하고 파업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조종사들이라 기후를 살피면서 파업을 하라는 얘기인가. 노동자들의 파업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이 가진 유일한 투쟁 도구다. 파업에 대한 인식이 비뚤어진 것은 한국 민주주의 성격과도 밀접히 관련돼 있는 것 같다. 일제와 한국전쟁 뒤에 밭갈이해서 남의 씨를 뿌린 것 아닌가. 우리의 작은 몸부림이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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