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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계약직 인생’ 이젠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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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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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의한 회사, 홀대하는 정규직노조…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조합의 파업은 외롭게 계속된다

12월27일 경기도 분당의 한국통신 본사 앞에서 열린 한통 계약직노조의 집회. 한 시간여 계속된 이날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저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쳤다.
한국통신 노동조합의 파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한국통신 ‘정규직’노동조합(이하 정규직노조)의 파업은 지난해 12월23일 타결되었지만, 12월13일 시작된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조합(이하 계약직노조)의 파업은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마지막날 회사와 맺은 근로계약이 끝나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 이번 겨울 이들에게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매서웠고, 정규직노조의 냉대는 차가웠다.

계약직 끝나면 도급으로…

2000년 12월27일 오후 2시. 경기도 분당의 한국통신 본사 앞으로 관광버스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배낭을 짊어지고, 손에는 코펠을 든 노동자들이 버스에서 내려온다. 부산, 대전, 구미 등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다. 12월 들어 벌써 3번째 상경투쟁이다. 대리석과 유리로 치장한 20층짜리 한국통신 본사 건물 앞에는 방패를 든 전경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전경들을 뒤로 한 채 노동자들이 열을 맞춰 앉는다. “내 마음은 곧 터져버릴 것 같은 활화산이여….” 노동가요 <불나비>가 울려퍼지고 집회가 시작된다. 결의문 낭독이 이어진다.


“조금만 참으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버텨왔다. 계약직이라는 인간적 모멸도 견뎠다. 하지만 계약직 신분도 아닌 도급직으로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평생 계약직 인생,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 인생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한국통신의 정규직 노동자는 4만명. 이들 이외에도 한국통신에는 전화 가설과 선로 유지·보수, 110번 전화고장접수, 114 전화번호안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이 있다. 전국 각 전화국에서 필요에 따라 수시로 계약직을 채용하는 탓에 전체 인원에 대한 정확한 추산도 어려운 형편이다. 계약직노조쪽은 계약직 전체 인원 1만여명에 12월 말로 계약종료된 인원이 6천여명이라고 추산하는 반면, 회사쪽은 계약직 전체 인원 8천명에 계약종료 인원이 3천명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이들 수천명은 이미 한달 전에 계약종료 통보를 받은 상태다. 계약 종료된 계약직 노동자들이 담당하던 업무는 공개입찰을 거쳐 도급이나 용역으로 넘겨진다. 회사쪽은 “적법한 계약종료를 한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12월13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이미 지구현씨 등 3명의 계약해지된 계약직 조합원에 대해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이 판정은 계약직 근로자라 하더라도 장기간에 걸쳐 계약이 갱신되는 경우 정규직과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한 판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인사기획팀 안태환 과장은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세 사람은 근무경력이 4년 이상 된 노동자들”이라며 “자체 조사결과, 이처럼 부당해고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8천명 중 170여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찬바람 속에 한 시간여 집회를 하던 노동자들은 “부당해고 철회하라”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구호를 마지막으로 집회를 마쳤다. 다시 배낭을 들쳐메고 버스에 오른 이들이 향한 곳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 196일째 파업중인 이랜드 노조와 연대집회를 갖기 위해서다. 버스가 분당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전화선로 가설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목을 빼고 현장을 지켜보던 박진교(33·부산사하전화국)씨가 한숨쉬듯 중얼거린다. “참…. 우리 없어도 공사는 잘하네….”

“우리는 해고자”

8년 동안 선로가설 업무를 해왔다는 박씨는 “보통 한 사람이 평생 쓸 근로계약서를 우리는 지난 한해 다 썼다”며 씁쓸해한다. 부산지역 계약직 노동자들이 지난 한해 근로계약서를 쓴 횟수는 5번. 99년까지 매년 1년 단위로 이뤄지던 계약이 지난해 1월부터 갑자기 3개월 계약으로 바뀌었다. 급기야 지난해 10월에는 1개월 초단기 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이미 97년 145만원이던 월급이 98년 95만원, 99년 이후 85만원으로 떨어져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였다. 결국 대부분 부산지역 계약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 말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실직상태인 것이다. 이런 추세는 전국적이다. 다만 계약직 중 114안내만이 예외였다. 회사쪽은 “도급회사로 고용이 승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지만 노동자들은 믿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를 “해고자”라고 표현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안 잘리려고 곱빼기로 일 안 했나!”

“내는 빚이 1천만원이데이.”

“신혼여행 갔다온 날도 일당을 빼데…. 계속 이런 대접받고 살아야 되나.”

버스 좌석 여기저기서 격앙된 부산사투리가 터져나온다. 이들에게도 이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희망이 있었다고 한다. 96년까지 근무일수 600일 이상을 채우고, 유선선로 자격증만 따면 면접을 거쳐 7급으로 특채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진교씨는 “간부들은 몇년째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소식 있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왔다”고 말한다. 그런 박씨에게 도급으로의 전환은 실낱같던 희망마저 지우는 일이다.

오후 4시40분. 어느덧 버스는 ‘2001 아울렛 중계점’에 도착했다. 이랜드 노조가 기다리고 있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오후 5시, ‘서울지역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집회’가 시작됐다.

파업 196일째를 맞는 이랜드 노조는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걸고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파업을 벌이고 있는 드문 사례다. 집회가 시작되자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과 이랜드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노래를 불렀다. “부딪혀 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보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뭉친 이랜드 노조와는 달리, 한국통신 노동자들은 한 노조 깃발 아래 모여 있지도 않을뿐더러 유쾌하게 손 맞잡고 <동지가>를 부를 수 없는 형편이다. 계약직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홀대는 지난해 초로 거슬러올라간다. 지난해 3월30일 계약직 노동자 37명은 한국통신 노조 중앙집행부를 찾아가 노조가입원서를 제출했다. 노조규약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통 노조집행부는 단체협상의 어려움과 조합원 정서를 이유로 들며 가입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통신 노조쪽에서는 지금도 “외주를 줘서 평가해본 결과, 계약직노조를 따로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당시의 일을 해명한다.

독립적인 노조의 험난한 길

유인물을 읽고 있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한통 계약직노조는 12월28일부터 본사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노조규약으로는 계약직 노동자들은 독립적인 노조도 만들 수 없었다. 복수노조금지조항 탓이었다. 현실적인 노조 설립 방법은 계약직을 노조가입대상에서 제외해 독자노조 설립의 길을 열어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지난해 9월30일 열린 한통 정규직노조 대의원대회에 이 안건은 상정되었지만 의결정족수에 10명이 모자라 부결되고 말았다. 부결선언이 나오자 계약직 노조원 20명은 그 자리에서 가입원서를 제출하며 “부결 즉시 가입원서를 받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며 항의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한국통신 정규직노조쪽이 10월11일 다시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이 안건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불참한 대의원 39명의 사퇴통보를 받고서야 대회가 성사됐고 규약 규정안도 겨우 통과됐다.

한국통신 정규직노조 파업 이틀째인 12월19일, 두 노조의 갈등은 재연됐다. 이날 저녁 민주노총이 준비한 연대집회에서 원래 한국통신 계약직노조 위원장이 연대사를 하기로 돼 있었다. 하루 전 연락을 받은 계약직 노조원들도 급히 상경해 명동성당에 결집한 상태였다. 하지만 대회시작 직전 정규직노조에서 “조합원들의 정서상 계약직 위원장이 연대사를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결국 집회는 취소되고, 계약직 노조원들은 쓸쓸히 명동성당을 빠져나와야 했다. 계약직노조 김영민 부산경남 본부장은 그날을 돌이키며 “현장에서 한솥밥먹던 사람들이 그렇게 문전박대할 줄은 몰랐다”며 착잡해했다. 12월23일 타결된 노사합의안에도 ‘도급전환’ 등 계약직에 관한 조항은 빠져 있어 또 한번 계약직노조를 실망시켰다.

12월13일 중앙노동위원회는 한국통신이 필수공익사업장에 해당함에도 파업에 대해 직권중재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회사쪽이 중재기간 중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지 않아 귀책사유가 있다”는 게 한 이유였다. 상경투쟁 이틀째인 12월28일 아침 7시, 계약직 조합원 200여명은 “성실교섭, 사장면담”을 요구하며 한국통신 본사 로비를 점거했다. 점거는 3시간 뒤인 10시 경찰에 의해 진압됐다. 홍준표 계약직노조 위원장은 “회사의 무성의한 교섭태도, 정규직노조의 홀대, 사회의 무관심 속에 홀로 방치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비단 한국통신 계약직뿐 아니라 어느새 노동인구의 반을 훌쩍 넘어 ‘다수’가 된 비정규노동자 대부분의 심경일 것이다. 이날 밤 본사 앞에 농성텐트를 치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머리띠가 바람에 날렸다. ‘이윤보다는 인간을!’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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