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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헬싱키에서 온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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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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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헬싱키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안티 렙배넨(Antti Leppanen)입니다. 지금 한 5∼6년 동안 한국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해왔고, 그중에 절반 정도 한국에서 지냈으니, 선생님께 한국말로 메일 보내드립니다. 인터넷에서 한국 신문들을 보면서 선생님의 ‘무관심한 사람들’이란 논단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박사논문 연구의 대상은 소규모 자영업자(간단하게 말하면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인데 이 ‘서민’이란 개념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서민이란 개념이 학술에서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언론과 정치, 일반 사람들의 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이 단어가 학문에서 언급된 일이 많지 않습니다(저는 물론 특히 한국어로 나온 논문이나 다른 문헌을 읽은 게 너무 부족하긴 하지만요). … 아무튼, 생각을 나게 하는 글을 읽고 나서 몇마디 적고 싶었습니다. … 아, 아줌마들에 대해서도 논단을 쓰셨네요. 예를 들면 ‘아줌마’와 ‘사모님’의 차이가 저한테도 무관심한 일이 아닙니다.”

민중보다 서민, 시내보다 동네

이 글은 필자가 몇주 전 받은 긴 이메일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보낸 사람은 한국어를 배운 핀란드인이다. 그리고 사적인 메일을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단’에 옮겨 적기 전에 렙배넨씨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내 인용을 허락받은 것이다.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아주 소수의 타자 실수라고 보이는 부분만 교열했고, 문장 교정은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쓴 한글이라고 보기엔 어색함이 거의 없다는 것을 독자들도 느끼리라 생각한다.

물론 필자가 논단에 기고한 이후로 한국 독자들로부터도 여러 번 이메일을 받아보았지만, 솔직히 말해 이억만리 다른 나라에서 외국 독자로부터 온 이메일은- 더구나 그것을 한글로 받을 때는- 특별한 것이었다. 렙배넨씨의 이메일은 우선 인터넷 시대의 다양한 경험을 다시금 실감나게 한다. 물론 필자도 해외에 오래 거주했기 때문에, 외국 친구들과 심심치 않게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렙배넨씨도 내 회신에 대해서 “여기는 핀란드입니다. 인터넷은 국경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다시 느껴지네요!”라고 감탄사를 붙여서 재답신했다.

이 자연스러운 감동 외에 ‘헬싱키에서 온 이메일’은 내게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첫째, ‘영어 지배시대’에 한국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 사이트의 효용성이다. 최근 몇년 동안, 대학을 위시해서 온 나라에 “영어와 컴퓨터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따라서 의식과 행동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때마다 넓은 의미에서 ‘한국어 콘텐츠’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것을 상기하게 된다. 세상은 그만큼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거센 획일화의 바람 속에서도 다양성의 가능성은 살아 있다. 그것을 포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이 점이 더 흥미로운데)는 렙배넨씨가 한국에 대해 갖는 주된 관심사의 특징이다. 그는 ‘서민’, ‘동네’, ‘장사’, ‘아줌마’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것을 좀 풀어서 말하면, 그는 민중보다는 서민을, 시내보다는 동네를, 사업보다는 장사를, 사모님보다는 아줌마를 관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 사이의 차이점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한 예로, 랩배넨씨는 ‘민중’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학문에서든 시민운동에서든 자세히 파악돼온 것에 비해서, 서민이라는 개념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며칠 전 보낸 이메일에서 유명 화가의 그림에 나타난 서민의 모습을 본 경험으로 이런 판단을 일부 유보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다각적이고 세밀한 관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민간 차원의 국제적 투명성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할 점은, 지금까지 외국에 대한 관심사가 주로 거시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으나, 이제는 여러 분야에서의 관찰이 매우 미시적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사회문화적 맥락의 세밀한 곳을 파고든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할 점이다. 이는 곧 우리의 ‘일상성’을 파헤쳐 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렙배넨씨가 2001년 4월 유럽 한국학회(AKSE)의 학술대회에서 발표 예정인 논문의 주제도 ‘동네사업(장사)과 동네 도덕경제’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 그는 이러한 과제의 전제가 되는 일상적 ‘동네생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헬싱키에서 온 이메일들을 보면서 나는 오늘날 인터넷과 국제교류로 특징지워지는 세계화의 다른 일면을 보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민간 차원의 국제적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상호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는 좁아졌다. 이제 마음과 시야가 넓어져야 할 때가 왔다. 아주 작은 것도 볼 수 있도록.

김용석/ 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uchronea@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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