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1차 분류에서는 의류, 도매, 가전, 잡화 등으로 대략 나누며, 2차에서 상태별로 분류해 가격을 산정한다.
혼자 다녀야 하는 수거 담당자들에게 곤혹스러운 것 가운데 하나는 이삿집의 기증품을 접수하는 일이다. 물품 수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장 간사도 그런 일을 간혹 겪는다. 한번은 실어내야 할 물건이 너무 많아 1시간가량 혼자 낑낑댄 적도 있다며 웃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아파트일 경우 곤혹스러움은 한층 더한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 가운데는 간혹 층간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경우도 있어 바퀴 달린 수레를 무용지물로 만들곤 한다.
이날도 곧 이사를 앞둔 집을 만났는데, 다행히(!) 그런 낭패는 없었다. 곧 전북 익산으로 이사갈 예정이라는 대치1동 문아무개씨의 아파트는 1층인데다 기증물품도 이삿집치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현관에 내놓은 물품은 찻상, 철제선반, 옷가지 등. 사과상자 2개 크기의 플라스틱 박스로 5개 분량이어서, 손수레로 수월하게 옮겨 실을 수 있었다.
단골 기증자인 한 중소업체에서 컴퓨터 모니터 1대를 수거함으로써 애초 계획한 4곳을 모두 돌았을 때는 낮 12시도 되기 전이었다. 장 간사가 평소보다 적은 5곳을 배당받은데다 삼성동의 한 기증자가 다른 일 때문에 약속을 미루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다니며 수거한 것도 시간을 줄일 수 있었던 요인이었던 듯하다.
하루 일을 오전에 끝냈다고 해서 수거 담당자의 일이 곧바로 끝나지는 않는다. 다른 이의 형편을 살펴 지원을 해준다.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관행으로 굳어진 듯했다. 점심을 끝낸 장 간사는 담당간사별로 수거항목을 정리해놓은 표를 들여다보더니 김판재 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북, 종로, 성동, 송파 지역을 돌던 김 간사에게 마침 차질이 생겨 강동구 성내2동과 송파구 오금동 2곳의 수거를 장 간사가 대신 맡기로 했다.
칼 들고 기증품 상자와 씨름하다
오금동에서 만난 고천석씨는 전형적인 단골 기증자였다. 상아아파트 경비원인 고씨는 아파트 단지에서 나온 물품들을 모아놓았다가 정기적으로 기증해 아름다운 가게에선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지하 공간에는 아예 옷장을 설치해 기증 물품을 모아두고 있었다. 넝마주이한테 넘기려는 가죽옷을 5천원 주고 사놓았다가 기증한 일도 있다는 고씨는 “그대로 처리되는 게 아까워서…”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냥 버리기엔 아깝지 않느냐’는 이 단순한 말 속에 ‘재활용과 나눔’ 운동의 동력이 내재돼 있는 건 아닐까. 아파트 지하 고씨의 ‘보물창고’에선 여행용 트렁크, 돗자리, 아이스박스, 갖가지 겨울옷들이 쏟아져나왔다.
이튿날인 5월25일엔 이렇게 모아 되살림터로 실어온 물품을 품목·상태별로 분류하는 일에 나섰다. 분류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1차 분류는 의류, 도서, 가전, 잡화 등으로 대략 나누는 일이며, 2차에서 상태별로 분류해 가격을 산정한다. 이렇게 되면, 매장으로 실어가는 일만 남아 되살림터의 일은 마무리된다. 용답되살림터에서 작업을 마친 기증품들은 서울 지역 17개 매장 가운데 12곳과 ‘움직이는 가게’(6대)로 공급된다. 나머지 서울 지역과 수도권 매장에는 안양그물코센터에서 공급하며, 지방 매장은 자체적으로 기증품을 받아 분류·판매한다.
서울시가 운영하던 1층짜리 건축자재 창고를 임대해 2층으로 개조한 용답되살림터는 연건평 400평 규모. 2층은 상근자들의 근무 공간으로 쓰며, 1층에선 분류 작업을 한다.
1 ·2차 분류 작업을 거쳐 판매 불능으로 판정받은 옷가지들은 재활용업체에 넘긴다.
되살림터 총책임자인 신충섭(34) 팀장의 작업 할당에 따라 1차 분류 작업에 나선 것은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이날 1차 분류 작업에는 상근자 1명을 비롯해 모두 4명이 투입됐다. 1차 분류 작업에 나설 때는 앞치마와 함께 문구용 칼을 꼭 챙겨야 한다. 수거배송팀에서 직접 실어온 기증품이나 대한통운·한진택배·HTH택배에서 무료로 배달해준 물품들을 담은 상자를 가르기 위해서다. 잡화류를 나르다 다칠 수가 있기 고무칠을 입힌 면장갑도 필수품이다.
기증물품의 50~55%가 의류라고 들었는데, 1차 분류에 직접 나서 보니 그보다 훨씬 더 될 것 같았다. 칼로 박스를 갈라 열어젖히면 대부분 옷이었다. 책을 비롯해 다른 품목은 라면상자 2개 크기의 흰색 플라스틱 박스에 담는 반면, 옷은 이보다 훨씬 큰 청색 플라스틱 박스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인 듯했다. 옷만 쌓여 있는 것 같아도 사이사이에 모자나 목도리 같은 게 섞여 있어 한벌한벌 젖혀가며 나눠 담아야 한다.
옷 쌓인 모양을 보면 기증자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탁까지 한 듯 깔끔한 옷을 가지런히 개켜놓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옷걸이, 액세서리 같은 잡화류를 마구 뒤섞어놓은 예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군데군데 구멍 뚫린 청바지에 색 바랜 흰색 속옷까지 들어 있어 마음이 언짢아지기도 했다.
1차 분류가 단순해 보여도 수월치 않은 것은 잡화류를 나누는 일 때문이다. 옷, 책, 가전과 달리 잡화류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어서 어느 곳에 나눠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특히 여성용 액세서리나 액자처럼 수량이 적은 물품을 분류할 때는 번번이 상근 간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3시간가량 기증품 상자와 씨름을 하고 나니 금세 배가 고파졌다.
점식식사 뒤에는 4곳으로 나뉜 2차 분류작업장 가운데 의류 부문에 배치됐다. 숙달된 상근자가 옷 상태와 브랜드에 따라 500원, 1천원, 2천원, 3천원, 5천원 등 가격대별로 분류해놓은 갖가지 옷을 옷걸이에 걸어 행거에 단정하게 배열하는 일이다. 내게 맡겨진 것은 2천원짜리. 윗옷은 맨 위 단추를 채우고, 바지나 치마는 지퍼를 잠그는 것만 신경쓰면 되는 단순 작업이다. 이렇게 정리된 옷은 아름다운 가게 꼬리표(태그)를 붙여 상자에 나눠 담는다. 2차 분류 과정에서 가끔 노숙자 쉼터나 외국인 노동자 쉼터의 요청에 따라 즉석에서 물건을 내주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이는 가게의 관제탑 격인 안국동 본부 기증만족센터(콜센터)의 조정에 따라 이뤄진다고 한다.
의류 파트에서 만난 활동천사(자원봉사자) 박선혜, 이진우씨는 대학생이었다. 박씨는 이곳에서 주 20시간씩 일하면서 노동부로부터 월 30만원을 지원받고 있으며, 이씨는 이곳의 봉사활동으로 사회봉사과목 1학점 이수를 갈음한단다. 되살림터에서 꾸준한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은 140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대학생은 50명가량, 나머지는 대부분 주 4시간씩 봉사하는 주부들이라고 한다. 정기적으로 봉사를 나오는 직장인들도 많은데, 이날 박형진 대리 등 SK텔레콤(수도권네트워크본부 플랫폼운용2팀) 직원 3명을 만날 수 있었다.
분류 전문가들도 분리수거 어려워
오후 3시부터 30분에 걸친 휴식 뒤 도서 부문에 배치된 뒤에는 분리수거를 맡았다. 책 분류를 하려면 훈련이 필요해 초보자는 카세트테이프 케이스 등을 뜯어 재활용할 부분을 분리해내는 일을 주로 한다. 도서 부문에는 책과 함께 CD나 카세트테이프 따위도 분류돼 있다. 분리수거 대상은 주로 카세트테이프 상자인데, 비닐 커버를 X자로 오려 젖히면 두꺼운 마분지 상자가 드러난다. 종이류와 비닐, 플라스틱은 재활용 가능 품목으로 분류하고, 녹화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는 폐기물로 분류돼 돈을 주고 버려야 한다. 가게 초창기에는 여러 가지로 미숙해 폐기물 처리비용으로만 한달에 50만원을 들였는데, 지금은 1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분리수거는 아름다운 가게의 큰 숙제거리다. 카세트테이프 따위에 붙어있는 똑딱단추는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 카세트테이프나 비디오테이프의 플라스틱 부분은 재활용할 수 없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데가 없다고 한다. 대학생 때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가 이곳에 눌러앉은 이상훈 간사는 “자원 재활용에 대한 명확한 매뉴얼(지침)과 교육 과정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구용 칼을 들고 2시간여 분리수거를 하고 나니 손끝이 아렸다. 책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빈 종이상자를 접어모아 뒷정리를 하고 나자 시곗바늘이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틀 일정을 마무리하고 되살림터를 떠나는 기자의 눈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벽보 홍보물이 눈길을 끌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만 가득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굵은 글씨. ‘일해서 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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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하고 싶으면? 봉사하고 싶으면?46개 매장 갖춘 아름다운 가게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나
아름다운 가게 운동은 박원순 변호사 주도로 2002년 10월 1호 매장 안국점을 개설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헌 물건을 팔아 벌어들인 수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였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하는 이들은 150명의 상근자와 2천명의 자원활동가들로 짜여 있다. 가게는 서울 용답동과 경기 안양에 물건을 수거하고 선별하는 물류센터를 갖추고 있으며, 전국 곳곳에 46개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300만점의 물품을 기부받아 매출 44억원로 6억원의 수익을 올려 소외된 이웃들과 나눴다. 이 밖에 6만5천점의 물건을 재기부했다. 운동과 비즈니스(사업)의 결합이란 새로운 지평을 열어 비교적 성공을 거뒀다는 평을 들을 만한 대목이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매장 늘리기 등 운동의 지속적인 확산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이제는 내실을 다질 때라는 안정론이 엇갈리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싶으면? 서울 안국동 본부 회원팀으로 전화(02-3676-1009)를 걸거나 인터넷 홈페이지(www.bstore.org)에 접속해 신청하면 된다. 가까운 매장에서 직접 신청할 수도 있다. 매주 수요일 4시간씩 실시되는 자원봉사 교육을 두 차례 받은 뒤 매장이나 물류센터 등에 배치돼 활동하게 된다.
▶아름다운 가게에 물품을 기증하려면? 세 가지 길이 있다. △우선, 매장이나 기증함에 직접 갖다내는 방법. 가까운 매장이나 기증함의 위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종이박스 5개 이하면 무료 택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서울·경기 지역은 HTH택배(02-3676-1004), 그 밖의 지역은 대한통운(문의: 지역영업소)으로 연락하면 된다. △물품이 너무 많거나 택배를 이용할 수 없을 땐 수거 차량이 직접 찾아간다. 수거 신청은 전화(02-3676-1004 또는 1688-5004)나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된다. 대형 가전, 대형 가구(장롱·침대·소파 등), 설치를 해야 하는 물품(에어컨·정수기 등), 고장난 가전제품, 사용한 침구류 등은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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