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의 도전인터뷰]
<광마잡담>등 4권의 저서 잇달아 내며 기지개 켜는 마광수 교수
문화 민주화 한참 먼 세상, 앞으로도 나잇값 안 할 것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그를 찾아가는 길에 그곳에 들렀다. 그의 아이콘 가운데 하나인 ‘장미여관’은 찜질방이 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대는 한 세대 이전의 일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5월27일 오후 6시 마광수(54) 연세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 신촌 캠퍼스를 찾았다. 마 교수는 최근 4권의 책을 잇달아 냈다. 5월 초 자신의 박사논문인 <윤동주 연구>(철학과현실)를 재출간한 데 이어 철학 에세이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오늘의책), 장편소설 <광마잡담>(해냄), 에세이집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해냄) 등을 냈다.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유죄 확정(95년) → 해직 → 복직(98년) → 재임용 탈락 논란(20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한없이 움츠러만 들던 그가 이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셈이다. 사무실에서 인터뷰 요청과 외고 부탁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머리가 많이 빠져서 사진발이 예전 같지 않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2000년 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이제 벗어나고 있다”고 털어놨다. 양미간에 팬 깊은 주름과 어느새 머리에 내린 ‘흰 눈’이 그가 50대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는 들떠 있었다. 갑자기 바빠진 일상 탓인지 입술 양쪽이 터져 있었다. 당뇨를 걱정하면서도 1시간 이상 줄담배를 피워댔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사진 취재를 열심히 하던 박승화 기자가 한마디 했다. 뷰파인더로 본 마 교수를 두 단어로 요약하면 ‘진정성’과 ‘귀여움’이란다. 뷰파인더가 아닌 맨눈으로 본 그에게서 내가 느낀 것은 ‘외로움’과 ‘복잡함’이었다.
이번 소설은 하나도 안 야하다
혹시 본명인가.
본명이다. 그런데 사실 이름에 불만 있다. 우리나라 이름 중에서 제일 많은 이름이 광수다. 요즘에는 곽광수, 오광수 등 유명한 분들이 나와서 다행이다. 이름이 실체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생각하나.
고등학교 때부터 내 별명은 ‘광마’였다. ‘미친 말’이거나 아니면 ‘짐승 수’자를 써서 ‘미친 짐승’이라는 뜻이다. ‘마귀 마’자에 빗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야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이름도 운명과 연결된다고 보나.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새 책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에서 난데없이 운명론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어로 좀 생뚱맞은 것 같다.
자화자찬은 아닌데 문화방송 PD가 봤다는데 놀랍다고 하더라. 박학다식한 척 좀 했다. 동서고금을 다 인용했다.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종교도 다 나오고 플라톤, 소크라테스도 나온다. 그래서 ‘철학 에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 사회는 그냥 에세이라고 하면 우습게 본다. 미국에서는 대학 입시에 에세이가 필수다. 잡문 취급을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던졌던 화두들과는 다른 내용이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했나.
머리말에서 얘기했지만, 운명·숙명·팔자 같은 것은 기득권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기 위한 논리라고 본다. 수구적 봉건윤리가 운명론의 진원지라는 거다. 내가 만날 부르짖는 게 수구적 봉건윤리의 척결 아닌가. 사실 주역을 30년 읽었다. 내가 직접 점도 친다. 그런데 요즘에는 좀 줄였다. 잘못하면 자기암시가 들어가거든. 주역을 아는 자는 점을 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종교별로 운명에 관한 얘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원래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았나.
예전엔 크리스천이었다. 지독한 미션스쿨인 대광고를 다녔다. 이번에 (김의석씨가) 종교 선택의 자유를 달라고 했던 바로 그 학교다. 그렇지만 입시교육 대신 예능교육을 잘 받긴 했다. 연세대도 그래서 입학했다. (종교 영향으로) 농촌 봉사활동도 4년 내내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읽고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기독교보다 불교가 더 낫다는, 그런 얘기도 나온다. 그 이후 불교·도교·유교 공부를 했다. 예수나 석가나 노자나 공자나 맹자나 비슷하다. 예수는 신인데 부처는 우상이라는 얘기에 반대하는 거다. 결국 그들은 어법만 달랐던 셈이다. 책에 이런 내용도 나온다. “기득권층에겐 ‘천부의 권력’이나 ‘의지의 승리’요 민중들에겐 모진 ‘운명’이나 ‘팔자’일 뿐이었던, 도덕과 권력의 음험한 야합의 결과물인 ‘피지배층 길들이기 수법’으로서의 운명론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와 같은 부분은 마 교수답지 않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문어체지. 좀 무겁게 가기는 했지.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감옥 갔다 온 뒤에도 앓았고 2000년 재임용 탈락 파문 때도 앓았다. 우울증 있으면 책 내기도 귀찮아진다. 또 걸릴까봐 공포심도 생긴다. 사실 이번 소설은 하나도 안 야하다. (웃음) 내부 검열이 자꾸 생기는 게 정말 두렵다. 애인 있냐고? 한명도 없다
내부 검열이라는 게 외부 검열보다 더 괴롭다는 얘기는 들었다.
공포심이다. 잡혀갈까봐. 우리나라에서 (구속이) 최초 아니었나. 장정일 봐라. 감옥 갔다 오더니 <삼국지> 내잖아. 그렇게 발랄하던 양반이 난데없이 <삼국지>가 뭐야. 그래도 장정일은 불구속 기소였다. 나는 전격 구속이었다. 일본어판이 정말 많이 팔렸는데, 그 책 표지에도 ‘체포작가 작품’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신기한 일이라는 거지, 걔네(일본인)들이 볼 때는. 가족관계의 굴레로부터 탈출해야 운명을 이긴다고 했지만,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관계를 버릴 수 있나. ‘가출’하라는 얘기인가, 그도 아니면 ‘출가’하라는 얘기인가.
마음만이라도 홀로 서자는 뜻이다. 예수는 자기 아버지 부정하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하고, 석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마누라 버리고 집 나갔다. 공자는 세살 때 아버지가 죽는다. 맹자도 그렇다. 부권의 억압이 없었던 것이다. 가족관계의 굴레로부터 마음으로라도 벗어나자는 거지. 나는 벗어나 있다. 이혼했으니까. 물론 외롭지만. 본인 스스로의 운명은 어떤가.
아주 걱정이 많다. 말년이 외로울까봐. 아이도 없고, 마누라도 없고. 연애하기엔 너무 늙었고 너무 늦었다. ‘사라 사건’(92년 <즐거운 사라>를 가리킴) 날 때만 해도 나도 애인 있었다. 구속당하고 (구치소에서) 나와보니까 없어졌더라고. 지금은 애인이 없나.
그 이후로 한명도 없다. 14년째 아닌가.
(손사래를 치며) 한명도 없다. 사귄 기억이 없어. 직접 배설이 아니라 대리 배설이 있지 않나. 그래서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에 전혀 염문설이 없는 건가.
요즘엔 (교수-학생 사이에) 성희롱 사건이 많다. 그래서 주변에서도 쫓겨나는 교수들도 목격한다. 명예퇴직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그런 이유로 나가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30대에 보던 세상과 50대가 보는 세상 강의 듣는 학생들한테 취재해봤더니, 이전에는 강의가 들뜨고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차분하다고 한다. 애초 철학과 어긋나는 것 아닌가.
작년에 듣고 올해 듣는 학생들은 달라졌다고 한다. 옛날로 돌아가고 있다. 차분한 건 맞다. 말조심하고. 여전히 인기 강의인가.
(반색하며) 사실 인기가 많지. 강의실 미어터진다. 연대에서 많이 들었다 하면 김동길 교수가 1500명 강의가 있었고, 그 다음이 나지.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대형 강의를 학교에서 인정 안 한다. 선착순으로 신청 받다 보니까 못 듣는 학생들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결기’나 ‘저항정신’이 많이 사라진 것 아닌가.
아직도 남아 있다. 운명에 관한 얘기는 굉장한 저항정신 아닌가. (이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추가로 고쳐서 보낸 것 받았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뭐!” 하는 그의 외마디 절규. “너무 야하다고? 에이 나는 요즘 친구들은 될 줄 알았는데.” 약간 실망한 듯한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내일 12시까지 다시 써볼게.” 다시 한번 그의 외침. “그 정도가 수위가 높단 말인가.”) 무슨 얘기인가.
<연세춘추>에서 연애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너무 야하다고 그러네. 요즘 학생들은 변하지 않았나.
변한 줄 알았는데 아니네. 많이 변하긴 했다. 80년대만 해도 내가 ‘페티시즘’이니 ‘피어싱’이니 그런 말하면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지금은 강의 때 그런 얘기하면 무슨 얘기인 줄은 다 안다.
30대에 보던 세상과 50대가 보는 세상이 다른가.
그대로인 것 같다. 정치 민주화는 좀 된 것 같다. 그런데 문화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 (예술작품을) 판금시키기도 한다. 누드 퍼포먼스 좀 했다고 수사기관이 입건하지 않나. 그래서 요번 에세이집에 간행물윤리위원회 욕을 막 했지. 정권 바뀌었으면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지.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교독재국가인 것 같다. 김구 선생 같은 이도 그것을 비판했다. <나의 소원>을 보면 조선이 망한 건 주자학 독재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절실하다, 그런 얘기를 한다. 강준만 교수가 특별히 지지·지원하는 이유가 있나.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서울에 오면 전화하고. 술도 가끔씩 마신다. 처음 구속될 때 강준만이 글을 썼다. 그 사람도 무명일 때인데. <인물과 사상> 첫호에서도 이문열 욕하고 나를 옹호했다. 이문열이 그때 나보고 더럽다고 했다. 검사가 그걸 또 인용하더라. 이문열 같은 대가가 욕했다는 식으로. 내 건 포르노고 무라카미 류 건 예술인가? 누군가는 ‘자유롭게 말하고 쓰겠다’는 마광수와 ‘그러다 또 당할지 모른다’는 마광수가 내부에서 싸우고 있다고 하던데.
(이번에 내는 책들이) <즐거운 사라>보다 안 야하다니까. (웃음) 진짜 야한 것은 <권태>다. 그 소설에서는 나중에 꿈이라고 했더니 봐준 것 같다. ‘사라’는 현실의 얘기처럼 쓴 거다. 그것과 관련해서 강준만 교수는 ‘마광수는 왜 전술을 모르냐’고 따지기도 하지 않나. 만약 그런 변화를 준다면 진보적 운동권마저도 그의 품 안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게 안 된다. 글 버릇이 있어서. 그 양반이 하는 얘기가 마광수와 진보주의자는 한 배에 탔다고 하는데 진보주의자들이 나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보수주의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전술 얘기는 잘 모른다. 아니, 예를 들어 섹스라고 하지 말고 인권이라고 하라는 것 아닌가. 친절하게 예시까지 하지 않나.
그건 어법이다. 내가 전공이 섹스인데, 전공이 성 문학인데 어떻게 그렇게 얘기하나.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들으면 어떤가. 그런 게 보이나.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보인다. 요즘 미셸 푸코니 라캉이니 들뢰즈니 하면서 많이 우려먹는데 내가 하면 안 되고 외국 사람들은 높이 평가한다. 무라카미 류 글이 얼마나 야한가. 사대주의다. 후배들에게 나잇값 하지 말라고 다그친다는데.
나잇값이라는 게 어깨에 힘 넣고 ‘원로’를 지향하는 ‘중견’ 흉내 아닌가. 나잇값 안 하려고 한다.
문화 민주화 한참 먼 세상, 앞으로도 나잇값 안 할 것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본명이다. 그런데 사실 이름에 불만 있다. 우리나라 이름 중에서 제일 많은 이름이 광수다. 요즘에는 곽광수, 오광수 등 유명한 분들이 나와서 다행이다. 이름이 실체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생각하나.
고등학교 때부터 내 별명은 ‘광마’였다. ‘미친 말’이거나 아니면 ‘짐승 수’자를 써서 ‘미친 짐승’이라는 뜻이다. ‘마귀 마’자에 빗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야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이름도 운명과 연결된다고 보나.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새 책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에서 난데없이 운명론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어로 좀 생뚱맞은 것 같다.
자화자찬은 아닌데 문화방송 PD가 봤다는데 놀랍다고 하더라. 박학다식한 척 좀 했다. 동서고금을 다 인용했다.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종교도 다 나오고 플라톤, 소크라테스도 나온다. 그래서 ‘철학 에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 사회는 그냥 에세이라고 하면 우습게 본다. 미국에서는 대학 입시에 에세이가 필수다. 잡문 취급을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던졌던 화두들과는 다른 내용이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했나.
머리말에서 얘기했지만, 운명·숙명·팔자 같은 것은 기득권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기 위한 논리라고 본다. 수구적 봉건윤리가 운명론의 진원지라는 거다. 내가 만날 부르짖는 게 수구적 봉건윤리의 척결 아닌가. 사실 주역을 30년 읽었다. 내가 직접 점도 친다. 그런데 요즘에는 좀 줄였다. 잘못하면 자기암시가 들어가거든. 주역을 아는 자는 점을 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종교별로 운명에 관한 얘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원래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았나.
예전엔 크리스천이었다. 지독한 미션스쿨인 대광고를 다녔다. 이번에 (김의석씨가) 종교 선택의 자유를 달라고 했던 바로 그 학교다. 그렇지만 입시교육 대신 예능교육을 잘 받긴 했다. 연세대도 그래서 입학했다. (종교 영향으로) 농촌 봉사활동도 4년 내내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읽고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기독교보다 불교가 더 낫다는, 그런 얘기도 나온다. 그 이후 불교·도교·유교 공부를 했다. 예수나 석가나 노자나 공자나 맹자나 비슷하다. 예수는 신인데 부처는 우상이라는 얘기에 반대하는 거다. 결국 그들은 어법만 달랐던 셈이다. 책에 이런 내용도 나온다. “기득권층에겐 ‘천부의 권력’이나 ‘의지의 승리’요 민중들에겐 모진 ‘운명’이나 ‘팔자’일 뿐이었던, 도덕과 권력의 음험한 야합의 결과물인 ‘피지배층 길들이기 수법’으로서의 운명론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와 같은 부분은 마 교수답지 않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문어체지. 좀 무겁게 가기는 했지.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감옥 갔다 온 뒤에도 앓았고 2000년 재임용 탈락 파문 때도 앓았다. 우울증 있으면 책 내기도 귀찮아진다. 또 걸릴까봐 공포심도 생긴다. 사실 이번 소설은 하나도 안 야하다. (웃음) 내부 검열이 자꾸 생기는 게 정말 두렵다. 애인 있냐고? 한명도 없다

(사진/ 박승화 기자)
공포심이다. 잡혀갈까봐. 우리나라에서 (구속이) 최초 아니었나. 장정일 봐라. 감옥 갔다 오더니 <삼국지> 내잖아. 그렇게 발랄하던 양반이 난데없이 <삼국지>가 뭐야. 그래도 장정일은 불구속 기소였다. 나는 전격 구속이었다. 일본어판이 정말 많이 팔렸는데, 그 책 표지에도 ‘체포작가 작품’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신기한 일이라는 거지, 걔네(일본인)들이 볼 때는. 가족관계의 굴레로부터 탈출해야 운명을 이긴다고 했지만,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관계를 버릴 수 있나. ‘가출’하라는 얘기인가, 그도 아니면 ‘출가’하라는 얘기인가.
마음만이라도 홀로 서자는 뜻이다. 예수는 자기 아버지 부정하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하고, 석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마누라 버리고 집 나갔다. 공자는 세살 때 아버지가 죽는다. 맹자도 그렇다. 부권의 억압이 없었던 것이다. 가족관계의 굴레로부터 마음으로라도 벗어나자는 거지. 나는 벗어나 있다. 이혼했으니까. 물론 외롭지만. 본인 스스로의 운명은 어떤가.
아주 걱정이 많다. 말년이 외로울까봐. 아이도 없고, 마누라도 없고. 연애하기엔 너무 늙었고 너무 늦었다. ‘사라 사건’(92년 <즐거운 사라>를 가리킴) 날 때만 해도 나도 애인 있었다. 구속당하고 (구치소에서) 나와보니까 없어졌더라고. 지금은 애인이 없나.
그 이후로 한명도 없다. 14년째 아닌가.
(손사래를 치며) 한명도 없다. 사귄 기억이 없어. 직접 배설이 아니라 대리 배설이 있지 않나. 그래서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에 전혀 염문설이 없는 건가.
요즘엔 (교수-학생 사이에) 성희롱 사건이 많다. 그래서 주변에서도 쫓겨나는 교수들도 목격한다. 명예퇴직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그런 이유로 나가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30대에 보던 세상과 50대가 보는 세상 강의 듣는 학생들한테 취재해봤더니, 이전에는 강의가 들뜨고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차분하다고 한다. 애초 철학과 어긋나는 것 아닌가.
작년에 듣고 올해 듣는 학생들은 달라졌다고 한다. 옛날로 돌아가고 있다. 차분한 건 맞다. 말조심하고. 여전히 인기 강의인가.
(반색하며) 사실 인기가 많지. 강의실 미어터진다. 연대에서 많이 들었다 하면 김동길 교수가 1500명 강의가 있었고, 그 다음이 나지.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대형 강의를 학교에서 인정 안 한다. 선착순으로 신청 받다 보니까 못 듣는 학생들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결기’나 ‘저항정신’이 많이 사라진 것 아닌가.
아직도 남아 있다. 운명에 관한 얘기는 굉장한 저항정신 아닌가. (이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추가로 고쳐서 보낸 것 받았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뭐!” 하는 그의 외마디 절규. “너무 야하다고? 에이 나는 요즘 친구들은 될 줄 알았는데.” 약간 실망한 듯한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내일 12시까지 다시 써볼게.” 다시 한번 그의 외침. “그 정도가 수위가 높단 말인가.”) 무슨 얘기인가.
<연세춘추>에서 연애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너무 야하다고 그러네. 요즘 학생들은 변하지 않았나.
변한 줄 알았는데 아니네. 많이 변하긴 했다. 80년대만 해도 내가 ‘페티시즘’이니 ‘피어싱’이니 그런 말하면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지금은 강의 때 그런 얘기하면 무슨 얘기인 줄은 다 안다.

(사진/ 박승화 기자)
그대로인 것 같다. 정치 민주화는 좀 된 것 같다. 그런데 문화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 (예술작품을) 판금시키기도 한다. 누드 퍼포먼스 좀 했다고 수사기관이 입건하지 않나. 그래서 요번 에세이집에 간행물윤리위원회 욕을 막 했지. 정권 바뀌었으면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지.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교독재국가인 것 같다. 김구 선생 같은 이도 그것을 비판했다. <나의 소원>을 보면 조선이 망한 건 주자학 독재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절실하다, 그런 얘기를 한다. 강준만 교수가 특별히 지지·지원하는 이유가 있나.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서울에 오면 전화하고. 술도 가끔씩 마신다. 처음 구속될 때 강준만이 글을 썼다. 그 사람도 무명일 때인데. <인물과 사상> 첫호에서도 이문열 욕하고 나를 옹호했다. 이문열이 그때 나보고 더럽다고 했다. 검사가 그걸 또 인용하더라. 이문열 같은 대가가 욕했다는 식으로. 내 건 포르노고 무라카미 류 건 예술인가? 누군가는 ‘자유롭게 말하고 쓰겠다’는 마광수와 ‘그러다 또 당할지 모른다’는 마광수가 내부에서 싸우고 있다고 하던데.
(이번에 내는 책들이) <즐거운 사라>보다 안 야하다니까. (웃음) 진짜 야한 것은 <권태>다. 그 소설에서는 나중에 꿈이라고 했더니 봐준 것 같다. ‘사라’는 현실의 얘기처럼 쓴 거다. 그것과 관련해서 강준만 교수는 ‘마광수는 왜 전술을 모르냐’고 따지기도 하지 않나. 만약 그런 변화를 준다면 진보적 운동권마저도 그의 품 안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게 안 된다. 글 버릇이 있어서. 그 양반이 하는 얘기가 마광수와 진보주의자는 한 배에 탔다고 하는데 진보주의자들이 나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보수주의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전술 얘기는 잘 모른다. 아니, 예를 들어 섹스라고 하지 말고 인권이라고 하라는 것 아닌가. 친절하게 예시까지 하지 않나.
그건 어법이다. 내가 전공이 섹스인데, 전공이 성 문학인데 어떻게 그렇게 얘기하나.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들으면 어떤가. 그런 게 보이나.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보인다. 요즘 미셸 푸코니 라캉이니 들뢰즈니 하면서 많이 우려먹는데 내가 하면 안 되고 외국 사람들은 높이 평가한다. 무라카미 류 글이 얼마나 야한가. 사대주의다. 후배들에게 나잇값 하지 말라고 다그친다는데.
나잇값이라는 게 어깨에 힘 넣고 ‘원로’를 지향하는 ‘중견’ 흉내 아닌가. 나잇값 안 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