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의 고백 “결혼할래요”
등록 : 2001-01-02 00:00 수정 :
서울 한남역 근처 현대시장 빌딩 311호. 2000년 한해 동안 군의문사 진상규명, 경찰 민주화, 재소자 인권보호 등으로 숨가쁘게 달려온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실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페달을 밟는 운동기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막 운동을 마친 듯한 한 청년이 방문객을 맞는다. 조영민(28)씨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젊은 인권운동가다. 선배들이 몸 버려가며 운동했다면 그는 몸 챙기며 운동한다. 최근 열애에 빠진 이후로는 더욱 열심이라는데. 상대는 보람있는 인권운동, 이리라 짐작했지만 대답은 다르다. 그는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인권운동은 제 직업이죠. 하지만 성희씨는 제 인생입니다.”
조씨의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생김새와 분위기가 꼭 닮은 한 여성이 그와 사이좋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씨가 평생 동지로 맞고 싶은 화면 속의 여성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는 박성희(29)씨. 박씨 역시 직장에 다니다 뒤늦게 인권운동에 뛰어든 젊은 인권운동가이다. 그러나 이렇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인생행로가 요즘 난항에 빠져 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열성적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박노해 시인 구명운동을 시작으로 줄곧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조씨를 장래의 장인, 장모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탓이다. 대구에서 나서 자라 학생운동권 근처에도 안 가보며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도 취직했던 전력의 막내딸과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라는 게 박씨 부모의 생각이라고 한다. “제가 성희씨 부모님께 약속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입니다. 누구보다 건강하고 올바르게 살 자신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성희씨를 사랑하고 아끼겠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인간살이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건강한 긴장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평생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 인권운동이라는 게 조씨의 자부심이다. 돈을 좀 적게 벌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할 자신이 있다. 그래서 조씨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른들을 설득할 생각이라고 한다. “어르신들, 우리 두 사람 행복합니다. 부디 결혼을 허락해주십시오.”
2001년에는 과연 그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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