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의 메뉴를 찾아
등록 : 2000-12-26 00:00 수정 :
연말연시는 원래 희망의 계절입니다. 묵은 달력을 걷어낸 그 자리에 소망과 꿈을 함께 걸어보는 시기입니다. 해가 바뀌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는 생각에 세상만사를 낙관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려 합니다.
그러나 2001년을 맞으면서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쉽게 낙관의 메뉴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새해가 되면 어제와 다른 오늘이 펼쳐지리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현실이 갑갑하고 팍팍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가불마저도 어려운 게 오늘의 숨김없는 현실입니다.
이글을 쓰는 오늘 아침 한 독자분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평범한 40대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분의 호소는 처연한 절규에 가깝습니다. “평범한 월급쟁이이자 한 집안의 가장에 불과한 많은 우리들이 이 시대를 살면서 참으로 답답해지는 것은 하루에도 몇번씩 자기자신의 무능과 무대책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입니다.… 큰 능력도 없고 나이도 먹었고 돈도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이 자신있게 실업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의 이야기는 스산하고 부서진 마음을 기댈 언덕을 찾지 못한 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일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민·주택은행 합병에 반대하는 두 은행 노조원들의 파업이 계속되면서 경찰력 투입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사태가 완전파국으로까지 갈 것으로 예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파업을 철회한다고 해도 ‘그 뒤에는?’이란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과연 우리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이 나라 전체가 불확실성의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난국을 돌파할 사회의 응집력도 산산이 부서진 상태입니다. 3년 전 구제금융 사태 직후에는 그나마 합심단합의 분위기라도 있었습니다. 섶에 누워 쓸개를 핥는 심정으로 내일을 기약하는 옹골찬 마음들이 한데로 모아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계층간 지역간 이념적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지만 그 치유책 찾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갈등의 통합과 희망의 배급처가 돼야 할 정치권에 기대를 걸기도 어렵습니다. 여권의 지리멸렬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도 없고, 야권에 국정운영 동반자로서의 성실한 책임의식을 요구하는 것도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격입니다. 게다가 대선이 2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펼쳐지면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의 가장 큰 진원지가 될 공산이 큽니다.
위에 언급한 독자분은 “우리나라 언론전반에 대한 불만”도 이야기하였습니다. “언론들이 전반적으로 불을 지필 줄만 알지 그 뒤처리를 거의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가 이렇게 극도로 불안한 심리 속에 꽁꽁 위축되어 있는 것은 문제의 본질과 별개로, 하나를 찾아 열을 만들어내는 언론의 무책임한 오버” 때문이 아니냐는 질책이었습니다.
<한겨레21>은 이런 지적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 언론의 책무가 무엇인가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비록 희망의 부재 시대일지라도 새로운 희망의 거처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모색을 계속할 것을 약속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