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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눈’의 언어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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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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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살이의 소란을 잠재우려는 듯, 밤새 조용히 눈이 내렸다. 눈은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을 원초의 어떤 순결한 상태로 되돌려놓는다. 눈은 참으로 기묘한 사물이다. 그것은 겸손하게 물질화된 가벼움의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문학이 있는 자리

나에게 눈은 일종의 특별한 언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현현한 백색의 언어. 나날의 사물을 초월하면서도 그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언어처럼 느껴진다. 눈은 낮은 곳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얼마나 하늘의 방식으로 찾아오는가. 눈은 분명히 물질성의 법칙을 따라 지상에 내리지만, 그러나 하늘의 소여를 포기하지 않은 채 내린다. 그것은 하늘의 반중력의 원칙에 대답하며 땅 위에 내린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것은 땅의 법칙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를 다해 땅의 운명에 통합된다. 나에게 그것은 이상적인 문학의 은유처럼 여겨진다. 그것은 자신의 가벼움의 원칙 안에 통합돼 있으면서도, 무거움의 소환에 무심하지 않으며, 힘을 다해 공동체의 운명에 관여하며 그 운명 곁에서 존재의 어떤 모범을 보이는 언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 문학은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일까? 우리 문학은 자꾸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지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점점더 위선자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다. 문학은 확보된 기득권의 성채 안에 갇혀, 사회가 무엇을 요청하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고 나의 파이만 유지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이기적이고 퇴행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러한 퇴행적 태도의 일단이 반조선일보운동에 대한 기득권 문인들의 태도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반조선일보운동은 우리 사회가 기존의 모순을 뛰어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선일보가 행사하고 있는 언어의 왜곡을 국민에게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시민들이 깨닫고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 매우 근대적이며 언어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이것은 근대문학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는 언어관의 문제에 직결돼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문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냄은 물론, 조선일보사의 특별한 언어행동을 간접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듯한 행동마저 보인다.


그런가 하면, 문학 기득권자들은 문학을 사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유력 문예지들은 출판 논리와 문학 논리를 뒤섞어서 비평을 판매전략의 일환으로 변질시키고도 반성할 줄 모르며, 공적인 맥락에서 제기된 비판을 사적으로 보복하기 위해서 정치권에서나 써먹을 만한 흑색선전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베스트셀러 작가는 한마디 해명도 하지 않고 오만한 침묵을 지키고 있고, 대언론사들은 그런 작가를 버젓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위촉한다. 이런 모든 행태는 결국 한국 문학 기득권자들이 얼마나 성찰성을 결한 채, 기득권에 기대는 전근대적 멘털리티에 매몰돼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일종의 오만한 사회귀족 계급을 형성하고, 그 계급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예 의미있는 말을 생산할 수 없는 무능력자들로 치부하며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사상사의 명예훼손 고발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을 총망라하기라도 하듯이, 문학사상사에서는 올해 초에 여러 매체에서 문제제기됐던 이상문학상 의혹을 재론한 <뉴스메이커>의 노만수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함으로써 우리 문학이 얼만큼 성찰적 언어에 무관심한가를 스스로 폭로하고 말았다. 제기된 의혹에 관해서 지면을 통해 논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소신에 의거해 기사를 작성한 한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함으로써 한국 문학은 지금 그것이 어디까지 추락하고 있는가를 비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제가 되었던 그 기사를 읽어보았지만, 의혹이 제기되었던 문맥을 총정리해서 밝히는 수준 이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의 기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기사화했는데, 왜 하필 한 매체만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반론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왜 지면을 통해 충분히 논의가 가능한 사안을 법의 해결에 호소하는지 알 수 없다.

문학환경이 전에 없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위엄을 저버리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문학은 존경심을 잃어버림으로써 도전에 응전하지 못하고 스스로 옹색한 처지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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