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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섬마을에도 졸업앨범이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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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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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앨범을 찍느라 말쑥하게 차려입고 학교에 갔던 학창 시절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섬 지역 학생들은 이런 추억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앨범에 들어갈 학생 수가 적은데다 앨범제작 비용을 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서해 대청도의 대청중·고교 학생들이 그랬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아예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서 졸업앨범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앨범제작을 이끌고 있는 이 학교 장석현(46·국어·사진 왼쪽) 교사는 “다 학생들이 하고 있는 일인데…”라며 당최 얼굴을 내밀기 쑥스러워했다. “앨범도 없이 졸업하는 게 안타깝더군요. 그러던 중 아이들이 먼저 앨범을 만들자고 해 열심히 도와주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에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귀중한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졸업생 수가 지금처럼 적지 않았던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부에 의뢰해 졸업앨범을 제작해왔다. 하지만 육지로 떠나는 주민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현재 이 학교 전교생은 중·고교 합쳐 고작 95명. 내년 2월 졸업예정인 학생도 30명에 불과하다. 해마다 감소하던 졸업생 숫자는 결국 86년 앨범제작 중단으로 이어졌다.

그뒤 14년 동안 그러려니, 하고 말았던 ‘앨범없는 졸업식’은 지난해 졸업을 고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살릴 앨범을 열망하던 학생들이 앨범제작반을 자체 구성해 졸업앨범을 부활시킨 것이다.

2학년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앨범제작반은 학교 축제인 ‘동백제’ 등 교내에서 벌어진 각종 행사를 지난 1년 동안 디지털카메라에 틈틈이 담아왔다. 물론 이번 졸업생 얼굴 사진도 복도에서 자신들이 직접 찍었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졸업앨범은 모두 흑백사진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사진을 컬러로 뽑아내려면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흑백 컴퓨터 프린터로 찍어내기로 했다. 비록 앨범 두께는 20여쪽에 불과하지만, 이번 졸업생들은 나중에 앨범을 펼쳐보면서 추억할 거리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도회지 학생에게는 없는 앨범제작 추억이 그것이다.

옹진군 북도분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대청도로 왔던 장 교사는 섬 교사생활 3년을 채우고 내년 새학기에 인천으로 전근갈 예정이다. “섬 아이들이요? 글쎄요. 섬 생활의 어려운 점도 있지만, 나름의 순박하고 아기자기한 모습도 있어요. 흑백 프린터기를 이용한 탓에 사진이 예쁘게 나온 건 아니지만 떠나기 전에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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