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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유배된 젊음, 떠나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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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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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어도 노벨상을 타도 그들은 여전히 정치수배자… “분노보다 허탈감을 느낀다”

사진/한총련 정치수배자 농성단의 천막은 끝내 철거되고 말았다.(강창광 기자)
비닐로 덧씌운 천막 안으로 그들은 도피해 있었다. 천막 위에 걸린 현수막에는 정치수배자 250여명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다. 세상은 그들에게 수배의 ‘영’을 내리고, 활보의 자유를 ‘허’하지 않았다. 명동성당 들머리에 자리잡은 농성천막은 정치수배자들의 보호막이자 감옥이다. 곧 허물어질지 모를 불안한 보호막 안에서 그들은 자유를 갈망한다. 2000년 12월21일 오후 2시, 정치수배자들을 대표해 218일째 천막 농성을 하고 있는 진재영(30·9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이동진(26·99년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씨는 신산한 겨우나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겨우살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추운 날씨만이 아니었다.

웃음을 잃어버린 고향집

“여러분은 성지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어서 떠나주십시오.”


천막에 들어서자마자 흘러나온 성당쪽의 경고방송이다. 진재영씨는 자꾸 신경이 쓰이는 듯 “참…. 며칠째 저럽니다”라고 되풀이했다.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에서도 ‘정치수배자’는 더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인 것이다.

진씨는 현재 최장기 수배자이다. 94년 수배령이 떨어져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광주를 떠나 전국을 떠돈 지 벌써 7년째. 강퍅한 세월은 청춘의 이마에 주름을 새겼고, 날선 하루하루는 젊은이의 심장을 병들게 했다. 20대 후반을 송두리째 삼켜버린 수배생활을 이제는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수배해제가 되면 건강진단부터 받아야죠. 어디 한 군데 성한 데가 없거든요. 그리고 그동안 정지당했던 내 삶을 되찾고 싶습니다. 고향에 돌아가 효도도 하고, 7년 동안 기다린 애인과 결혼도 해야 하고….”

고달프고 외로운 나날이었지만, 특히 영양실조에 걸렸던 때를 잊지 못한다. 행여 남들이 의심할 새라 숨죽여 스며들었던 은신처. 방 안에 틀어박혀 며칠 지나고 나니 남은 반찬이라곤 없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간장에 맨밥을 비벼먹으며 버텼다. 보름을 그렇게 지내고 나니 왼쪽 가슴에 수포가 생겼다. 영양실조로 생긴 병, ‘대상포진’이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몇번 체포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나니 심장이 약해져 작은 소리에도 놀라기 일쑤다. 97년 의형제였던 김준배(한총련 투쟁국장)씨가 수배중 경찰에 쫓기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는 ‘이런 세상 살아서 뭐하나…’ 하는 비참함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도 고생이었지만 전남 완도의 고향집 가족도 7년 내내 편할 날이 없었다. 마을회관 앞에 내걸린 아들의 수배사진을 보며 아버지는 가슴 졸여야 했고, 어머니는 집 앞을 지나가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 뒤안으로 도망쳤다. 조부모 역시 편치 않았다. 외할머니의 부음은 한달이 지난 뒤에야 그에게 전해졌고, 장손인 진씨의 생일날에 치른 할머니의 팔순 잔치는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가족 모두가 해마다 ‘우울한 명절’을 보낸 것은 물론이다. 진씨의 여자친구에게도 시련은 비켜가지 않았다. 자꾸 회사로 찾아와 진씨의 거처를 추궁하는 경찰 때문에 여자친구는 4번이나 직장을 옮겨야 했다.

동생의 임종도 보지 못한 채 끌려가

사진/동생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 채 경찰에 연행된 장진숙씨. “제발 임종만은 지키게 해달라”는 부모의 간곡한 호소에도 소용없었다.(박승화 기자)
7년 동안 웃음소리가 나지 않던 고향집에 흥겨운 박수소리가 터지던 날도 있었다.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하던 그 새벽이었다. 선거전 보름 동안 철야기도를 드리고, 선거일 새벽 목욕재계하고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던 그의 어머니는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고, 마을 사람들도 “이젠 재영이 볼 수 있게 됐다”며 함께 기뻐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지 2년이 넘은 지금, 그는 아직도 수배자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이젠 됐다’ 싶었습니다. 정권만 바뀌면 당장 수배해제가 될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은 분노보다 허탈함을 느낍니다.”

진재영씨는 수배자라면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하나씩 애절한 사연이 있게 마련이라고 얘기한다. 같이 농성하던 최윤진(26·97년 경북대 총여학생회장)씨는 며칠 동안 거리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고, 함께 있는 이동진씨는 아버지가 현직 경찰공무원이다. 진씨는 남의 얘기 같지 않다며 학교 후배 이야기를 전한다.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배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호남선 철도변 주변에 묻히셨대요. 물론 수배중이라 어머니 장례식에도, 묘지에도 갈 수 없었죠. 그 후배는 호남선 상행선과 하행선 기차를 번갈아 타고 어머니 묘 주변을 오가며, 기차가 묘를 스칠 때마다 복받쳐 울었다고 하더군요.”

혈육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수배자의 사연은 끊이질 않는다. 같은 날 오전 11시, 서울 홍익대 총학생회실에서 만난 장진숙(26)씨는 하나뿐인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지 못한 슬픔에 잠겨 있었다. 지난 12월17일 새벽, 장씨는 아버지로부터 “동생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긴급한 연락을 받았다. 장씨는 98년 홍익대 미술대 학생회장, 99년 부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 3년째 학교에서 수배생활을 해온 상태였다.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은 체포되는 길과 다름없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누나를 따르고, 틈만 나면 수배중인 누나를 찾아오던 살가운 동생이었다. 또 늘 암으로 투병중인 동생이 가장 마음에 걸렸던 누나였다. 경찰은 “병원에 가면 연행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17일 저녁 8시 학교 친구들과 함께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갔다. 98년 후두암으로 임종을 앞둔 동생은 정신마저 혼미해 그저 눈빛으로 누이를 반겼다. 두 남매의 해후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마포서 사복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누이는 끝내 동생이 보는 앞에서 연행됐다. “제발 임종만은 지키게 해달라”는 부모의 애원도 소용없었다.

장진숙씨가 동생의 부음을 전해 들은 곳은 18일 새벽 구로경찰서 대공분실. 장씨는 “동생의 마지막까지 못 보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며 “그 새벽에 남은 것은 분노밖에 없었다”고 비통해했다. 인터넷을 통해 장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반인륜적 처사”라는 비난이 잇따르고, 장씨가 26일 자진출두를 약속함에 따라 18일 오후에 구속유보로 나왔다. 뒤늦게 동생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동생을 보낸 일은 지울 수 없는 한으로 남을 듯하다.

사진/명동성당 천막이 철거된 뒤 가톨릭회관에서 사후대책을 논의 하고 있는 정치수배자들. 그들에겐 체포당하는 길밖에 없을까.(강창광 기자)
장례 뒤 사흘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처연한 얼굴로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되뇌는 장진숙씨. 동생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틈도 없이 그는 26일 경찰에 출두해야 한다. 그렇지만 장씨는 “난 결코 잘못한 일이 없다”며 “출두해도 한총련 탈퇴각서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편으로는 “곁에서 부모님을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12월21일에는 또다른 수배자가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번엔 97년부터 한총련 활동으로 수배중인 노형일(26·98년 충청총련 의장)씨가 그 불행을 당했다. 20일 암으로 돌아가신 할머니는 8살 때부터 노씨를 키워주신 분이었다. 노씨는 “어머니와 다름없는 할머니였다”며 “내가 자유로운 몸이 될 때까지 꼭 살아계시겠다고 하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97년 한총련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된 뒤, 전국 각 대학교에는 해마다 정치수배자가 양산되고 있다. 홍익대 한 학교에서만 현재 수배중인 학생이 8명. 학교별로 차이는 있지만 수배학생 한명 없는 대학은 드문 형편이다. 각 대학 (부)총학생회장이나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면 한총련 대의원 자격이 주어지고, 이들은 한총련 소속이 아니라고 밝히거나 탈퇴각서를 쓰지 않는 한 이적단체 가입혐의로 수배대상이 되는 탓이다.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이 변하지 않는 한 이미 올해 선거에서 뽑힌 한총련 대의원들도 무더기로 수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성당을 떠나면 또 어디로…

12월22일 오후 1시, 결국 명동성당의 정치수배자들이 한겨울 거리로 쫓겨나는 일이 일어났다. 한국통신 노동자들이 파업농성을 풀고 명동성당을 빠져나가자 명동성당 신도 30여명이 들이닥쳐 농성 천막을 철거해버린 것이다. 철거 통보를 받은 지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기서 나가면 즉시 체포될 것이 뻔한데 어디로 가란 말이냐”며 항의하던 수배자 이동진씨는 이 과정에서 팔다리에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성당쪽은 “이번 철거는 지난 10일 열렸던 상임위원회의 결과를 집행한 것”이라며 “이미 여러 번 자진 철거하라고 재촉했었다”고 밝혔다.

농성을 시작하자마자 고향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진재영씨의 어머니가 “비록 천막 안이지만 내 아들하고 한상에 밥도 먹고 잠도 자게 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며 행복해하던 농성 천막. 그 부서진 천막의 잔해와 널브러진 가재도구를 보며 진재영씨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뇌었다. “이게 노벨상을 받은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맞습니까?”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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