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입했다 쫓겨난 벤처업계의 병역특례노동자들… 법적으로 보호할 조항이 없다
12월1일 아침 8시30분 서울 삼성역 부근, 마우스를 클릭하던 손에는 ‘해고를 철회하라!’고 쓴 피켓이 들려 있었다. 염색한 갈색머리에는 검은 머리띠를 둘렀고, 군청색 조끼에는 ‘단결투쟁’이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첨단의 테헤란 벤처 밸리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다. 그 풍경 속에서 팔을 치켜든 사람들은 (주)멀티데이터시스템 노동조합의 병역특례 노동자들이다.
노조원들 군사훈련 입소한 새에…
굴뚝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노동조합이 벤처기업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 지난 2월. 국내 첫 벤처노조인 (주)멀티데이타시스템 노동조합(이하 멀티 노조)를 필두로 유니소프트, 디지탈밸리 등 5∼6개 벤처기업에서 노조가 설립됐다. 국내 최초의 벤처노조인 멀티 노조는 상황의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국내 최초로 파업을 하는 벤처노조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12월5일 조합원 총회를 열어 파업을 결의한 것이다. 멀티 노조는 다음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 신청을 냈고, 21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멀티데이타시스템 사태의 핵심에는 병역특례업체 선정 취소가 놓여 있다. 지난 11월29일 멀티데이타시스템 박정운 CTO(최고기술 책임자)는 직원회의를 소집해 병역특례업체 선정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졌음을 통보했다. 이미 사쪽은 11월4일 서울지방병무청에 병역특례업체 선정 취소 신청을 하고, 11월24일치로 선정 취소를 받아 놓은 터였다. 사전통고도 받지 못한 채 멀티데이타시스템에 근무하던 9명의 병역특례요원들은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현행 병역법상 병역특례요원들은 병역특례업체 지정이 취소되면 6개월 이내에 다른 지정업체로 옮겨야 한다. 만약 그 기간 내에 다른 지정업체를 구하지 못하면 현역 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해야 하는 처지다. 이미 이 회사는 노조가 설립되고, 단체협상이 진행중이던 4월 말에도 병역특례업체 선정을 취소하려한 바 있다. 당시 노조가 격렬하게 저항하고 주주들이 신속한 해결을 주문함에 따라 회사쪽이 한발 물러섰지만, 이번에 결국 병역특례업체 선정을 취소한 것이다. 회사쪽은 취소 신청 사유를 사업변경과 경영악화를 들고 있지만 이상호 노조위원장은 “회사의 재무재표 등을 확인해본 결과 자금 사정도 나쁘지 않을 뿐 아니라 수익도 내고 있다”고 반박한다. 올 5월 맺은 노사합의문에 “병역특례업체 취소 등 노사간 극한 대립을 낳을 수 있는 행동을 삼간다”고 명시했음에도 회사쪽은 병역특례업체 지정을 ‘자진 반납’한 것이다. 이번에 취소 통고를 받은 병역특례요원 9명은 노조원 15명 중 절반이 넘는 숫자로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이 포함된 핵심 노조원들이다. 더구나 통고를 받을 당시 노조원인 병역특례요원 4명은 4주 동안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한 상태였다. 아직도 회사의 병역특례 취소 신청 사실을 모른 채 훈련을 받고 있는 병역특례요원도 있다. 불법 파견근무 공공연한 일
이런 상황이다보니 노조쪽은 “노조 와해를 노린 실질적인 정리해고”라며 항의하고 있다. 한달 평균 50만∼60만원에 불과하던 임금이 노조 설립 뒤 연봉 1500만원 수준으로 오르고, 노조쪽이 경영진의 무능을 문제삼으려 하자 병역특례업체 취소 신청을 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회사쪽은 “병역특례업체 선정이 취소되었으니 자연히 병역특례요원들은 직원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며 “정리해고를 한 것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또 회사에서 다른 업체에 취업을 알선해주겠다고 하지만 노조쪽은 “믿을 수 없다”고 되받는다.
취소를 통고한 다음날인 11월30일, 병역특례요원들만 남겨둔 채 골프웹팀 등 멀티데이타시스템의 다른 부서들은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건물로 이사를 했다. 원래 이 회사의 건물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이플레이스 빌딩. 이사한 다음날 이플레이스 빌딩의 사무실에는 전화는 물론 인터넷 전용선, 전기까지 끊어졌다. 멀티데이타시스템 이태화 대표이사는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집회 참가 등을 이유로 근무가 태만해져 회사경영을 하기 어려웠고 병역특례요원들이 주로 맡아왔던 개발부 사업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만약 이 문제가 법정분쟁으로까지 번진다면 “병역특례요원들은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다는 판례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광주 무등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병역특례요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체불임금 청산을 요구하자 회사쪽이 특례업체 반환신청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병역특례요원들로서는 별다른 대응책이 없다. 노무법인 참터의 배동산 노무사는 “회사가 병역특례업체 지정을 취소하면, 현행 병역법으로는 마땅히 병역특례요원을 보호할 조항이 없다”며 “지방노동위원회를 통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내는 것이 유일한 구제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당해고 소송을 비롯한 여러 법적 절차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모든 절차를 전직 허용 기간인 6개월 안에 마쳐야 하는 병역특례 노동자들로서는 시간이 촉박하다. 소송 자체가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실제 업체가 취소 신청을 하면 병역특례자들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다른 기업으로 전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쪽의 요구로 일반업체에 파견 근무를 했다가 병역특례요원 지정을 취소당한 경우에도 마땅한 구제책이 없다.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13부(재판장 이재홍 부장판사)는 병역특례업체에서 일하면서 일반업체에 장기간 파견 근무를 했다는 이유로 산업기능요원 편입 처분이 취소된 김 아무개(23)씨 등 31명이 서울지방병무청을 상대로 낸 편입취소처분 취소청구소송을 기각했다. 회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관할 지방병무청장의 승인없이 파견이나 출장근무를 한 경우 원칙적으로 ‘산업기능요원 지정업체 해당분야’에서 종사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멀티 노조 이상호 위원장은 “우리 회사 병역특례요원들이 불법 파견 근무를 거부한 것도 취소 신청의 한 이유였다”면서 “불법임에도 병역특례요원의 파견 근무는 공공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벤처기업에 다니는 병역특례요원 이 아무개(24)씨는 “입사하고 서너달 동안은 한달에 20일 정도씩 지방 출장을 다녔다”며 “불법 파견 근무를 가 있는 동안 병무청 직원이 감독을 나왔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회사는 아무런 제재조치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벤처붐으로 지난 3년 동안 특례업체가 4170개사나 늘어난 반면 병무청 감독인력은 오히려 30%가량 줄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굴뚝산업 병역특례노동자들은 더욱 열악
금속, 화학공업 등 전통적인 굴뚝산업에서 일하는 병역특례요원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하다. 평균임금이 정보통신 업계의 병역특례 노동자들보다 더 낮을 뿐 아니라, 수당없는 잔업, 위험한 업무 등에 시달리기 일쑤다. 화학공장에서 일하는 병역특례요원 최 아무개(30)씨는 “한번 입사하면 옮기 힘들다는 약점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노동착취를 강요당한다”고 호소한다. 작업장에서 욕설이 일상화돼 있고, “기분나쁘면 군대가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 업체가 많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근무하는 분야가 대부분 3D 업종이라 산업재해도 빈번하지만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한 업체에서 병역특례로 일하는 신 아무개(23)씨는 “입사 두달째되던 때, 주물이 튀어 가슴과 팔에 화상을 입었지만 치료비는 5만원이 고작이었다”면서 “하루 보통 13시간 이상 일하고, 한달에 이틀 정도밖에 쉬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심지어 상습적으로 2개월 임금을 체불한 채 석달째 월급만을 지불하는 악덕업주도 있다고 한다. 3개월 이상 임금이 체납되면 병역특례업체 선정을 취소 당하기 때문이다.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리면서도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도 군대 가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차라리 군대나 갈 걸…”이라는 푸념을 속으로 삼킨다는 병역특례 노동자들. 최근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이트 ‘병역특례들의 가슴 속 이야기’(www.tukre.com)가 생겼다(쪽기사 참조). 푸념 속에 묻혀 있던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사진/(주)멀티데이터시스템 노동조합의 병역특례노동자들이 “해고철회”를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굴뚝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노동조합이 벤처기업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 지난 2월. 국내 첫 벤처노조인 (주)멀티데이타시스템 노동조합(이하 멀티 노조)를 필두로 유니소프트, 디지탈밸리 등 5∼6개 벤처기업에서 노조가 설립됐다. 국내 최초의 벤처노조인 멀티 노조는 상황의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국내 최초로 파업을 하는 벤처노조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12월5일 조합원 총회를 열어 파업을 결의한 것이다. 멀티 노조는 다음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 신청을 냈고, 21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멀티데이타시스템 사태의 핵심에는 병역특례업체 선정 취소가 놓여 있다. 지난 11월29일 멀티데이타시스템 박정운 CTO(최고기술 책임자)는 직원회의를 소집해 병역특례업체 선정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졌음을 통보했다. 이미 사쪽은 11월4일 서울지방병무청에 병역특례업체 선정 취소 신청을 하고, 11월24일치로 선정 취소를 받아 놓은 터였다. 사전통고도 받지 못한 채 멀티데이타시스템에 근무하던 9명의 병역특례요원들은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현행 병역법상 병역특례요원들은 병역특례업체 지정이 취소되면 6개월 이내에 다른 지정업체로 옮겨야 한다. 만약 그 기간 내에 다른 지정업체를 구하지 못하면 현역 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해야 하는 처지다. 이미 이 회사는 노조가 설립되고, 단체협상이 진행중이던 4월 말에도 병역특례업체 선정을 취소하려한 바 있다. 당시 노조가 격렬하게 저항하고 주주들이 신속한 해결을 주문함에 따라 회사쪽이 한발 물러섰지만, 이번에 결국 병역특례업체 선정을 취소한 것이다. 회사쪽은 취소 신청 사유를 사업변경과 경영악화를 들고 있지만 이상호 노조위원장은 “회사의 재무재표 등을 확인해본 결과 자금 사정도 나쁘지 않을 뿐 아니라 수익도 내고 있다”고 반박한다. 올 5월 맺은 노사합의문에 “병역특례업체 취소 등 노사간 극한 대립을 낳을 수 있는 행동을 삼간다”고 명시했음에도 회사쪽은 병역특례업체 지정을 ‘자진 반납’한 것이다. 이번에 취소 통고를 받은 병역특례요원 9명은 노조원 15명 중 절반이 넘는 숫자로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이 포함된 핵심 노조원들이다. 더구나 통고를 받을 당시 노조원인 병역특례요원 4명은 4주 동안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한 상태였다. 아직도 회사의 병역특례 취소 신청 사실을 모른 채 훈련을 받고 있는 병역특례요원도 있다. 불법 파견근무 공공연한 일

(사진/(주)멀티데이타시스템 노조 이상호 위원장. 노조와해를 노린 회사쪽이 정리해고를 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