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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껍데기를 벗고 몸으로 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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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7-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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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상품에서 ‘벗는다’는 말은 대부분 상업적인 노림수다. 대중도 이 미끼에 쉽게 이끌린다. 특히 연극에서 이 ‘벗는다’는 무기의 위력은 대단하다. 언론이 비난할수록 관객이 몰리며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달까지 서울 산울림 소극장에서 상영하는 연극 <이자의 세월>(박근형 작·연출)도 세속적인 관심에서는 여배우의 알몸연기가 먼저 화제가 됐다. 그러나 한달여 동안 계속되고 있는 이 연극이 선정적이라는 비난은 전혀 없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연극의 고갱이를 표현하는 배우 김가인(30)씨의 연기를 상업적으로 보는 시각도 없다. 연극의 내용에 대한 평가를 떠나 김씨의 연기에 대해서는 관객도 평단도 극 흐름상 누드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다.

연극 <이자의 세월>에서 주인공의 내면이자 분신으로 나오는 김씨의 역할은 처음부터 전라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배역을 맡은 김가인씨는 스스로 연출자에게 알몸연기를 건의했다. 연극에서 말로 전하는 언어 못잖게 신체언어가 중요하므로, 남자로부터 버림받아 상처받은 여인의 내면을 보이기 위해서는 ‘몸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분석한 것이다.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도, 손가락 하나로도 연기를 전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연극에서는 몸의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옷을 걸친 느낌과 안 걸친 느낌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고, 이 연극이 제대로 하고 싶어하는 말을 보여주려면 걸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누드로 가자고 했어요.”

김씨는 패션모델을 하다 연극배우로 변신해 8년째 연극 외길을 걷고 있는 중견이다. 이번의 누드연기에 대해서 그는 배우로서 당당하다. 물론 자신의 가족에게 연극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 가슴 아프고, 또 예술성에서 인정받는데도 관심은 아무래도 누드에 쏠리는 것에는 김씨로도 무척이나 아쉽기만 하다.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저를 봐주는 사람이 적다는 점은 물론 속이 상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작품을 보여줘야 소용이 있겠어요? 보는 이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에게 맡기는 거죠.”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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