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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축구 캐스터가 말하는 축구인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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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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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펠레, 독일에 베켄바워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김용식이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일본 축구대표팀에 유일한 조선인으로 참가, 1948년 런던올림픽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는 코치로 참가, 국내 첫 프로축구팀 할렐루야 창단 감독. 1985년 일흔다섯에 작고한 축구인 김용식 선생의 화려한 전력이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축구가 흔들리는 지금,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인물을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특히 젊은 축구인들과 팬들에게 그를 알리고 싶습니다.”

스포츠 캐스터 서기원(63)씨가 김용식 선생의 평전 <어떤 인생>(명상출판사)을 집필한 동기이다. 하지만 서 캐스터가 김용식 선생의 화려한 경력만을 높이 사는 것은 아니다. 술 한잔, 담배 한대 입에 대지 않고 42살까지 현역선수로 뛰었던 철저한 ‘자기관리’, 69살까지 1만마일 훈련 기록을 세운 지독한 ‘집념’, 그리고 그라운드의 깡패에서 신사로 변모한 ‘페어플레이 정신’. 그를 한국 축구의 ‘대부’로 추앙하기에 머뭇거리지 않는 이유들이다.

30년 넘게 축구 전문 캐스터로 한국 축구와 동고동락해온 서기원씨. 그가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엉뚱하게도 가봉의 봉고 대통령이 있다. 때는 육영수씨가 사망한 다음해인 1975년. 방한한 봉고 대통령은 관례에 따라 국립묘지의 육영수 묘지를 참배했는데 마침 이 중계를 서 캐스터가 맡았다.

서씨는 방송 전 “봉고의 가봉 대통령이 아니라, 가봉의 봉고 대통령. 이것만 헷갈리지 않으면 되겠군…”이라고 되뇌이며 방송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생겼다. “가봉의 봉고 대통령”에 신경을 쓴 탓인지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아니라 “육영수 묘소”라는 불경한(?) 표현을 반복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6차례나. 때가 때인지라 어김없이 중앙정보부에서 “그놈 잘라버려”라는 엄명이 내려오고, 사장이 불려갔다. 겨우 3개월 방송금지 처분으로 무마되긴 했지만 그뒤로 서씨는 “난 이제 스포츠 중계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축구 전문 캐스터로의 시작이었다.

“조금 엉뚱한 계기로 시작하긴 했지만 원래 축구를 좋아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30여년 동안 1천 게임 이상을 중계하고, 아직도 서울방송 축구전문채널 ‘스포츠30’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서기원 캐스터. <어떤 인생> 출간을 계기로 당분간 한국 축구 역사를 정리하고, 축구정신을 곧추세우는 일에 매달릴 작정이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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