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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금성, 그 씁쓸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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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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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된 지 불과 이틀 만에 옷을 벗은 박금성 전 서울경찰청장 사건은 우리 사회의 온갖 치부와 문제점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박 전 청장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그가 물러난 것은 본인을 위해서나 경찰조직을 위해서나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는 늦더라도 다시 끼우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가 경찰조직을 떠난 결정적 빌미가 학력 잡음 때문이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한겨레21>은 얼마 전 표지이야기로 ‘무덤까지 간다, 당신의 학벌’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력 문제가 수도치안의 총수를 ‘무덤’으로 보내는 현실을 이번에 실제로 목도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학력신화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한 슬픈 단면이기도 합니다.

박 전 청장은 경찰 초년병 시절이던 지난 71년에 자신의 신상기록서를 작성하면서 학력을 허위로 기재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오갔을까요. 주변의 동료들은 그래도 어엿한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 자신만 2년제 대학을 나온 것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졌을까요. 아니면 ‘가방끈’의 차이가 경찰생활의 앞날에 족쇄로 작용하리란 불안감이 엄습했던 것일까요. 그 속마음을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학력이라는 영원한 굴레에 대한 엄청난 공포심을 가졌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학력을 허위로 기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학력변조를 변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그가 느꼈을 한없는 열패감이나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 넘쳐난다는 데 주목할 뿐입니다.

사실 목포해양고와 목포고의 차이, 또는 야간청강생과 법학과 3년 중퇴라는 차이가 훌륭한 경찰이 되는 데 그리 큰 변수가 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한층이라도 더 높이 학력의 계단을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현실, 거기에 우리 사회의 비극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비극은, 학력과 능력의 불일치라는 미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헤매는 현실이 앞으로도 쉽사리 바뀌지 않으리라는 우울한 전망에 있습니다.

이번 경찰수뇌부 인사에 대한 언론의 융단폭격을 보면서 느낀 또 한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함입니다. 경찰인사가 발표되자마자 언론들은 일제히 ‘특정지역 편중인사’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저도 역시 “정말로 정신나간 인사”라고 호되게 비판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 경찰수뇌부 인사 때 보였던 언론들의 보도행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경찰청의 전신인 치안본부 시절은 차치하고라도 경찰 최고수뇌부를 ‘향우회’ 수준으로 격하시킨 예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초대 김원환 경찰청장(경북)-이인섭 서울청장(경북)에서 시작해, 2대 이인섭 경찰청장(경북)-김효은 서울청장(경남), 그리고 박일룡 경찰청장(부산)-황용하 서울청장(부산)에 이르기까지 특정지역 편중인사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그럼에도 당시 대다수 언론들은 입도 뻥끗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제라도 비판의 칼날을 세우려는 의기는 매우 가상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렇더라도 과거의 침묵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비판은 하되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은 별로 없다는 느낌, 그것이 씁쓸할 뿐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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