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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족벌세습, 삼성을 잡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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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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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침묵시위 벌이는 윤종훈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의 소리없는 외침

(사진/“양식있는 세무공무원들의 자성을 촉구한다” 윤종훈 회계사가 국세청 본청이 세들어 있는 삼성의 첨단인텔리전트 빌딩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옛 화신백화점 자리인 서울 종로2가 종로타워빌딩 앞에는 요즘 매일 아침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풍경이 벌어진다.

이곳은 삼성이 소유하고(삼성생명), 삼성이 짓고(삼성물산), 삼성이 경비와 관리를 책임지며(에스원), 삼성이 자랑하는 첨단인텔리전트 빌딩이다. 여기에 99년 9월부터 국세청 본청과 서울지방청이 세들어 있다. 이 빌딩 앞에서 지난 12월4일부터 아침 8시∼9시 사이에 ‘나홀로 침묵시위’를 벌이는 사람이 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인 윤종훈(39) 회계사이다. 그가 들고 있는 피켓에는 ‘국세청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라는 도발적인 글귀가 선명하다.

국세청에 삼성 의혹 조사 촉구했지만 허사


윤 회계사는 11월22일부터 참여연대의 ‘족벌세습 심판을 위한 시민행동’ 사이트(peoplepower21.org/samsung)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를 통해 국세청장에게 8통의 애틋한(?) 편지를 보냈다. 바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32)씨의 탈세의혹 조사를 촉구하는 편지였다. 그러나 국세청장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자 12월 첫쨋주 월요일부터는 아예 국세청 앞에서 진을 치게 된 것이다.

“국세청장은 침묵하고 있지만 양식있는 세무공무원들의 자성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래서 삼성의 변칙증여에 대한 과세와 조세정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매일 출근시간에 맞춰 시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윤 회계사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그의 오달진 인상을 금방 알아보고 걸음을 멈추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윤 회계사는 삼삼오오 모이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한다. 삼성이 교묘하게 이 빌딩에 지난 6월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해 반경 100m 이내에서는 집회를 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윤 회계사는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선동이라면 밥먹기보다 더 즐겁고 쉬운 그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지만 한마디라도 크게 떠들면 범법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종훈 회계사는 지금 회계사로서 밥줄이 거의 끊겼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국세청과 삼성을 상대로 한판 대결을 자청한 마당에 밥줄이 온전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리가 없다.

그는 처음부터 ‘배고픈 길’을 선택했다. 대학(연세대 경제학과 80학번)에 들어가 ‘어두운 죽음의 시대’를 온몸으로 뚫어보려다 강제징집을 당했고, 제대 뒤에도 4년여 동안 택시정비공과 택시기사로 노동현장에 투신하기도 했다. 현장의 경험을 가슴에 묻어두고 90년 회계사가 된 뒤, 그는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산동회계법인과 삼일회계법인에서 일하며 한때 ‘잘 나가는 회계사’가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회계분식과 탈세자료 꾸며주기를 서슴지 않는 생활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회계법인을 박차고 나온 뒤 94년에 개업을 했다. 그는 개업 이후에도 “거래처로부터 접대를 받고 허위장부를 대충 눈감아주고 고객에게 탈세지도를 해주기도 한 ‘자본주의 개’로서 적당히 즐기며 시간을 낭비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가 96년 여름 참여연대에 가입하면서 ‘가슴에 묻어둔 짐’을 신나게 풀기 시작했다. “아는 변호사가 ‘좋은 사람들 많다’기에 아무 생각없이 참여연대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생계는 어려워졌지만 사회는 다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세팀을 구성해 활동을 하면서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혜택 폐지와 자영업자에 대한 과세특례제 폐지, 금융종합과세 재시행 등 우리가 주장했던 세제개혁안이 관철될 때마다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실관계가 명확한 삼성의 변칙증여건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이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데 대해 분노를 넘어 서글픔까지 느낍니다.”

강제징집, 노동운동, 회계사 그리고…

(사진/국세청과 삼성을 상대로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는 윤종훈씨.그는 국가권력이 조세정의를 거스르고 있다고 말한다)
참여연대가 국세청에 제보한 삼성의 변칙상속건은 딱 한 가지이다. 지난 99년 2월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면서 신주인수가격을 1주당 7150원으로 정해, 재용씨 등 이건희 회장 자녀 4명에게 149억원어치를 넘겨준 것은 명백한 탈세행위라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4대재벌 부당내부거래조사 결과 발표에서 “재용씨 등이 BW를 인수할 당시 삼성SDS 주식의 장외거래값은 5만4천원이었기 때문에 회사가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지원성 거래를 했다”며 삼성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삼성쪽에서는 비상장기업인 삼성SDS 주식의 실제 거래가격을 매길 수 없어 삼일회계법인이 세법에 따라 평가한 가격을 기준으로 정당하게 배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삼성SDS 주식이 실제 얼마에 거래되었느냐 것이다. 삼성이 주장하는 ‘세법상 평가’란 실제 거래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보충적으로 활용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이재용씨가 SDS 신주인수권을 매입할 당시 이 주식이 5만5천원 이상에 실제 거래됐다는 아주 구체적인 근거자료들을 확보해 지난 4월 국세청에 제출했다. 당시에 삼성SDS 주식이 5만8500원에 거래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는 인터넷 주식거래 사이트의 일일가격표, 인터넷 주식거래 사이트의 운영자로부터 당시 삼성SDS 주식이 한달에 수십만주씩 거래되었다는 증언 등이 참여연대가 내세운 증거이다. 또 참연연대가 제기한 삼성SDS 신주인수권행사정지 가처분소송에서 서울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도 판결문에서 당시 SDS 주식의 장외거래 가격이 5만4천∼5만7천원이었음을 인정했다.

“지난 4∼5년 동안 이재용씨가 미국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 동안 고작 16억원 세금을 내고 4조원가량으로 추산되는 엄청난 재산가로 등장한 게 우리 현실입니다. 탈세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삼성이 워낙 변칙상속의 귀신이라 우리가 명백한 증거를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SDS건 뿐입니다. 국세청은 이보다 더 복잡한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탈세조사를 불과 5개월여 만에 끝냈으면서도 참여연대가 증거자료까지 확보해준 삼성의 변칙상속에 대해서는 7개월이 지나도록 그냥 뭉개고 있어 과세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윤 회계사가 더이상 기다릴 수 없는 또다른 이유는 최근 국세청이 삼성에 대해 꼬리를 내리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남 국세청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할 때부터 삼성의 변칙상속에 대한 조사방침을 내비치고, 올해 5월에는 참여연대 관계자들과 면담에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조사하고 있으며 곧 결말이 날 것이다”라고 했다가,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재벌의 주식이동상황을 조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의사를 표명한 사실이 없다”고 뒤로 물러섰다.

참여연대는 15일 윤 회계사의 국세청 앞 시위를 일단 마무리하고, 그 다음부터는 좀더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동시에 국세청이나 삼성에 좀더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윤종훈 회계사는 “아내에게 내년 1월까지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청사진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는데 큰 걱정”이라면서도 “그러나 삼성의 변칙상속에 대한 싸움은 결말이 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왜, 누구를 위해서 이런 싸움에 나서느냐는 질문에 “그냥 땀흘려 일해서 그럭저럭 먹고살면서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상식과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상식과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련다”

윤 회계사가 국세청과 삼성과의 싸움에 불을 지핀 뒤로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응원의 글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주위 사람들이 이민이라도 가야지 더러워서 못살겠다고 할 때마다 난 죽어도 안 간다고 눈에 핏대를 세우는 이유가 바로 윤종훈씨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입니다.”(정대은씨)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 이 사회가 그래도 바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파이팅 하십시요.”(조휘선씨)

단지 응원에 그치지 않는다.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문의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투쟁전략을 제시하는 글들도 있다. 자신을 ‘nobody’라고 밝힌 한 네티즌의 글은 절규에 가깝다. 그는 “윤종훈 회계사! 그를 혼자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라며 양식있는 세무공무원과 대학교수들, 386 국회의원들, 언론인들에게 연대를 호소했다.

세무공무원들이 취재에 열을 올리는 기자들에게 흔히 이런 충고를 잘 던진다. “세금문제가 불거지면 나라가 흔들립니다.” 지금 딱 맞는 말이다. 윤종훈 회계사가 국세청과 삼성에 던진 돌이 온 나라를 떠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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