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비극예감
등록 : 2000-07-26 00:00 수정 :
21세기에는 결코 보지 않기를 기대했던 장면이 다시 재연됐습니다. 의원들간의 멱살잡이와 고함, 거센 몸싸움, 일사천리식 의사 진행, 야당의원들의 국회 보이콧과 항의농성, 그리고 정국의 급속냉동…. 부산 피난 국회 시절부터 시작된 우리 국회의 유구한 전통은 세기를 바꾸어도 면연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사봉이 때로는 손바닥이나 주전자뚜껑으로 바뀌기도 하고, ‘기습처리’ ‘변칙통과’ 등 지칭하는 용어도 이따금 달라지지만 그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시기와 장소, 출연진은 변하지만 진행과정의 ‘콘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몇 차례 날치기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교원노조법과 한일어업협정 비준동의안, 정부조직 개편안 등이 모두 여당의 변칙기습 작전으로 통과됐습니다. 당시에도 비난이 들끓었지만, 좋게 보아주면 그런대로 여당에 변명할 거리라도 있었습니다. 개혁입법의 시대적 당위성도 있었고, 야당의 막무가내식 반대도 나름의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봐줄 건더기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국회교섭단체 구성 요건이라는 게 민생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데다, 이런 사안은 정치권의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상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권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호전된 분위기에 으쓱한 나머지 너무 오만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파동의 최대 수혜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자민련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자민련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최대 벤처기업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총선 때 몇몇 신생정당들이 ‘벤처정당’을 표방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벤처정당은 자민련이었습니다. 벤처기업이라는 게 자본은 빈약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인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게 바로 자민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97년 대선 때는 JP의 빈약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공동정권 수립’이라는 아이디어로 정권 지분의 50%를 거머쥐었습니다. 이번에도 17석의 빈약한 의석으로 교섭단체 자격(그리고 거액의 국고보조금)을 손에 넣게 됐습니다. 날치기 통과 며칠 전 김종필 명예총재가 이회창 총재와 만난 것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벤처전략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민주당의 이번 투자는 무리한 선택이 아닌가 합니다. 자민련을 공조 파트너로 묶어두는 투자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따른 손실은 투자액을 상회할 것 같습니다. 벤처기업들의 행태에 실망한 시장(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손실입니다. 지난 대선 때는 벤처정당에 베팅을 해 대박을 터뜨렸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요즘 코스닥지수도 바닥을 헤매지 않습니까.
아수라장 국회의 결말은 비극적일 때가 많습니다. 김영삼 정권의 몰락도 그 시작은 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치기 통과 뒤 거센 국민적 저항이 시작됐고 도덕성을 상실한 정권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번 날치기 통과를 현 여권의 몰락의 시작이라고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그 결말은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권의 깊은 성찰을 기대합니다.
한겨레21편집장 김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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