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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무악동에는 원시인이 산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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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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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아파트 앞에서 텐트 치고 살아가는 철거민 김용봉씨의 막다른 선택과 저항

(사진/무악동의 판잣집들을 갈아엎고 지어진 무악동 현대아파트 뒤편 자신의 거처인 텐트 앞에서 철거민 김용봉씨가 안타까운 사연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무악동에는 원시인(?)이 살고 있다. 무악동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그를 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웬 원시인?’ 하지만 그의 살이를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의 살림집부터 다분히 원시적이다. 아니, 처절하다. 그저 맨땅에 아무렇게나 박아놓은 텐트(텐트라기보다 낡은 천을 그저 덮어놓은 것 같다), 그것이 전부다. 창문도 부엌도 더욱이 안방도 없는 텐트 속의 어둠…. 더욱이 그 텐트의 위치는 더욱 더 그의 삶을 원시적으로 보이게 한다. 한때 유명한 달동네였던 무악동의 판잣집들을 갈아엎고 그 위에 군림하듯 우뚝 선 ‘무악동 현대아파트’, 그 뒤편 인왕산 산등성마루에 텐트는 얼굴에 상처난 딱지처럼 흉한 모습으로 바짝 땅바닥에 붙어 있다.

그 곁에 서너평쯤 될까. 낡은 천들을 얼기설기 아무렇게나 엮어 설치한 부엌 겸 창고가 쓰러질 듯 가파르게 서 있다. 그 안에는 장롱, 옷가지, 세면도구 등 갖은 가재도구가 쓰레기처럼 내팽개져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 한눈에 펼쳐지긴 그의 집이나 무악동 현대아파트 로열층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그곳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놓여 있다.


왜 그는 임대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했나

(사진/무악동 철거민 김용봉씨는 낡은 텐트 속에서 부인과 함께 추운겨울을 지내야한다)
12월8일 오후 무악동 독립문교회 박문수(58·미국 미네소타 출신) 신부의 안내로 그를 찾았을 때, 그의 집 주변에는 윙윙 겨울바람이 산마루를 휘감아돌아 더욱더 스산했다. 혹시 그와 집이 통째로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자의 노파심에 그는 “걱정말라”고 손사래를 치며 그래도 이곳에서 부인(임순덕·52)과 함께 먹고 자고 할 건 다 한다고 허허롭게 웃어보였다.

무악동의 원시인, 김용봉(52)씨. 그는 왜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 인왕산 산마루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을까.

경북 영덕군 강구면이 고향인 김씨가 이곳 무악동에 들어온 건 1992년. 당시 다닥다닥 판잣집이 즐비한 전형적인 달동네인 무악동의 한 허름한 집에 세입을 든 신세였다. 물론 살림살이 어려운 도시빈민이었지만 그럭저럭 사는 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93년 10월, 이곳이 재개발사업계획 결정 고시가 나면서 무악동 일대에는 뒤숭숭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이내 철거가 시작되면서 무악동에도 여느 철거촌이나 마찬가지로 농성과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무악마을이란 가이주단지가 마련됐고, 김씨도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다. 하지만 철거민 투쟁과정의 성과는 그에게 없었다. 그를 제외한 67세대의 주민 및 세입자들은 모두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이주단지에 머물러야 했다.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78번지 가 108호. 아직 주민등록상에 있는 그의 주소는 이 가이주단지 주소이다. 그러나 주민등록상에 있는 78번지 가108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11월, 가이주단지인 무악마을마저 말끔히 철거돼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8∼9월 속속 가이주단지가 철거될 때도 계속 버티던 그도 11월2일에는 철거되는 가이주단지를 힘없이 바라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결국 그 윗자리 빈터에서 텐트를 짓고 원시생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철거과정에서 무악동 달동네 사람들은 각기 사정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는데, 저에게는 따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저 가이주단지에서 살다가 임대아파트 입주하는 게 ‘희망 아닌 희망’이던 김씨에게 세상은 그런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텐트 생활은 사실 싸움입니다. 서울시와의 길고 긴 싸움이죠.” 원시인 생활은 가난한 철거민의 막다른 선택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김씨 나름의 저항의 몸짓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파트 입주를 못했나?

단독세대 아닌 단독세대

(사진/무악동 철거민들이 자활차원에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한솥밥공동체 조합원들이 도시락 싸기에 분주하다)
이른바 ‘자격미달’이란 판정이 해당 관청에서 내려졌기 때문이다. 종로구청 도식계획과에 따르면 그는 서울특별시주택개량재개발사업 업무지침에 따라 아파트 결정고시 당시 ‘단독세대’로 분류된다. 이른바 ‘(입주)미해당 철거민’이란 해석이다. 이는 재개발지역 부동산투기를 막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조항인데 이 조항이 뜻밖에 김씨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이 조항은 97년 30살 이상의 단독세대더라도 입주자격을 주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김씨에게 주택개발 당시의 해당조항을 적용할 수밖에 없어 임대아파트 입주자격을 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즉 아파트 고시일인 93년 10월의 3개월 전인 7월에 그는 주민등록상에 단독세대로 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 등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는 사실상 단독세대가 아니었다고 한다. 본디 부인과 현재 포항에 있는 아들과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90년대 초반, 부인과 이혼하게 됐고, 아들도 96년께쯤에야 취직 때문에 집을 떠나 포항으로 갔다고 한다. 결정고시 때 실제와 달리 주민등록상 등본에 단독으로 돼 있었기 때문에 결국 단독세대로 분류돼고 만 것이다.

하지만 서류상 이런 사정을 입증할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억울합니다. 사실상 단독세대가 아니었거든요”라는 그의 하소연은 그저 하소연일 뿐, 법은 차갑기만하다. 행정은 이른바 ‘법대로’를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김씨를 위해 서울시에 특별건의도 냈지만 구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동안 억울한 사정을 구청과 시청을 오가며 호소하고 구제를 수차례나 요청했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건 언제나 차디찬 답뿐이었다. “사정은 안타깝지만 법조항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보다못해 박문수 신부가 나섰다. 박 신부는 20여년 동안 재직한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직을 마다하고 빈민사목의 꿈을 위해 무악동에 들어와 빈민들을 위한 ‘무악동 독립문 공동체’를 구축한 이다. 빈민들에게 일자리를 알아주고 고충도 들어주는 ‘독립문 평화의 집’,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등이 이 무형의 공동체 공간에 함께 담겨 있다.

가이주단지 철거 전 박 신부는 김씨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시 부시장과 시청 주택과 등에 전화를 하거나 함께 찾아가 직접 구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의 입장은 언제나 똑같았다. 시청 관계자는 “한때 다른 마을에서도 이런 사연이 있는 이가 있어 당시 서울시가 재량을 발휘해 해줬는데, 그뒤 비슷한 사람들이 마구 몰려와 감당을 못해 큰 곤란을 겪었다”며 그저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신부의 생각은 달랐다. “실사를 해보면 김씨가 투기꾼이 아니라는 건 다 아는 마당인데, 법이라는 게 누구를 위한 겁니까? 서울시는 빈민투기 노이로제 환자일 뿐이에요. 인간의 얼굴을 한 법, 인간의 얼굴을 한 행정이라면 이렇게까지 가혹하진 않을 텐데….” 박 신부도 결국 김씨를 구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김씨의 각오는 여전하다. “오늘도 구청에서 그러지 말고 방 얻어 나가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때까지….”

김씨는 마지막 차선의 선택마저 저버렸을 정도로 각오가 대단하다. 다른 많은 철거민 세입자는 그나마 재개발주택조합에서 500만원의 이주비를 받고 떠났지만, 이젠 그 조합마저 해체돼 그는 이주비를 받을 기회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고철 수집으로 생계 유지

김씨가 “그만 내려가자”며 트럭에 오른다. 그의 트럭에는 고철이 가득하다. 어느 공사장에서 버려진 것들을 주워모은 것이다. 낡은 트럭은 그의 유일한 재산이며 벌이 수단이다. “이 트럭에 버려진 박스(폐지)를 산더미처럼 가득 실어 봐야 5만5천원이 될까말까 해요. 종이는 1㎏에 70원, 고철은 1㎏에 75원입니다.” 그의 생업은 바로 폐지 및 고철 수집. 이렇게 해서 그는 한달에 30만∼40만원을 번다. 김씨는 이른바 현대판 넝마주이인 셈이다.

그는 무악동 철거민들이 자립차원에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한솥밥공동체에서 배달일도 하고 있다. 한솥밥공동체는 도시락 출장뷔페 등 출장용 음식을 생산하는 곳으로 생산자협동조합형 자활공동체이다.

한솥밥공동체에 이르자 김씨가 트럭에서 내리며 무악동 현대아파트를 응시했다. “아파트 입주한 철거민이라고 해서 딱히 나을 것도 별로 없어요. 67세대의 입주 빈민들은 보증금(1140만원)의 이자 14만2천원, 월세, 관리비 겨울난방비 이래저래 한달에 40만원 이상의 돈이 드는데 이를 제대로 내고 버틸 사람이 얼마나 될지….” 김씨의 처지가 안타까웠는지 아니면 임대아파트 철거민 신세에 대한 빈민사목의 온정인지, 박 신부가 한마디 보탠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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